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선비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뜻을 편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 같다.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사람은 고독이 무서워 사회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더불어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그것을 인간 또는 인간관계라고 부르는데,「독립채산제」가 동기부여가 되어 자본주의의 장점이 되는 것처럼 그 인간 또는 인간관계에서「알아줌」은 제 1의 동기부여인 것이다.
지감(知鑑)이 바로 그것이고. 감우(感遇)가 바로 그것이다. 옛날 섭정이라는 사람은 엄중자가 자기를 알아주기 때문에 협루를 찌르고 자기의 얼굴을 못 알아보게 한다.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의 알아줌에 진나라 시황제를 제거하기 위해 역수(易水)를 건넌다.
옛사람들은 자기 뜻을 펼칠 수 있었을 때 뜻을 얻었다고 하여 득의(得意)라고 했으며, 자기 뜻을 펼치지 못했을 때는 실의(失意)에 빠져 풍월(風月)을 벗 삼았다. 또 옛사람들은 자기가 먼저 사람들 앞에 나가면 아부나 영합으로 여겼으며, 시림들이 먼저 찾아오는 것은 선비를 대우하는 것으로 여겼다.
자기 조상중의 가장 훌륭한 분인 태공(太公)이 기다리던 그 사람이라는데 여상이 강태공이 되어 상나라를 치지 않을 수 없고. 유비가 세 번 찾아와 뵙자하는데 제갈공명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위징은 한 때 당태종을 죽이려 했음에도 자기를 등용하는 당태종에게는 목숨을 건 간언(諫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약용은 자기를 알아주는 정조가 살아있을 때는 용의 날개를 단 것 같았지만, 정조가 죽자 기다린 것은 유배생활 18년이다. 한신이 처음에는 항우를 섬겼으나 항우가 그의 계책을 듣지 않자 유방에게로 도망가 천하통일에 앞장선다.
이렇게 사람은 본능적으로 식욕과 색욕이 충족되면 자동적으로 사회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이 사회적 욕구야말로 식욕이나 색욕보다 더 오래되었고 강렬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두께도 더 두껍고 뿌리도 더 깊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명군(名君)이 있으면 현신(賢臣)이 나오기 마련이고, 암군(暗君)이면 간신(奸臣)이 나오는 것으로 연결되는데, 이는 높은 안목이 높은 안목을 만나고 조야(粗野)한 사람이 조악(粗惡)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어떻게 사는가? 이 남자도 옛 선비가 물을 먹고도 고기를 먹은 체하고 걸어가도 수레를 타고 간 것처럼 그 흉내를 낸다. 또 운 좋게 무리 중에 안목이 높은 사람이 있어 초치하면 동서고금의 성패, 이해득실, 흥망성쇠를 이야기 하겠지만 그런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비록 모수가 스스로 천거를 했다는 고사가 있지만 맹상군이 어떻게 오늘까지 살 수 있겠는가. 이 남자에게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은 무시이고 모욕이며 치욕이다. 그러나 알아줌에는 영광으로 알고 견마지로(犬馬之勞)를 아끼지 않는다.
지금도 이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활기차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사색에 잠길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람의 표정을 보고서 지금 지기(知己)를 만났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채고, 그 지기는 고명(高名)한 사람일 것이라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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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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