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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 별세, 위대한 삶 뒤엔 아내가 있었다.
전영준 | 승인 2012.02.25 02:13

   
▲ 부시 미 전 대통령과 함께한 강영우 박사 가족. 사진@sbs뉴스화면
강영우(68) 박사는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 시간도 축복”이러며 이 세상을 떠났다.

[푸른한국닷컴 전영준 칼럼니스트]정상인도 누려보지 못하는 명예를 시각장애인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장애위원(차관보급)을 지냈던 강영우 박사는 2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강영우 박사는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할 시간도 허락받았습니다.” 라며 성탄절에 지인들에게 메일로 고별 인사를 했다.

그는 부인과 가족,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세상과 담담하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 박사는 어머니가 아들의 실명 때문에 충격을 받아 뇌일혈로 세상을 뜨자 고아가 된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장애인 재활원으로,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남동생은 철물점으로. 재활원을 전전하며 수년간 방황했다.

그러나 그는 실명했지만 세상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됐다.

그는 지난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임명으로 상원 인준을 거쳐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다. 미국인도 정상인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 낸 것이다.

강 박사는 정책차관보로 6년동안 일하면서 미국의 5천400만 장애인을 대변하는 직무를 수행했고 장애인의 사회 통합, 자립, 권리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는 “두 눈을 잃고 한평생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얻게 됐다”면서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강영우 박사가 별세하기까지 그를 만들어 준 이가 있으니 바로 아내 석은옥 여사다.

그의 뒤에는 한평생 그의 지팡이가 되어준 아내 석은옥씨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세상적 명예와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었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석은옥 여사는 숙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걸스카우트 신입회원으로 그를 돕는 프로그램에 동참하면서 강 박사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 후 자원봉사자로 1년, 누나로 6년, 약혼녀로 3년, 그리고 아내로 34년을 그의 그림자가 되어 살아왔다.

석 여사는 주말이면 맹학교 기숙사에 찾아가 책도 읽어주고, 안내도 해주는 일을 1년 정도 봉사하다 보니 정이 들어,그를 동생으로 삼았다.

누나로서 할 일이 정말 많았다.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면 도시락을 싸들고 따라가야 했고 빨래, 장보기부터 대학 진학 준비에 이르기까지 온갖 뒷바라지를 해야 했지만,동생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내게 기쁨이었다고 했다.

석 여사는 그와 만난 지 5 년째 되던 해, 그동안 혼자만 생각해온 유학 계획을 그에게 털어 놓았다.나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는지, 그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며 반대했다.

석 여사는 좀 당혹스러웠지만, 차분히 그를 설득했다. 결혼을 해서도 시각장애인 교육과 재활을 천직으로 알고 계속할 텐데 더 늦기 전에 유학을 다녀와야겠다는 말에 결국 그도 동의했다.

석 여사는 1967년 9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동안 정이 든 그와의 이별은 큰 아픔이었다.

석 여사가 떠난 뒤 강 박사는 마음을 독하게 고쳐먹고 대학 입시에 전념했다.그리고 1968년 연세대 문과대 교육학과에 10등으로 합격했다.

석 여사는 유학간지 15개월 만에 귀국했다. 강영우 박사를 돌보기 위해서다.

그들은 더 이상 누나 동생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1968년 12월 22일,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함께 연세대 백양로를 걷던 중 강 박사는 석 여사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두 사람은 비밀리에 약혼식을 올렸고, 결국 가족과 친지들의 받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 무남독녀 외동딸을 둔 홀어머니가 애지중지 기른 딸을 맹인에게 준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석 여사는 친구들이 모두 판사, 의사, 약사, 대기업 간부의 부인이 되어 있을 때 연하인 맹인 학사를 신랑으로 맞은 것이다.

그래도 어찌나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는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아 하객들의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들은 출세지향적이 아닌, 성취지향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 맹인이기 때문에 넘어야 할 물리적, 심리적, 법적, 제도적 장벽을 넘을때마다 오히려 성취감을 느꼈다.

또 쾌락보다는 보람을 추구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극복할 때마다 승리감과 보람을 느끼며 감사할 수 있었다.

1976년 4월 25일, 강영우 박사는 드디어 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 박사는 고국에 돌아가 대학 강단에 설 기회를 얻지 못해 무직자로 8개월을 보내기도 했다.

석 여사는 “나는 비록 학사복을 입었지만, 남편이 받은 박사학위가 나 자신의 성취인 것처럼 느껴져 더 행복했다.”고 자랑했다.

강 박사는 얼마 후 인디애나 주정부 교육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출퇴근은 석 여사의 몫이었다.

석 여사는 되레 “그동안 무사고 운전으로 남편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에 되레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은 450만 명에 달한다. 그중 2500명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으며, 그중 500명은 상원 인준까지 받아 이름 앞에 ‘Honorable’이 붙는다.

먼 이국땅에 유학 와서 이민자로 정착한 지 사반세기 만에 강영우 박사는 ‘Honorable’이라는 경칭이 붙는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가 되었다.

석 여사는 강 박사의 지팡이가 되어 헌신적인 아내로, 두 아들을 잘 키워 훌륭한 며느리들까지 본 어머니로 살아온 본인 자신도 자랑스러웠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더 존경스러운 것은 그 자랑을 “선명한 비전으로 내 인생을 인도해 신앙 안에서 명문가를 만드는 동반자가 되어준 남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며 되레 남편에게 영광을 돌렸다.

아무나 맹인의 아내가 되어 어려운 내조를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석 여사는 “ 나는 그의 지팡이가 되어, 때로는 희생을 요하는 힘겨운 내조를할 때도 그 일을 사랑하고 즐길 수 있었다.”며 “그의 성취를 나의 성취로, 그의 성공을 나의 성공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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