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공자의 어록인「논어」〈향당12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공자의 집 마구간에 불이 났을 때, 공자께서「사람이 다쳤느냐.」고만 물었을 뿐 말이 다쳤는지 물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공자가 왜 위대한 인물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을 모든 것의 꼭대기에 놓았던 것이다. 공자라고 미물의 생명에 소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에게 있어 사람의 안위는「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이 세상은 인간만이 씨줄이고 날줄이어서 도저히 인간을 빼놓고서는 이야기가 성립되지도 않거니와 이야기꺼리도 없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줄곧 인간의 자연적·생물적인 환경은 물론 이거나와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환경을 개선하거나 넓히기 위한 천신만고(千辛萬苦)라고 할 수 있다.
왜 나라가 필요한가? 인간을 극대화 해주기 때문이다. 왜 대한민국이 있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지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인간의 존엄과 위엄을 잘 구현해 주고 보장해 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대한민국을 조국이라 부르고 그리워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야말로 자연도태설에 따른 약육강식의 나라도 아니고.「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를 추구하는 나라도 아니며, 갖가지 결정론이나 많은 원인주의를 배격하면서 인간이 아프면 산천초목도 아프고 국민이 아프면 하늘과 땅도 아파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천하의 도(道). 나라의 도(道). 치국의 도(道). 정치의 도(道), 저자거리의 도(道)가 어디 따로 있는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지키며. 사람을 아끼는 것이 도(道)인 것이다. 인간을 훼손하는 것은 그것이 국가나 권력이라 해도 그것은 악이다. 국가의 존립근거나 존립토대도 사람이며, 권력이 정통성과 정당성을 계속 부여받을 수 있는 것도 이 사람인 것이다.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이고. 역사는 갇힌 것이 아니라 자유스러운 것」이라는 말도 이 사람을 상정(想定)한 말이고.「역사는 끊임없이 가공하여 다시 써지고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말도 이 사람을 염두에 둔 말인 것이다.
몇 몇 사람은 국가의 권위나 권력의 권위를 말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권위와 국민의 권위가 드높아지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다. 나는 국가와 권력이 국민을 칙사(勅使) 대접하고 국사(國士) 대접했다는데 충성스러운 국민이 없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는 형상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형상 없는 신을 더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나는 인간을 위해 울어본 사람만이 나라를 위해 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태까지 인간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나라를 사랑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공자의 말이 오늘날까지도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은, 공자의 세계관은 깊고도 넓은데 어느 순간에도 인간을 붙잡고 놓지 않은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공자가 다시 살아나서 대한민국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그때와 마찬가지로「사람은 다치지 않았느냐.」고만 말할까? 아니면 마음이 바뀌었을까?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김성춘 kimmaeul@hanmail.net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