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준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
이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대선에 버금가는 열기를 띄웠다. 여,야 대선후보들이 총 동원되고 서울시정의 공약을 띄어 넘는 이슈가 난무했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을 잃고 야권이 서울시장을 되찾아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도와주었던 측근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뿐이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도 “서울시장이 되면 개혁을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을 하던데 시장이라고 마음대로 규정 바꾸고 정책도 세우고 예산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임 시장이 하던 사업을 중도에 포기할 수 없고, 시 직원들을 마음대로 채용, 해고할 수도 없다. 새로운 사업도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중 성공한 청계천 복원도 노무현 정권이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만큼 상당한 정치력을 필요로 하는 자리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선거초기 나경원 후보가 박원순 후보에게 20%차이로 뒤처지다 투표일 직전까지는 근소 차이로 따라 붙었다. 결국은 7%차이로 패배했다.
정치권과 정치전문가들은 ‘막판 안철수 원장의 박원순 후보에 대한 지지가 큰 영향을 끼쳤다, SNS가 큰 위력을 발휘했다, 야권단일화를 통한 이벤트가 효과가 있었다’는 등 여러 해석을 내 놓고 있다.
한나라당의 패배, 야권의 승리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망원경으로 멀리 내다보면 근원은 다른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중심적 유권자들인 30,40대가 박원순 후보에게 묻지마 지지를 했다. 30대에서는 80%이상의 지지를 박원순 후보에게 보냈다.
이 현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들이 박원순, 나경원의 정책을 알아서 두 사람이 행한 상대방의 네거티브에서 대한 사실이 공감해서 그랬을까.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그들은 ‘나경원 후보가 미워, 박원순 후보가 좋아’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희망’을 찾으려고 했듯이 박원순을 통해 ‘희망’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어 일반 서민들이 먹게 살게끔 터전을 만들어 준 박원순을 더 ‘회망찾기’의 모델로 삼은 것이다.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내가 그들을 통해 ‘희망’을 찾았다면 ‘I d'ont care'였다.
사람들은 못 먹고 잘 살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불안해 참지 못한다.
희망이 없을 때 대중들은 분노한다. 독재정권에서는 그 분노가 폭동으로 변하고 민주정권에서는 선거로 통해 표출된다.
현재의 정부.여당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다수당으로서의 힘도 보여주지 못해 보수에게는 분노를, 야권에게는 설득도 보여주지 못해 분노를 일으켰다.
조금만 잘하면 교만으로 변했고 조금만 못하면 비굴한 모습을 보여 진정성 없는 모습만 보여 주었다.
막걸리 폭탄주를 마셔 대통령의 인기가 50%가 되었다는 궤변이 나왔고, 장로 대통령은 그것을 진짜인양 막걸리 폭탄주를 청와대 연회에서 마셨다.
공정사회를 외치는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물 사저를 강남의 요지에 새로 건립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아방궁이라 할지라도 YS의 사저는 작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이 살고 있는 모습과 오버랩될 때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 철폐를 외친다고 민주당에서 입당, 대통령이 되었는데 지역주의의 원흉이라고 민주당을 작살내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이것들은 논리의 모순이며 진정성 없는 리더십의 행태이며 국민들을 무시한 자만심의 발로였던 것이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는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닌 데 입지에 불안을 느낀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패배주의에 빠져 멀쩡한 당 지도부를 흔들어 분쇄시켜 버렸다.
가치와 철학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잘 해주냐 못해주느냐에 따라 철새처럼 왔다 갔다 하며 개혁을 외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국민들은 참고 견디었지만 정부.여당은 왜 힘든지 왜 더 참아야 하는지를 설득을 못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국민들에게 무개념, 자만심, 진정성 없는 모습으로 비취어졌고 되레 대기업에 공갈 협박해 기부금을 받아낸 박원순이가 홍길동처럼 의적으로 영웅이 되는 웃기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한나라당이나 대통령이 나약한 모습을 통해 겸손한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도 아니다.
좌클릭이니 하면서 이리저리 끼웃거리는 비굴한 모습으로 보여주지 말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려면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신념에 찬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는 설득이 가장 큰 미덕이다. 아침이슬 부른다고 무상급식에 주르르 달려가는 모습이 아니라 왜 아니냐는 설득을 당당하게 해야 한다.
당 지도부가 박 전 대표의 눈치를 보느라 그가 주장한 맞춤형 복지를 선거지원의 조건으로 알아서 기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취어 졌을까
남경필 최고위원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 개혁에 매진할 때가 됐다"며 "젊은 층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할 때 대책과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웃기는 소리다. 젊은 층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없다. 본인 스스로가 그들에게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소통은 완성된다.
마누라가 운영하는 뒷조사했다고 난리칠 것이 아니라, 경기도 수원 제일 갑부 며느리가 국사에 전념하는 남편을 위해 내조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소통이란 말이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정부.여당에 팽배해 있다. 이런 상태에서 소통을 외치고, 경청을 외치고, SNS의 중요성을 논할 들 다 부질없는 짓이다.
젊은이들은 이념, 가치보다는 옳고 그름을 더 중요시한다. 누가 더 진정성있게 땀 흘리는가를 더 평가한다. 그것을 통해 ‘희망’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과거엔 더 많이 배우려고 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꿈이었지만 이제는 더 많이 배워 무엇이 되느냐가 부모. 자식의 관심사가 되었다.
대학 나온 아들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을 때 언제까지 내 아들의 무능함만을 탓할 부모는 없다.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이 ‘희망찾기’ 싸움에서 패배했다. 우수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못 찾다보니 인사원칙의 부재, 전략 및 전술의 부재 등 모든 면에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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