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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 (適者生存)
김병관 | 승인 2012.01.18 23:39

   
▲ 김병관 칼럼위원

[김병관 칼럼위원, 전 서울시 재향군인회 회장]

일본의 한 어부가 방어를 양식하여 중동지역으로 수출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먼 뱃길로 수송을 하다보니 고기들이 지치고 더러는 죽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품 가치도 별로 신통치 않았다.

뭔가 묘책이 없을까 궁리 끝에 작은 상어 한 마리를 잡아다 수족관에 넣었다. 수족관 속은 순식간에 평화가 깨지면서 방어들은 상어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느라 쉴 틈이 없게 되었다. 결국 굼뜬 놈 몇 마리가 상어의 밥이 되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팔팔하게 살아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미꾸라지 양식도 마찬가지다. 미꾸라지를 잡아먹는 메기를 함께 넣어 놓게되면 성장도 빠르고 오히려 번식도 잘 한다고 한다.

생태계의 일원인 인간세계에서도 이 같은 법칙은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시장 원리라는 것도 생태계의 구조와 다를 바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질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강자의 힘에 의해 통제되고 순환되는 것이 우주 만물의 이치인 때문이다.

소극적인 공생과 획일적 평등주의는 결국 도퇴되어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난 역사는 어김없이 증명하고 있다. 유사이래 가장 맑고 깨끗하게 개혁 되었다던 공산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역사의 장막 뒤로 사라지고 있는지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를 돌이켜 보아도 자명한 부분이 많다. 성장만을 추구해온 세력들은 비록 폭력적이긴 했어도 효율을 극대화하여 민족중흥의 기틀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착취와 차별을 적대시하고 분배와 복지를 우선하는 등 매력만을 추구해온 소위 민주화 세력이 지금의 총체적인 위기를 불러오게 할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효율과 매력을 조화시킬 수 있는 지도력이 부재하면 양극의 논리가 배를 산으로 몰게 된다는 사실이 자명해 진 셈이다.

무한 경쟁으로 세계와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절박한 시점에 한 사회지도층 인사가 “6·25전쟁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고 항변하는 이유를 우리는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좌익이 더 이상 국정을 농단치 못하게 우익단체가 총궐기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기업원 민병균 전 원장은 민노총의 강경투쟁, 시민단체의 소액주주운동, 사립학교법 개정,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상호지보 철폐 등 지나친 정부의 간섭은 인민민주의식 시스템이라고 까지 극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만약 민 전 원장과 같은 주장이 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 시점에 나왔다면 아마 그는 ‘정신 나간 헛소리’쯤으로 폄하되었을 뿐 아니라 수구 반동 세력으로 매도되어 거리를 활보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당시에는 민주주의를 위장한 폭력적 군중 노선도 민주화라는 대의 속에 가려졌고, 무섭게 끓어오르던 대중 영합주의 이념은 참으로 피땀 흘려 이룩한 업적마저도 매도해 오늘의 이 난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저항과 비판의 부정적 논리만으로는 우리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기업 의욕 상실, 자본재 수입 감소, 수출둔화, 실직자 1백만명, 신용불량자 300만명, 생계형 범죄 증가율 100% 수직상승 등 이 같은 결과는 누구도 짐작할 수 있는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무시하고 대중의 인기에 발목이 잡힌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하여 하향 평준화식 경제·획일적 평등주의로 자유민주주의 국가 이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지난 십 수년 동안 철학 부재의 정치와 경영이 지금에 와서 엄청난 업보를 치루게 된 셈이다. 심지어 60년대의 후진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 전반을 위시한 사회 각계 각 층이 무분별한 욕구를 제한하고 우리의 국가 이념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법칙에 따라 소신껏 투자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 하겠다.

‘세계’라는 큰 틀안에서 유기적으로 경쟁하며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리드하는 일이 지금 정부가 할 일이다.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정책은 차라리 없는것만 못하다. 소국과민이나 적자생존의 원리는 결코 말장난이 아니다.

시골에 살던 한 농부가 난생 처음 서울을 오게 되었다. 그가 본 도회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보다 놀라왔다. 시골과 도시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충격이 아니라 그 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뭘 해서 먹고사는지가 의심스러웠다.

하도 궁금하여 서울역의 어느 지게꾼을 붙들고 물어보았다. 한 데 지게꾼의 대답은 질문하는 농부를 더욱 실색케 했다.

“서로가 서로를 속여서 먹고산다 ”고 했던 것이다. 날카로운 해학과 깊은 통찰력이 번득이는 한 노동자의 답변이다. 어설픈 지식인의 시각도 고관 대작의 흐린 눈으로도 짚어낼 수 없는 도통한 일갈이다.

삽십수년전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나 역시 서울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지게꾼에게 질문을 던진 농부와 같은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노력에 비해 너무 잘 사는 것만 같은 서울 사람들, 땀 흘린 대가 이상의 혜택을 누린다는 것은, 땀 흘린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혀야만 가능한, 일종의 속임수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농부들은 등이 휘도록 일을 해도 끼니 걱정에서 헤어나질 못하였고 그래서 힘들고 가난한 농사꾼의 후예들은 도시로 도시로 발 빠르게 나가기만 하면 성공했다는 풍문이 나돌곤 했다.

땀 흘려 얻는 진실보다 속임수에서 얻는 이득이 더 크고 눈부시다는 기상천외한 이분법, 이 같은 부당한 현실에 적개심이 일면서부터 감히 어린 나이에도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살 수 있는 이상세계를 동경하기도 했다.

한 때 불가에 귀의한 인연으로 인하여 어렴풋이나마 세상이 지극히 공평함으로써 허망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궁리하기도 했다.

당시의 주제로서는 유일한 방법이 큰 부자가 되어 물질로 환심을 산 다음에 목적한 바를 이루어 보리란 꿈을 꾸었었다. 큰 부(富)를 얻으려면 남 다른 노력도 따라야 하였고 먼저 이윤이 많은 사업을 찾아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끊임없이 일을 도모했고, 지나친 사업의욕으로 주변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연로하신 어머니까지 당신의 아들이 딱해 보였던지 “너도 금새 늙어 할애비가 될 터인데 이제는 일을 좀 줄여보라”는 충고까지 하셨다. 그랬다. 온갖 모진 풍상을 겪으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단봇짐 둘러메고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던 그 때를 돌이켜 보면 속 빈 강정 같은 살림살이지만 규모가 크게 불어났다.

지게꾼의 말대로 풀면 고작 남을 크게 속여먹은 결과라 여겨져 힘겹게 살아온 삶이란 게 씁씁한 소태 맛이다. 노력 외에 덤으로 돌아온 양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돌려줄 과정은 얼마나 또 험난할 지 지명의 나이에 접어들자 몰골의 송연함을 느낀다.

처음 서울에 발 디딘 농부를 다시 생각해본다. 떠나온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세월, 편한 것에, 쉬운 것에, 또 좋은 것에만 길들여진 삶이다. 그러자니 얼마나 오래 속고 속이며 살아왔는가. 소박한 꿈이었던, 배불리 먹는 일에서 헤어나자 자신을 비롯한 이웃들은 갈수록 이기적인 쪽으로 황폐화 되어가는, 이 시대의 궁극이 실로 두렵다.

합일되지 않는 물질과 정신의 모순성, 다시 말해 빵과 이상의 불합리, 어쩌면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슴도치의 딜레마>가 아닐까?

추위를 녹이기 위해 몸을 가까이 대면 댈수록 서로를 찔러대는 가시의 모순성과도 같은 것, 그러나 서로의 몸을 덥히되 상처를 입지 않는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공동의 업보를 줄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얼마전 어떤 분이 “도무지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털어 놓았다. 이는 어느 한 개인의 의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라고해서 무얼 크게 알랴만, 삶은 이유가 따로 없는 것이고 그저 영원히 주어진 과제일 뿐이라는 주제넘는 답변을 하고 말았다.

오묘한 질서와 신비로움 속에서 생과 멸을 거듭하는 이 우주의 진실이 결코 불모의 땅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저마다 업연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얼핏보면 서로가 서로를 속여먹는 세상 같지만, 결국은 제 모습 제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살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몸에 돋친 가시에 서로를 찔러대는 아픔이 있지만 결국은 따로 떨어져 살 수 없는 우리는 서로의 운김으로 몸을 데우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선대들은 크게 배운 바 없어도 이 같은 이치를 소중히 여기는 큰 삶을 살아오셨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약삭 빠르고 영특한 것 같아도 결국에는 크게 손해 보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나 역시 인과응보의 섭리를 철떡 같이 믿고 있음에도 급한 상황에 부딪히면 금새 본색이 드러나고 만다.

보이지 않는 덕을 쌓는다는 것은 낙수가 바위를 뚫어가듯 광겁으로 이어져야 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성미 급한 사람들이 넘치고 모자라는 것을 어거지로 맞추려다 보면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고 마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록 아픔이 있을지라도 여러 빛깔로 어울려 펼쳐지는 실상의 신비로움에 더 큰 사랑과 정성을 쏟아 봄으로서 영원이 제 몫일 수는 없는게 세상 이치라는 사실도 함께 느껴보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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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관  brightho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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