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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코에 뿌리고 눈에 넣는 백신
이종호 | 승인 2015.09.08 18:42

   
▲ 사진@sbs화면캡처
학자들은 인류 최초의 발명품은 이쑤시개라고 믿는다.

[이종호 과학국가박사]180〜200만 년 전까지 인류의 조상들은 초식동물이었다. 이들 인류의 조상이 정확히 어떠한 연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육식을 시작했는데 짐승의 고기를 물어뜯기에 적당한 치아 구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와 이 사이의 틈새를 디아스테마타라고 한다. 개는 위턱 맨 앞에 디아스테마타가 있다. 그래서 아래 어금니와 앞니 사이를 위쪽으로 내밀 수 있다. 또한 동물들은 아래 어금니가 길게 비스듬히 튀어나오기 때문에 위 어금니와 앞니 사이에는 일정한 틈이 생긴다.

이 틈새 때문에 먹이를 잡아먹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어금니가 충분히 자랄 수 있고, 이 사이에 찌꺼기가 끼지도 않는다. 반면에 인간은 이 디아스테마타가 없이 모든 이가 붙어 있다. 아직 불을 발견하지 못한 고대 인류가 음식물을 날로 먹고 찌꺼기가 이 사이에 끼었을 때, 틀림없이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이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 이쑤시개가 발명되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마크 티포트 박사는 180만 년 전 인류 조상의 유골에서 발견된 이빨과 이빨 사이에 홈처럼 파인 이자국은 이쑤시개를 사용한 것이 틀림없다고 단언했다. 이 홈들은 호모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하여 유럽과 아시아에 살았던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크로마뇽인)의 치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쑤시개를 발명한 이후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에게 유익한 도구를 만드는 것 즉 보다 편리하게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들면서 종국에는 현대 문명을 이루었다. 보다 편리하게 살려는 인간의 욕망은 과거에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를 곧바로 새로운 아이디어로 대체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대표적인 아이디어 중 하나가 주사를 맞지 않는 백신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인류의 수명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망률, 특히 여러 가지 전염병에 의한 사망률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자식 반타작이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도 있었다. 자식을 낳아 절반만이라도 장성할 때까지 살아 남으면 복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과거에는 어린 나이에 전염병에 걸려 죽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은 전염병에 대한 특효약이 개발되었기보다는 면역법 즉 백신이 인간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백신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없애거나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질병의 병원체인 세균에 의해 화학적 유독 물질인 독소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질병의 1차적 원인이 된다. 백신이 몸속에 투입되면 우리 몸의 항체가 이에 대응하는 훈련을 하고, 그 결과 체내에 기억세포가 만들어진다. 나중에 세균이 체내에 침입했을 때 기억세포가 활성화하면서 세균을 무찌를 항체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그 결과 추후의 감염에 저항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백신의 원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백신 예방접종 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각종 전염병에 걸릴 확률은 20세기 초에 비해 90%이상 감소했다. 천연두는 1970년대 후반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췄고, 21세기 들어 소아마비는 일부 아프리카 지역 등을 제외하면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현재까지 개발된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환은 27가지 이상에 이른다. 매년 백신 접종을 통해 약 600만 명이 목숨을 구하고 있으며, 75만 명의 어린이가 장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백신의 역사는 제너(Edward Jenner)가 천연두 예방을 위해 종두법을 발견한 17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말엽까지 천연두는 가장 무서운 질병의 하나였다. 천연두로 사망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앓고 난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흉해졌기 때문이다. 종두법의 효과가 증명되자 제너의 예방 접종은 급속도로 전 유럽에 퍼졌다. 역사상 이처럼 급속히 그리고 널리 퍼진 의학적 혁명은 없었을 것이다.

제너의 종두법 개발 이후 디프테리아, 파상풍, 천연두, 소아마비, 홍역, 유행성이하선염, 풍진에 대한 백신 등이 개발돼 유명무실한 질병으로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급속히 발달한 조직 배양기술은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분리해 키워내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심재우는 이를 토대로 소아마비 백신을 비롯해 B형간염, 결핵, 디프테리아, 홍역 등 현재까지 개발된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환은 27가지 이상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어린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적어도 10여 종의 백신을 접종받는다.

전통적인 백신은 유정란에서 바이러스를 배양한 뒤 조각 내 주사제에 넣는 방식이다. 예방이 가능한 질병의 영역은 주로 바이러스 질환에 한정됐으며, 백신 생산에 6개월 정도의 긴 시간이 소요됐다. 이런 유정란 백신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생겨난 것이 세포 배양 백신이다. 동물의 기관이나 조직 세포를 배양액에 담고 기계 속에서 바이러스 등을 배양하는 것으로 유정란 방식보다 백신 생산 기간이 짧아 갑자기 신종 플루와 같은 전염성 질병이 유행할 경우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여기서 보다 업그레이드된 것이 DNA 배양 백신이다. 이는 죽은 병원균을 직접 주사하는 것이 아니고 동물세포 안으로 바이러스의 DNA를 집어넣어 단백질을 만들어 내면 인체는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이 단백질을 파괴하기 위해 면역시스템을 통해 스스로 항원이 만들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생산이 어려웠던 에이즈와 암, C형 간염, 천식, 말라리아 등의 백신은 이 방식으로 생산된다.

이들 백신의 불편함은 주사로 맞아야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신이라면 어릴 적에 울어 가며 맞았던 주사 공포증을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백신 접종이 어릴 적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수없이 많은 회수로 접종받아야 하는데 이처럼 불편한 일은 없다.

학자들이 착안한 것은 모든 백신을 한 번에 맞을 수 있는 슈퍼백신이다.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는 물론 소아마비까지 한 번의 접종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모든 백신을 통합할 수 없으므로 백신 접종 숫자는 확연히 줄어들지만 이 역시 주사로 맞아야 하므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학자들이 여기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우선 주사라면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용으로 기존 주삿바늘보다 10배 이상 짧은 극소주사기를 개발했다. 이 주사기는 길이 1.5㎜로, 기존 주사기의 약 10분의 1이며 근육주사인 기존 독감 백신들과는 달리 피부 내 진피 조직으로 직접 주사한다.

극소주사기도 주사기이므로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아예 주사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백신은 그동안 의학자들의 꿈이었는데 이들 꿈은 서서히 실현되고 있다. 우선 먹는 백신이 있다. 5세미만의 영유아 95%가 감염되는 로타바이러스는 설사와 고열을 동반한 장염을 일으키는데 먹는 백신은 영유아들이 거부감 없이 접종할 수 있도록 튜브에서 짜 먹이는 형태로 개발됐다.

과일백신도 등장한다. 바나나에 콜레라 백신 유전자를 주입한 후 그 바나나를 돼지에게 먹였더니 콜레라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고무된 학자들은 예방주사 대신 활용할 수 있는 식품으로 전염병 백신유전자를 넣은 배추나 토마토를 개발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 배추로 담근 김치나 토마토만 먹어도 병원균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

혀 밑에 넣는 백신인 ‘설하 백신’도 개발됐다. 설하 백신은 말 그대로 백신을 혀 밑으로 투여하면 구강 점막을 통해 몸 안에 흡수되고, 병원체의 주 침투 경로인 호흡기·소화기 등에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형태다.

코에 뿌려서 흡입하는 방식의 스프레이형 생백신이나 눈에 넣는 백신은 의학자들의 꿈을 가장 잘 실현시켜주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백신은 살아있지만 독성은 없는 병원체다. 콧속에 생백신을 스프레이로 뿌리면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신호물질인 사이토카인이 48시간 안에 분비되면서 선천적인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다양한 바이러스를 공통으로 방어한다.

독성이 없어 백신을 맞은 뒤 고열이나 기침 같은 아픈 증상이 없고 사용이 간편하며 감염 2~3일 전에도 효과를 볼 수 있어 신속하게 사용될 수 있다. 특히 약물이 직접 인체 순환기를 통해 유입되므로 기존 백신보다 높은 면역율을 보이지만 백신이 뇌로 들어가는 부작용도 있다는 보고도 있어 이들 부작용만 제어할 수 있으면 크게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넣는 점안 백신도 개발된다. 점안 백신은 짧은 시간에 대단위 접종이 가능하므로 인플루엔자 등 집단 면역이 필요한 경우 상당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점안백신은 눈에 가려움증이나 염증 등 특별한 부작용이 없으며 특별한 보조제 없이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소화기 질환에도 투여가 가능하며 성분을 바꿔 투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을 괴롭게 만드는 수많은 질병은 물론 주사기의 공포는 근간 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

『알고 싶은 과학의 세계』, 리처드 플레이스트, 문예출판사, 2000.
「백신의 모든 것」, 심재우, 중앙일보, 2011.03.08.
「예방주사 대체하는 백신 바나나」, 이충환, 과학동아, 2002년 8월.
「유니버설 백신 디자인을 향해」, 성백린, 과학동아, 2007년 10월
「'주사 대신 눈에 넣는 백신' 개발 길 열려」, 최은미, 머니투데이, 2010.11.24
「굿바이! 주사기-이젠 바르고 뿌리는 백신」, 손택균, 동아사이언스, 2005.05.23

■ 이종호 과학국가박사

   
 
1948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 취득. 1982년 과학기술처의 유치 대상 해외 과학자로 선정돼 프랑스에서 귀국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기.

'노벨상이 만든 세상',‘로마제국의정복자 아틸라는 한민족’등 85권의 과학 도서를 저술했다. 현재는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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