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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민주화 체제 정착·북방외교 개척
전영준 | 승인 2021.10.26 15:12
고 노태우 전 대통령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향년 89세
 
[전영준 푸른한국닷컴 대표기자] 26일 노 전 대통령측은 노 전 대통령 꾸준히 병원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 지병이 악화되면서 26일 운명했다고 발표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후 건강 악화로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머물러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에 모두 불참하는 등 서거 전까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현 대구 동구 신용동)에서 면 서기였던 아버지 노병수씨와 어머니 김태향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구중학교를 다니다가 경북중학교로 전학한 뒤 1950년 한국 전쟁 중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입대하였다. 1951년에 육사에 11기 생도로 입학하여 1955년에 졸업하며 소위로 임관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육사 11기 동기다.
 
노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보안사령관,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 등을 지냈다.
 
전 전 대통령과는 제4공화국 당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해 육군 9사단장이던 79년 12·12 군사 쿠테타와 이듬해 5·17 내란을 주도해 5공화국을 세우는 등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지 사이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신군부의 제2인자로 떠올랐다. 수도경비사령관, 보안사령관 등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노 전 대통령은 대장으로 예편해 정무2장관, 초대 체육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를 거쳐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1987년 6월에는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다른 대안자로 지목되던 노신영과 정호용을 제치고 민주정의당 내에서 대통령 후보자로 추대되었다. 6월 10일 잠실체육관에서 민주정의당 제4차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개회가 열렸고, 노태우는 이 대회에서 민정당의 제13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민정당 대선후보 선출 이후 간선제 호헌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산하자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전격 발표해 ‘87년 민주화체제’를 탄생시켰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에서 민정당 대선후보로 나서‘3김(김영삼 전 통일민주당, 김대중 평화민주당 ,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대선 후보)’의 분열로 직선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을 통해 정국을 ‘여대야소’로 재편했다. 그러나 거여 민주자유당의 계파 갈등으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정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노 전 대통령은 탈당 후 사상 첫 중립 내각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재임 중 성과로는 북방외교가 꼽힌다. 노태우 정부는 공산권 국가를 상대로 북방외교를 추진해 45개국과 수교를 맺었다. 특히 이 기간 중국·소련과 수교한 것은 노태우정부의 업적으로 남아있다.
 
89년에는 여야 4당 합의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마련됐고, 91년 서울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한 화해, 상호 불가침, 교류협력을 골자로 하는 남북 기본 합의서가 채택됐다.
 
노태우의 경제 정책은 자유화와 개방화의 확대였다. 그의 정권 하에서 경제는 연평균 8.5%라는 고속성장을 누렸고,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개최는 발전한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88년 수출은 600억 달러를 돌파하였고 1986년 대한민국은 대외교역사상 최초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이래 그 폭이 매년 확대, 1989년 대한민국은 마침내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반전하였다. 그러나 수출은 1990년대 초 경기침체로 부진을 겪게 되었다.
 
노 전 대통령은 5공청산 차원에서 육사동기이자 쿠데타의 동지였던 전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귀향을 보냈다. 퇴임 후인 95년에는 반란수괴·반란모의·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원을 선고받았다. 1997년 12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지만 최근까지도 추징금 미납 논란에 시달리다가 뒤늦게 완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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