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IAEA에의해 핵 개발 의혹이 터져 나오자 1993년 3월12일 만수대 의사당에서 NPT를 탈퇴를 결정한다.
이후 미국은 북한과의 지리멸렬한 협상 끝에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1994년 6월 북핵 개발의 의혹을 받고 있는 영변에 국지적 타격을 가하려고 동해안에 항공모함을 배치했다.
1994년 북핵위기로 한반도에 전운이 돌자 중재를 한다고 나타난 사람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다.
한-미 양국 정부과의 사전협의 없이 무단으로 방북, 김일성과 영변핵시설 동결, 남북정상회담 등에 합의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주제넘은 참견과 김일성의 급작스러운 돌연사로 했고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시설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
덕택에 북한은 17년 동안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17년이 지난 지금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4월26-28일 3일간 북한을 방문한다. 이번 방문에는 전직 국가수반(首班) 모임인 디 엘더스(The Elders) 회원인 그로 브룬트란트 전 노르웨이 총리, 마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이 동행한다.
지미 카터 전 전 대통령은 "한국이 현재 북한에 식량지원을 중단한 상태에서 아동, 임산부 등 식량 부족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는 북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로 북한의 식량난 책임을 한국에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해 “한반도 평화 증진” 운운하는 것은, 북한의 안보위협을 낮추고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면서, 북한의 위장평화공세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또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이 지난 2년 동안 핵 실험, 미사일 발사,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UEP) 시설 공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도발한 것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1976년 주한미군 철수 등을 내걸고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의 주한미군 철수 정책은 결국 베시 사령관, 싱글러브 장군 등 주한미군 상층부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지만, 그의 무리한 주한미군 철수 정책은 자칫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불장난이었다.
그는 또 ‘인권외교’를 내걸었지만, 이는 미국의 동맹국들을 압박하면서도, 정작 인권이 말살되고 있는 공산전체주의 국가 당시 소련, 중국, 동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이중적,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결국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이란사태, 아프간사태 등을 막지 못했고, 안으로는 경제난 등을 극복하지 못한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혀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배했다.
이때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의 독재와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인권’을 빌미로 한국에 대해 온갖 내정간섭적 언동과 압력을 일삼았던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북한은 작년에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으로 대한민국 군인과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을 통해 우리의 안보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해 한반도 평화 운운하는 것은, 북한의 안보위협을 낮추고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면서, 북한의 위장평화공세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도 건방지게 북한의 사과를 받아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북한이 사과를 하려하면 직접 한국 국민들에게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 2011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북핵포기’이외에는 다른 어떤 협상도 필요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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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news@bluekorea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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