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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를 위로하는 가난한 사람들복지 대통령 오웅진신부의 꽃동네 이야기
김병관 | 승인 2011.12.22 21:55

   
 
   
▲ 김병관 칼럼위원
[김병관 칼럼위원, 전 서울시 재향군인회 회장]

가을 햇살 따사로운 토요일 오후, 일행을 태운 버스가 두 시간의 여행 끝에 어느 동상 앞에 멎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한 걸인(최귀동)의 석상 앞이다.

‘음성 꽃동네’ 말로만 듣던 곳이다. 국제라이온스 354-D지구 제 16지역 합동봉사의 일환으로 참가한 첫 방문 이였다. 부끄럽게도 이 미답지에 대한 막연한 고정관념 같은 것이 있었다. 수많은 지체장애자와 행려병자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쯤으로 주변 환경이 몹시 삭막하리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어느 한적한 유원지에라도 온 것 같은 정연한 평화로움이 넘치고 있었다.

‘꽃동네’라는 이름을 무색케 하는, 보다 아름다운 영혼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곳, 내게 그곳은 하나의 작은 이상국으로 비쳐졌다.

⎾육체는 영혼의 지배를 받는, 영혼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착각하고 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것만이 행복인 줄 알고 있는 것이다. 부자는 연혼을 살찌우기 보다 육신을 살찌우고 있다. 그 많은 재산과 풍요는 하늘나라로 돌아갈 때는 다 소용없는 것들이고, 오히려 그것은 지고 가야할 무거운 짐만 될 뿐이다⏌

이는 뇌성마비로 지체장애자가 되어버린 한 걸인이 가진 종교적인 철학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논리가 정연하다.

無心과 無慾으로 가장 드높은 안식을 얻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이 꽃동네의 식구들이다. 꽃동네 역사의 시작이며 이 나라 사회복지에 큰 획을 그으신 오웅진 신부께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기념촬영까지 했다. 대역사의 주역답지 않게 한없이 부드럽고 소탈한 분이셨다.

티 없이 해 맑은 한 수녀님이 우리를 사랑의 교육관으로 안내했다. 대전 엑스포건설자재들을 기증받아 훌륭하고 웅장한 규모를 건축되었다. 사랑이 메말라 가는 세상을 걱정하는 젊은 신부님의 열강을 듣고 꽃동네를 일목요연하게 안내하는 영상비디오를 관람했다.

건립의 동기와 실상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며 무엇인가 뿌듯한 감격의 물결이 내 가슴을 벅차게 했다. 점점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는 세상과는 다른 곳, 오직 자비를 주재료로 사랑만을 생산해 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돌아본 시설은 대체로 젊은 층이 거주하고 있었다. 전신마비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눈까지 멀어버린 서른일곱 살의 여인, 배영희(엘리자벳)의 침대 앞에 발길이 멈춰졌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미동도 할 수 없으면서도 새 하얀 치아를 드러내어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를 맞았다. ‘나는 행복 합니다’라는 자작시를 낭송해줄 때 우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죄악 피해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게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 질 것입니다.”

가히 천상의 음성 이였다. 사지가 멀쩡하지만 정신적 불구자인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그녀는 한없는 사랑과 위로를 안겨주고 있었다.

다음은 유아들이 살고 있는 건물로 향했다. 갓 태어난 아기서부터 막 걸음마 연습을 하는 첫돌 가까운 아이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무수한 생명들이 살아 숨쉬는 이기들의 천국, 기고 일어서고 보행기를 움직이며 조막손을 흔들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안아 달라는 시늉을 하며 양 팔을 벌리기도 했다. 은연중 다가갔다가 수녀님의 제지에 멈칫했다. 안아주는 버릇이 들면 그 많은 요구를 다 감당할 수 가 없기 때문일 터였다.

같은 하늘아래 똑같이 태어난 생명이건만 탄생의 기쁨을 맞이하기도 전에 사람의 체온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는 버림받은 목숨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정상인들이 낳아서 버리기도 하고, 낙태를 못하도록 권유하여 한 명당 350만원씩이나 보상금을 지불하고 아기를 인수해 오기도 한다고 했다. 입양희망자를 원한다는 수녀님의 설명 앞에서 왠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생(生)의 출발이 슬픈 아기들 곁을 떠나 생의 종착지에 다다른 노인들이 있는 중환자실로 안내되었다. 흡사 종합병원을 방불케 하는 병실 마다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입원하고 계셨다. 그런데도 마치 친 혈육들이 정성으로 보살핀 듯 역한 냄새하나 없이 정갈하고 쾌적했다. 노인들을 얼마나 자주 씻겨 드렸는지 손발과 침대시트가 백옥처럼 희었다.

수녀들과 봉사자들의 희생을 충분히 가늠케 했다. 모두가 기력이 쇠잔하여 말이 없는데 할머니 두어분께서 알아듣기도 힘든 구사력을 열심히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윤씨 문중의 종부라면서 포항과 원주에 아들이 있는데 죽기 전에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는 애원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노인의 손을ㄹ 꼭 잡아드릴 밖엔 도리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삶의 질곡들을 굽이굽이 넘어온 노인들이겠는가. 하건만 자식한번 보는 게 소원인 이들은 엷은 노을처럼 사위어 가면서도 어미를 버린 자식을 위해 손에 든 묵주를 잠시도 내려놓질 못했다.

이 무력한 노인들 앞에서 우리 모두가 안고 가야할 공동의 업보를 생각해 보았다. 단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의 근심을 안고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이다. 아무리 하잘 것 없는 삶 일지라도 모두가 참 존재의 의미를 간직하고서 업연에 따라 이 세상을 왕래하고 있을 거라고 위안을 해 본다.

라이온스클럽의 일원이 된 지 어언 십여년, 늘 형식적인 봉사에 식상해 있었는데 이번 걸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의 오랜 소망이었던 실버타운 건설이 구체화되고 있는 시점과 부합된 탓이기도 했다.

마음이 다급해진다. 불신과 이기주의가 만연된 혼돈의 시대, 경제위기와 함께 대량실업 사태까지 사회불안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때 일수록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식보다는 사랑을, 물질보다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침이 무엇보다 먼저가 아닐까 싶다.

버림받은 생명마저도, 아니 버려진 생명들이기에 더욱 귀히 여김을 받는 꽃동네의 철칙은 세상사의 선악조차 초월된 파안지대가 분명했다. 오 신부님의 각별한 주선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황찬길화백 가족의 마술쇼 공연이 이어졌다.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에는 꽃동네 식구들과 경향 각지에서 기도차 찾아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웃고 노래하고 춤추며 한마음으로 즐거워들 했다. 특히 꼬맹이들은 무대의 턱 밑까지 밀고 들어와 출연자들과 함께 천진난만하게 춤을 추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석별파티까지 마련해 주시는 오신부님의 전송을 받으며 밤 10시가 되어서야 서울로 오는 버스에 올랐다. 눈을 감아도 버스의 속도를 따라오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사십년의 머슴살이를 했지만 쇠경 한 푼 받지 않고 홀홀 빈손으로 꽃동네 식구가 되어 살아가는 한 노인의 모습이다. 세상의 가치 척도로는 도무지 잴 수 없는 무일푼의 행복한 나그네, 만약 그가 40년 어치의 새경을 받아 그의 곳간에 채웠다면 오히려 그 재물은 그를 구속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걸 털고 꽃동네로 들어와 다시 행복한 머슴살이를 하면서 먹고 자고 일할 곳이 있으면 그게 바로 천국이라고 호탕하게 말 할 수 있는, 그 어떤 철인도 못 누렸을 청청한 연혼의 자유를 보았다.

사실 우리는 쥐꼬리만 한 도움을 주려갔다가 오히려 큰 도움을 받고 온 셈이었다. ‘돈을 유산으로 남겨주기 보다는 사랑을 물려줘야 한다’는 수녀님의 간절한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환청처럼 들려온다.

자고새면 도시를 건설하고, 과학이 무한경쟁으로 우주를 정복한다고 한들 버려진 우리의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은신할 사랑의 오두막 한 채를 짓는 것보다 나은 발전인가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1998.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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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관  brightho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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