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성질은 불과 같다. 일단 성질이 나면 가리지 않는다.

무슨 짓이고 하고 싶은 짓은 다 하고 만다. 한편으로는 냉혈한이다. 분노로 일그러져야 할 얼굴에 미소를 흘리기도 한다.

다정다감까지 하다. 2중 성격소유자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아 후계자가 되기까지 그의 행적을 보면 냉혈한이나 다름없다.

김일성이 결국 그를 후계자로 지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장남이기도 했고 그의 냉철하면서도 목적을 위해서는 무서운 인내심과 돌파력을 산 것이다.

그러한 그의 행실에는 그 누구도 모르는 1차 음모가 숨어 있었다. 후계자가 되기 위한 부단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알 리 없는 김일성이었지만 김정일을 흔쾌히 후계자로 삼은 것은 아니다. 늘 꺼림직 한 것이 있었다. 너무나 차디찬 성질이었다.

어렸을 때 연못에 빠진 동생이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는데도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듯이 한 그의 성질은 소름이 끼쳤다.

질투나 시기를 부릴 대상이 아닌, 나이 어린 친동생을 눈앞에서 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고 나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의 불같은 성질은 비록 이복동생이긴 해도 김평일을 죽일 듯이 목을 조른 일이 있었다. 계모이지만 함부로 어머니를 대하지 말라는 한마디에 곁가지가 감히 말대꾸한다며 달려들어 목을 조른 것이다. 그 땐 아버지도 말릴 수 없었다. 겨우 호위군관 몇이 말릴 수 있었다.

극과 극을 태연히 넘나드는 김정일을 영악하다고 하기도 한다. 허술한 틈이 없다고 한다.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친화력도 갖추었다고 한다.

단편적으로 봐선 그럴 뿐이다. 그가 영화광이란 건 익히 다 안다. 그가 본 영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영화를 보는 눈은 예리하다.

매년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할 작품을 미리 예견할 정도다. 이번 2차 음모도 영화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다. “암투”나 “간접살인” 같은 추리 영화에서 상당히 발취했다. 

이 시점에서 누가 김정일이 제 아버지를 살인하리라 생각할 것인가. 무엇이 아쉬워 살인 할 것인가. 1인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고 그 아버지가 후계자로 삼지 않았던가.

가끔 잘 못 하는 일엔 혹독하게 야단을 쳐도 자식을 위해서 아비로서 마땅히 질책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들 하지 않았던가. 더 따져 보자.

지금 것 독재는 누가 했으며 세습은 누가 주창했는가? 아들보다 애비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김정일에게 눈초리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일말의 의심은 둘 수 있어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 시나리오는 이미 김정일의 머리에 박혀 있었다. 다만 아버지로부터 후계에 위협이 갈 정도의 질책과 수모를 면하려면 우상조작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책도 발간하고 조형물도 마구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예상할 수 없었던 남북정상회담이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수령님이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위상을 높인 다음 서울까지 방문했을 때, 보고서처럼 서울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면 자신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늙은이가 흥분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 다행이지만 기대할 순 없다. 장수연구소까지 차려 놓은 판에 쓰러지기는커녕 앞으로 10년은 너끈히 더 살 것이다. 그럼 자신은 환갑 진갑 다 지나 간다. 세상도 빨리 발전하지만 2천만 인민 민심도 빨리 변한다.

후계자의 위치가 흔들리다 못해 없던 일이 될 수도 생각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그에게 김일성이 결정적인 충격을 주었다.

“인민들을 거지로 만들어 놔?”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또 다시 중얼거리듯 한 말이 있다.

“....제 동생도 눈뜨고 죽였으니 아무 것도 아니 갔디”

온 몸에 소름이 돋은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건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책임부관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던 김정일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돌아봤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안위에 눈물을 흘린 꼴이건만 그걸 모르는 책임부관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 때문에 직승기가 오다가 되돌아 갔습네다”
“기럼 구급차를 부내라고 해”
“예”

“내가 피양에 가야 겠어. 여기 일은 책임부관이 맡아 하고 하나도 놓치지 말고 다 나한테 보고 하라우”
“....비가 와서 직승기가 뜰 수 있갔습네까?”
“머저리 같은 새끼들이니까 못 뜨지 와 못 떠. 가갔어”

그 후 책임부관이 받은 전화는 구급차도 묘향산 특각 진입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비가 와 산사태가 나 길이 끊겼다는 것이다. 책임부관은 다시 호위국장에 전화를 걸었다.

고립된 특각에서 책임부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질 밖에 없었다. 그것도 전화도 언제 끊길지 모른다. 무선기도 전파방해로 언제 불통이 될지 모른다.

모든 게 최악 상태의 무원고도나 다름없었다. 일국의 원수가 졸지에 쓰러졌어도 구급 방법 하나 없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력이 목을 조여오고 있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북한 전역에 중대발표 예고 방송이 10시부터 계속 나갔다. 7월 9일 12시에 중대발표가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어수선 한 가운데 12시 시보를 기다렸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고함.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1994년 7월 8일 2시에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알린다”

김일성 사망 발표문은 그의 업적을 장황하게 늘어 놨다. 그러고는 하반부에 가서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이시며, 우리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 동지께서 서 계십니다”

2인자에서 1인자로 올라앉을 자리가 마련된 것처럼 보였다.

한편 한국 국내 방송과 신문은 김일성 사망보도를 즉각 내보냈다. 남북 정상회담을 불과 17일 앞두고 상대 정상의 급사는 당혹감을 불러 올 수 있었다.

한 신문에는 “급박한 상황점검”이란 박스 제목에 김 대통령이 즉각 “전군비상”을 전화로 지시했으며 외무부는 4강과 협력 체제구축 강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특히 시선을 끄는 기사는 ‘암살이냐 돌연사냐’하는 부제목을 달고 “평양회담”을 둘러싼 내부갈등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도 했다. 김정일의 2차 음모 시나리오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앞서 김일성의 시신을 확인한 오 진우는 인민무력부장은 즉석에서 지시했다.

“부검을 하라우”

김일성과 빨치산 동지의 말을 거역할 사람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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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news1@bluekorea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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