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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진화 | ||
[이종호 과학국가박사]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적어도 150〜18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에렉투스가 각 지역에 도착한 후 지역 특성에 따라 진화되었다는 ‘다지역기원설’과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이브’라는 한 여성의 후손이 각지에 살고 있던 고인들을 완전히 대체하였다는 ‘아프리카 가설’이다.
호모 엘렉투스는 눈 위 뼈가 툭 튀어나오고 뒷머리가 길쭉하여 현대인으로 보면 외계인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들은 주먹 크기만한 도끼를 돌로 만들어 사냥하는 것은 물론 불을 피워 추운 겨울을 이겨냈다는 설명도 있다. 이들이 보다 나은 잠자리와 식량을 찾아 무리지어 이동해 유럽과 아시아로 삶의 터전을 점점 넓혀 고인이 되었다고 인식한다.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대의 알란 윌슨이 세계 각지 147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하여 계통수를 그린 결과,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의 조상은 단 한 명이라고 발표하여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는 각각 두개골 화석을 비교하는 방법과 분자유전학적 방법(분자시계)으로 현대 인류가 14만년에서 29만 년 전(이하 20만 년 전으로 적음)에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발생한 후 이 후손들이 세계 각 지역으로 이주하여 모든 인류의 부모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아프리카 가설(Out of Africa theory) 또는 이브 가설’이라 한다.
논리 설정과 샘플 채택 등에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었지만 모든 인류의 선조가 겨우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다는 가설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먼저 이 가설이 받아들여질 경우 인류의 조상에 관한 지금까지의 모든 지식을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가설은 인류가 미토콘드리아의 ‘이브’라 불리는 한 명의 여성 선조에서 두 개의 계통수로 나뉘어진 것에 근거한다. 한쪽 가지는 아프리카인들뿐이었으나 다른 한쪽 가지는 아프리카인을 비롯하여 모든 인종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 인류의 선조가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뒤 세계 각지에 진출했음을 시사한다.
영국의 인류유전학자 브라이안 사이크스는 『이브의 일곱 딸들』이란 책에서 전 세계의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L형에서 나뉘어 나온 33개로 분류하고, 동양인은 여섯 개의 집단으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카발리 스포르차 교수에 의하면 한국인과 일본인, 티베트인, 몽골인들은 에스키모,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유전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한 묶음이 되고, 중국 남부인들은 캄보디아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들과 함께 묶여 있다. 즉 북부 중국인과 한국인은 남부 중국인과는 다른 갈래에서 왔다는 설명이다.
학자들은 북부아시아인과 남부아시아인들이 분자시계로 추정한 결과 약 12만 년 전에 분지(分枝)된 것으로 본다. 이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중국 사람들은 남북 아시아인으로 12만 년 전에 분지되었다가 다시 만난 한 핏줄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이브의 후예가 택한 경로는 대체로 두 갈래로 추정한다. 첫 번째는 과거 인류학에서 ‘버마 경로’라고 부르던 것으로 인도양과 아시아의 해안을 따라 동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경로는 히말라야 산맥 북쪽을 택하여 실크로드를 거치거나 시베리아를 거쳐 내려오는 것이다. 한민족의 일반적인 특징은 추위를 이겨내기 쉽도록 실눈이 많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동그스름한 콧날, 속 쌍꺼풀, 검은머리, 단두형의 머리 등 체질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홍규 교수는 바이칼 호 근처에서 6만~7만 년 전부터 한국인의 특징을 갖고 있던 북부 아시아 민족이 약 1만 3000년 전에 빙하가 녹으면서 몽골루트를 거쳐 남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일본 大阪의과대학의 마쓰모도 교수는 사람의 혈청(血淸) 중의 항체유전자를 연구하여 몽고인종의 기원과 이동의 경로를 추적했다. 마쓰모토는 몽고인종을 특징짓는 유전자 결합이 네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몽고인종의 혈청 중에는 Gmab3st 유전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쓰모도 교수의 혈청에 의한 연구 결과는 시베리아로부터 남쪽으로 멀어질수록 혈청 중에 Gmab3st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수도 적어지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몽고인종이 시베리아로부터 기원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하튼 현 인류의 시조가 아프리카의 이브에서 시작되었다는 ‘아프리카가설’은 최첨단 유전자기법 사용이라는 이점을 갖고 있으므로 인류의 기원을 찾는 연구에서 보다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설로 인정되어 왔던 또 다른 인류기원의 가설인 ‘다지역기원설(multiregional continuity model)’도 이에 맞설 수 있는 충분한 설득력과 증거를 갖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된다.
1950년대 에른스트 마이어는 고인류학을 연구하며 인류 기원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리했다. 인류의 선조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오랜 세월 동안 진화를 거쳐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호모 사피언스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의 계통수가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도태되는 종도 많고 어떤 경우에는 3~4종의 호미난종이 같은 가지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지역기원설’의 근본 이론이다. 펜실바니아 대학의 커얼리튼 쿤 교수는 1962년 발간된『인종의 기원에서』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전 세계의 인류가 모두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 인류 중 분류될 수 있는 첫 번째 집단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또한 독자적으로 진화되어 온 영장류, 즉 호모 엘렉투스의 여러 종류의 후손들이다. 따라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결코 우리의 공통적인 조상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쿤 교수에 의하면 25만 년 전에 이미 동아시아인, 폴리네시아인, 아메리카인디언, 중국인과 기타 몇몇 민족을 이루고 있던 몽골로이드와 유럽에 살고 있던 코카소이드, 훨씬 나중에 아프리카 흑인을 이룬 콩고로이드, 호텐토트 및 부시인의 카포이드, 그리고 다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피그미, 멜라네시아인, 파푸아인을 이루는 오스트랄로이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지역 기원설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인류는 약 150〜180만 년 전까지는 한 뿌리였지만 호모 에렉투스 이전에 여러 갈래로 나눠져 세계 곳곳에서 각자의 특성에 따라 발달했다. 즉 현재의 인류가 지니고 있는 인종적 특징은 각 지역에서 오랜 세월동안 진화해 온 결과라는 뜻이다. 이것은 현생 인류가 유럽과 동시에 아프리카, 중동아시아에도 존재했다는 것으로 황인종의 조상은 황인종이라는 것을 뜻한다.
흔히 '촛대형 모델(candelabra model)'이라 부르는데 끝이 여러 갈래로 나눠진 촛대처럼 아득한 옛날 인류는 한 뿌리에서 자라났지만, 현생 인류 이전에 여러 갈래로 나눠져 세계 곳곳에서 발달했다는 설명이다. 이 설명에 의하면 현대형 호모사피엔스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진화하여 유전자 교환이나 유사진화를 거쳐 오늘의 호모사피엔스에 이르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다지역기원설을 강력히 지지하는 측은 중국과 북한을 포함한 한국 학자들이다. 우선 북경원인의 후두골에는 작은 화산형 돌기가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황색인종(몽골로이드)의 특징과 같다. 또 숟가락 모양의 상문치(上門齒)를 갖고 있는데 이 점도 몽골로이드의 특징 중 하나로 북경원인이 몽골로이드의 선조라는 생각이다. 또한 1989년과 1990년 중국의 운현 청곡에서 운현인이라 불리는 100만 년 전의 고인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북경원인보다 무려 40만 년을 더 올라간다. 1990년에 또 다른 완전한 두개골이 발견되자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현대 인간의 조상이 근래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했다는 아프리카가설의 이론이 위태로워졌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1986년 요동(遼東) 반도 잉커우(營口)현 서남쪽, 발해만에서 30㎞ 떨어진 작은 섬 같은 산에서 발굴한 금우산인(金牛山人)은 28만 년 전 20〜22살의 젊은 여인으로 추정되었는데 중국은 금오산인을 호모에렉투스와 호모사피엔스의 사이, 즉 초기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과도기적 단계의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북경원인 등이 몽골로이드의 직접 선조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임효재 교수는 적었음을 첨언한다.
이와 같이 중국인들이 이브 가설을 반박하는 것은 동양에 호모엘렉투스 이래 살고 있던 북경원인 등의 후손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네안데르탈인 또는 크로마뇽인이 유럽인의 시조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아프리카를 나와 현재의 동양인 선조가 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다른 증거는 알타이 지역 여러 곳에서 28만~20만 년 전 유럽의 중기 구석기 석기 제작 기법인 르발루아 기법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 기술은 새로운 기술의 유입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석기 문화가 기술적 변화를 갖고 온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고고학적으로 한 지역의 석기문화가 지속적으로 발달 전개되었다는 증거가 제시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기 구석기시대에 석영을 석재로 사용한 자갈 돌석기 전통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이 자갈 돌석기 전통은 하나의 계통성을 가지고 후기 구석기시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베링해 문화권, 알타이 지역, 우리나라의 문화권적 계통성을 통해서 볼 때 다지역기원설이 보다 큰 힘을 받는 것이다.
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전곡리 유적에 살았던 사람들의 연대가 35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일본의 檀原撤 박사는 피션트랙과 포타슘-아르곤법을 사용하여 전곡리에서 가장 오래된 석기출토층의 연대는 30만 년 전으로 추정했다). 전곡에서 살던 구석기시대인들이 특별히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아프리카에서 100여만 년 전에 출발한 호모엘렉투스가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진화해 나갔다는 다지역기원설을 증명해주는 증거로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가설이든 다지역기원설이든 약 150〜180만 년 경에 호모엘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각지에서 이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한다. 그런데 아프리카 가설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더니 이들 역시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미 곳곳에 살고 있던 호모에렉투스와 부딪혔다고 설명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에렉투스보다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고 언어도 발달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지능도 더 뛰어나 결국 호모 에렉투스는 경쟁에서 뒤처져 멸종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호모 에렉투스 이후 등장한 네안데르탈인 역시 호모 사피엔스에 밀려 사라지고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아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즉 20여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뒤늦게 태어난 소위 이브의 후손들이 각 지역에 정착했던 호모엘렉투스의 후손들인 고인들을 대체 즉 멸종시키고 새로운 인종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에 다지역기원설은 어느 지역에 새로운 다른 집단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이동해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살고 있던 호모엘렉투스의 후손들을 모두 몰아내고 새로운 강자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 기존 집단에 포함되어 그 지역의 특성에 알맞은 인종으로 계속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가설의 단점은 고대의 경우 인구 밀도와 조직성이 부족하여 기존 세력을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구석기 시대 내내 인구밀도는 놀라울 정도로 낮았는데 일반적으로 1제곱킬로미터 당 1인 이하로 추정한다. 또한 각 집단들은 서로 하루 이상의 거리를 두고 생활한데다가 구성원은 최대한 100~150명 정도였다. 한 집단에서 100~150명이 넘으면 그들 중 일부가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러므로 정착된 한 집단에 소수인의 들어와서 생활할 수는 있지만 다수의 집단이 현대 개념처럼 쳐들어와 과거의 집단을 완전히 절멸시키고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프리카가설에 대한 치명적인 강타도 중국이 준비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왕웨이는 아프리카가설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결함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서양의 구석기 문화를 보면 약 10만여 년 전 어떤 곳에서 기하형의 세석기들, 예를 들면 삼각형기ㆍ신월형기ㆍ제형기 등이 출현하며, 2만 년 전에는 더욱 정밀한 기하형의 세석기가 출현했다. 그 당시에 이런 석기를 제작하려면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구석기 문화 중에서는 이런 기하형의 세석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이런 세석기 제작 기술의 흔적도 없다. 이런 차이점은 중국의 구석기 문화와 서양의 구석기 문화가 서로 다른 문화 계통에 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왕 교수는 아프리카가설에 의하면 ‘아프리카 이브’의 후예들이 중국으로 옮겨왔을 때 분명히 그들이 갖고 있던 선진 석기 제작기술과 일상에서 사용하는 석기들을 가져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구석기 문화는 격변을 맞이해야 하는데도 중국에서 3만여 년 전 신인(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에게 어떠한 변화의 징조가 없으며 중국 구석기 문화가 중단된 적도 없다. 적어도 외래 문화에 의해 대체되는 현상도 없는 것을 볼 때 서양의 구석기 문화와 중국 구석기 문화는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계속)
참고문헌 :
「북경원인의 고향, 주구점을 보고」, 임효재, 1989년 9월
「전곡리 구석기유적의 실연대는 무엇인가?」, 檀原撤 외, 동북아세아구석기연구, 한양대학교문화재연구소, 2002
「아웃 오브 아프리카」, 조울 아킨박, 내셔널지오그래픽, 2005년 9월
「중국 조상 ‘진뉴산인 기원설’」, 이기환, 경향신문, 2007.10.19
「중국인 ‘잃어버린 고리〈진화 증거의 공백〉’ 찾았다」, 유강문, 한겨레, 2008.01.24
「인류의 고향은 아프리카? 아시아? 여러 지역?」, 변태섭, 한국일보, 2011.06.24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 제임스 E. 매클렐란 3세 외, 모티브, 2006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심지, 1995
『미래와 진화의 열쇠 이머전스』, 스티븐 존슨, 김영사, 2004
『손에 잡히는 중국 역사의 수수께끼』, 왕웨이 외, 대산인문과학총서(4), 2001
| ■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노벨상이 만든 세상',‘로마제국의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85권의 과학 도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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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이종호 mystery123@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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