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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대한민국이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기여
전영준 | 승인 2015.11.22 19:37

   
▲ 김영삼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서거했다. 향년 88세

[전영준 푸른한국닷컴 대표]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부터 혈액 감염 의심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21일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회복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넜다.

서울대병원 측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원인에 대해 "심장 혈관이 좁아지고 막힌 부분이 있어 과거에도 여러 차례 시술을 받았다"라며 "직접적 원인은 허약한 상태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이 겹친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0시 22분 서울대병원에서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을 중환자실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또 장례는 5일장으로 하고, 오는 26일 발인하기로 했다. 빈소는 1호실에 차려졌다.

한편 유족 측과 행정자치부는 장례는 국가장 장지는 현충원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12시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국가장 거행을 공식 결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13년 4월 5일 폐렴증세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가 음식물 섭취가 어려운 연하장애, 뇌졸중 초기 증세 등 합병증을 겪어 중환자실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중환자실을 오가며 치료받을 때만해도 국민들은 곧 돌아가시는 것 아닌가 우려를 표명했지만 2014년 10월 15개월만에 퇴원을 하자 국민들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 생환(生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놀라워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경남 거제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 씨와 어머니 박부련 씨 사이에서 6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통영중학교에 다닐 때 일본인 학생들과 싸움을 벌이고 한국 학생을 차별하던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훼손했다가 무기정학을 당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배짱 있는 성격이었다.

광복 후 경남중 3학년에 편입했다. 당시 하숙집 책상머리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는 글을 써서 붙여 놓는 등 대통령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51년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거제에 출마해 만 26세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모두 9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돼 김종필 전 국무총리, 박준규 전 국회의장과 함께 최다선 기록도 갖고 있다.

여당의 젊은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김 전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사사오입 개헌)에 항의하며 자유당을 탈당하고 민주당 창당에 참여, 야당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그는 야당 지도자로서 몸집을 키워 나갔다. 1963년 군정 연장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속됐고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타고 있던 승용차 창문에 괴한들이 초산을 뿌리는 테러를 당했다.

1979년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뒤 “박 대통령은 물러날 준비를 하라. 불행한 대통령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고 했던 그는 같은 해 10월 YH무역 여공들이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인 사건을 계기로 총재 직무집행 정지를 당하고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원직에서 제명당하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을 남겨 민주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실패하고 신군부가 집권한 뒤 가택연금과 정치활동 규제로 11, 12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등 시련은 계속됐다. 1983년엔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민주화가 된 1987년 12월 대선에서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해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권토중래를 노리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0년 여당이던 민정당,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가 되었다.

지난 1990년 3당 합당이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투쟁 대상과 손을 맞잡는 것에 대한 비난에 대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한다"며 합당을 결행했다.

결국 1992년 14대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문민시대를 열며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

김 전 대통령은 영원한 라이벌 DJ에 대해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라고 표현하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죽기전 병원을 방문해 화해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제14대 대통령으로 임기말 경제운용의 실패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초래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으나 재임 기간 중 어느 대통령에 못지않은 개혁 정책을 해 우리나라가 한 단계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 공개제도를 전격적으로 도입해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기여하였다

이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부정부패와 12·12 쿠데타에 대한 역사의 죄를 물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시도하였다.

또한 일제시대의 상징이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고 쇠말뚝이 뽑히는 등 일제 강점기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군 개혁에도 박차를 가해 군을 장악해온 사조직 '하나회' 해체와 비밀스러운 권력의 상징이던 청와대 안가를 철거하고 청와대 앞길도 개방했다.

또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를 도입함으로써 지방분권의 첫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추세에 맞춰 기업에 대한 규제를 줄이고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을 개방하는 정책을 펼치는 데 힘을 쏟았다.

김 전 대통령은 2002년 한일월드컴을 유치하는 공로와 1996년 9월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 위한 기반을 닦았다.

한편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관련법과 유족들의 뜻을 살펴 예우를 갖춰 장례를 준비할 것"이라며 "유가족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거듭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아세안 관련 회의를 마친 뒤 23일 새벽 귀국할 예정이며, 국내 도착 이후 빈소를 직접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악연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22일 "명복을 빌며, 손명순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에게 위로를 보낸다"면서 "기독교 신앙이 깊었던 분이니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어 "근래 언론 보도를 통해 병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데 대해 애도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날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문상을 하지 못했다"며 "길게 말씀을 하지는 못했으나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고 "그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민국 민주화를 주도한 역사적 인물로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라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깊이 애도하며 손명순 여사를 비롯한 유족에게 위로를 드린다"라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YS) 서거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뜻에서 이날 하루 예정했던 정치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노무현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과 문민정부 출범을 통해 민주주의의 길을 넓힌 지도자”라며 유가족들에게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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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dugs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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