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누구나 비켜갈 수 없고 공평한 것이라 공도(公道)라 말해지기도 한다.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중국 송나라의 철학자 주렴계는「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까닭에 죽음은 당연한 것이다 原始反終 故知 死生之說)라고 말해 그 누구라도 반드시 황천(黃泉)에 갈 수밖에 없음을 밝혀준다.
그런데 이 자명한 사실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꿈속의 말처럼 들리는 것 같다. 다른 것은 그렇게 잘 기억하는 사람들이 죽음만은 붕어마냥 아예 잊어버린 모양이다. 이건 천 년 만 년 살 것 같고. 아예 영원히 살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 같지 않고. 사회가 사회 같지 않고.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 비정상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개인이나 사회 또는 국가는 경박하고 천박하다. 로마제국에서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당신도 죽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라틴 말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이는 죽음이 사람들을 뒤돌아보게 하고 점검하게 하며 한 발자국 물러나서 생각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일견(一見) 인류를 패배지로 만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보게 되면 죽음 때문에 인간은 연민과 동정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고. 정직하거나 솔직할 수가 있으며. 영원한 것을 추구할 수 있다. 우리는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감히 할 수 없고」「차마 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새가 죽을 때는 슬픈 소리를 내고」「여우도 죽을 때는 제 굴 쪽으로 머리를 두는 것」과 같아 사람으로 하여금 야박함과 각박함에서 떠나게 하고, 진실과 사실로 돌아오게 하며, 모든 부서지고 스러지며 무너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닭 울음소리 잘 내고, 도둑질 잘한 식객(食客)때문에 위험에서 벗어난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준 맹상군은 그가 죽은 후의 광경을 시로 지었는데「맹상군의 눈물」이다. 우리중의 누구라도 맹상군 같이 죽은 후의 광경을 안다면, 그때에도 으스대고 뽐내거나 거짓말하고 나쁜 짓 하지 않을 것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니 (空手來空手去))
세상사 뜬구름 같다. (世上事如浮雲))
봉분 만들고 사람들 흩어진 뒤 (成古墳人散後)
산은 적막하고 달빛은 처량하여라. (山寂寂月黃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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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위원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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