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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봉의 임진왜란 이야기] 5. 임진왜란의 배경④
박희봉 | 승인 2019.08.22 07:46
조선군과 일본군의 전투력 비교
 
박희봉 교수
[박희봉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이상과 같이 조선과 일본의 병력수를 비교하면 전투력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전투가 단기적으로 벌어졌을 경우 조선군은 일본군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일본군은 일본 내에서 1만명 이상의 병력이 참여하는 수많은 군단급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다. 또한 일본군은 전반적인 전투상황을 이해하면서 군단급 전투를 수행할 지휘관을 다수 확보하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함경도에 침입하는 여진족을 맞아 싸운 것이 유일한 전투경험이며, 그것도 최대 2,000명 정도의 병력을 동원한 정도였고, 중앙에서 이러한 정도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장수 또한 이일과 신립의 두 명이 전부이다. 임진왜란에 대비하여 준비를 철저하게 한 장수까지 포함한다면 김시민 진주판관과 이순신 장군이 전부였다.
 
병력수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차이가 난다. 임진왜란 초기 선봉에서 전투를 벌인 일본군은 1번대와 2번대, 3번대이다. 이들 병력의 합만으로도 4만 7,500명이다. 또한 이들 선봉군을 따라 조선에 온 총병력은 참전이 확인된 병력만으로도 22만 4,774명이다.

이에 비해, 이를 맞이한 조선병력은 중앙군과 지방군, 수군까지 모두 합해도 14만명 정도이다. 그것도 병력이 분산되어 있었고, 대규모 전투를 치른 경험이 전혀 없었다. 특히 전투원 개인의 수준 차이는 극단적이다. 일본군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싸움을 하며 살아온 직업무사였던 반면, 조선군은 활과 검을 다루어보지 않았으며, 평소에 농사를 짓던 농부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무관을 선발하는 시험이 꾸준히 지속되면서 말을 타고 소규모 부대를 이끌 수 있는 조선무장이 다수 있기는 하였다.
 
출처@'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임진왜란 이야기(출판사 논형)'
화기에 있어서도 일본군은 단기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체병력의 10%가 넘는 3만명 정도가 조총으로 무장되었고, 조총수 이외의 병력도 매우 우수한 창검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또한 일본군은 공성전을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는 우수한 공병기술도 갖추고 있었다. 반면, 조선군은 개인화기 면에서 보잘 것이 없었다. 동원된 병력 모두에게 창검을 줄 수 없을 만큼 기본 무기가 부족했다. 먼 거리에 있는 적을 쏘아 맞출 수 있는 활이 있기는 했지만 조총에 비교했을 때는 파괴력이 약했다.

조선군이 일본군에 비해 우위에 있던 화기는 화포이다. 단, 모든 조선 부대가 화포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전투준비를 치밀하게 한 전투에 있어서 조선 화포는 매우 큰 위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었다. 즉, 각종 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이 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조선수군이 화포를 장착한 선박을 이용했다는 것이고, 김시민목사의 진주대첩과 권율장군의 행주대첩에서도 미리 화포를 준비하여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했다는 점이다.
 
출처@'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임진왜란 이야기(출판사 논형)'
이상의 대규모 전투경험, 병력수, 화기 측면에서 조선은 단기전에서 일본군과 전투다운 전투를 치르기 어려웠다. 하지만 전투가 조선 땅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장기전에서는 전투력에서 다른 측면을 고려하여 비교되어야 한다.
 
조선군과 일본군의 전투비교.출처@'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임진왜란 이야기(출판사 논형)'
조선군과 일본군 간에 전투가 길게 벌어짐으로써 조선군도 전투경험이 쌓였다. 특히 일본군이 평양성을 점령하여 주요 거점을 점령한 이후, 중소도시 및 고을을 점령하기 위해 소규모 병력으로 분산 파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군단급 대규모 전투가 아닌 조선군이 감당할 수 있는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이러한 소규모 전투는 조선무관도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능력을 갖추었고, 조선군도 그 때까지의 패전을 경험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병력수에 있어서도 일본군은 28만 여명으로 이루어진 초기 참전군 이외에 병력 보충이 어려웠지만, 조선군은 병농일치의 체제로 인해 지속적으로 병력을 보충할 수 있다.
 
 특히 조선군은 임진왜란 초기 두 달간 있었던 대규모 전투 이후 발생한 소규모 전투에서는 지형지물을 이용한 유격전으로 대응하여 일본군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조선군은 백성을 협력을 받아 각종 정보의 우위를 점한 채 전투를 치렀고, 무엇보다도 무기와 병량 보급에 있어서 조선군은 일본군에 비해 확실한 장점을 보유하였다. 따라서 조선군은 단기적으로 초전의 대규모 전투에서 패전을 거듭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두드러지지 않은 수많은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가졌다.

즉,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 모두 상대방의 장점을 모르는 무지에서 시작된 까닭에 조선과 일본 모두 비극을 맞게 된 것이다. 조선은 일본의 엄청난 군사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여 초전에 대규모 전투에서 거의 대응을 하지 못한 반면, 일본은 조선이 수와 당의 침략을 물리친 고구려의 후손이며 몽골과 40년 전쟁을 치른 고려의 후예라는 것을 모르는 무지와 오만으로 조선을 침략함에 따라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된다.
 
본 매체는 박희봉 교수의 저서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출판사 논형)’를 발췌 1주일에 두 번 연재하고 있습니다.
 
‘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는 국가통합을 위한 사회자본의 역사적 상징 모델을 진주성전투에서 찾던 중 발견한 임진왜란 전사의 왜곡과 역사의 진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박희봉 교수는 조직론, 리더십, 사회자본 등을 강의하며 연구하고 있다. 특히 ‘사회자본’이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라는 관점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 박희봉 교수: 한양대 행정학과,한양대 대학원,Temple University 박사,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현 중앙대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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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봉  hbpark@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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