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어렵게 시간을 내어 평소 잘 알고 있는 어느 지인이 운영하는 서점에 들렀다. 오래전의 가요들을 유난히 좋아하고 통기타 매니아인 본인에겐 기타를 가르쳐둔다는 핑계로 자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였지만 새학기 교직업무로 인해 피로하고 지친 본인의 몸으로는 쉽게 들르기엔 버겁고 무리한 시간이었다.
인문학에 정통했던 관악 S대생들이면 다 아는 관악산 기슭에 위치한 어느 서점, 그 내력은 아득했던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정의와 평등을 몸소 실천하려고 바둥 거렸던 정의 추구 시대(??) 필자를 포함한 소위 운동권의 지식창고이자 그들 무리에서 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던 명소였으며, 그 곳에서 군부독재의 또다른 실체와 광주 518, 박종철, 김세진 등 열사들의 진실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오래전의 번창함은 사라졌지만 그곳의 특수성이 그렇듯, 자칭 진보성향의 도서 애호가들과 그러한 성향을 추구하며 무언가를 위해 뛰는 사람들, 단결을 외치고픈 어느 정당원들 등 ......획일적인 목적의 다양한 사람들이 아지트처럼 생각하며 모여드는 그런 곳이었다.
서점에 책들도 오래전 80년와는 많이 달라있었다. 미쉘푸코와 자크데리다는 여전하였지만, 신군부에 대항하며 이에 독재권력을 타도하고 불평등을 타개하고자 투쟁하려는 순수한 목적의 각종 인문, 사회학도서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이고 그 자리를 복잡한 21세기의 정치, 경제체제를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 구도로 처방하며 안티를 위한 안티, 더 나아가 위험한 분단현실을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대치하려고 애쓰는 듯한 섬뜩한 도서 제목만 눈에 들어 왔다.
바뀌어 있는 본인, 바뀌어 있는 도서들 ......그리고 사라져간 사람들......그자리를 저항할 꺼리를 애써 찾아 헤메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특정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포퓰리즘적인 구호만 난무한다.
소통에 이질적인 사람들과의 어설픈 대화는 또 다르게 느껴지는 안 맞는 감정들만 만들어 질 뿐이었다. 이내 본인과 그들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별개의 사람처럼 느껴졌고 현실의 피로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념을 맹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확연한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기타를 치며 부르는 나만의 향수의 노래들과 오래전의 운동 가요는 그들에겐 오래전부터 찌들어 있는 찬송가의 일부였을까?
그 곳의 방문객의 대화를 통해 알아차릴 수 있는 분위기에서 미루어 보아 순수한 감성과 저항은 사라진지 오래고 특정한 목적에 맞게 각색된 지금의 그곳으로 변해있기에 결코 오래 머물수 없는 장소로 느껴졌다.
진정 필요한 일을 하려고 땀 흘리는 자와 이와 반대로 이념을 위해 일하고 맹신하는 자들의 첨예한 대립 !
그 곳에서 "아침이슬" 도 "상록수"도 점차 사라져 가는 현실이 슬펐지만, 더욱 아쉬운건 아련한 80년대의 기억은 추억의 유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더더욱 가슴이 저린다.
다음 주 본인에게 기타를 배우겠다던 어는 여대생들과의 약속이 망설여진다.
<임영호, 조각설치미술가, 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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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art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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