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서재에 뛰어 들어간 책임부관은 얼어붙고 말았다. 수령님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표정은 저승사자 같았다.

“의사를 부르라는데 뭘 하고 있네!

책임부관은 심폐소생법도 배웠지만 김일성의 병세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응급처치방법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김정일을 밀치다시피 하고는 김일성의 상태를 살폈다.

심장박동은 이미 불규칙적이었고 동공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떠밀린 김정일은 소리 질렀다. 

“호위군관들 뭘 해. 의사를 부르라니까”
한 군관이 뛰어 나갔다.
“어드러셔?”
책임부관 등 뒤에서 김정일이 물었다.
“위급하십네다”
“와 의사는 안 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김일성은 평소 심장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심근경색을 조심해야 했다.때문에 늘 주치의가 최근 거리에 대기하고 있었다. 또한 수령 궁을 떠날 때면 ‘움직이는 병원’이라고 할 만 한 의료설비와 의료진을 태운 구급차가 소리 없이 뒤좇았다.

김일성 수령은 태양이다.

국가보다, 인민보다 위에 군림하는 태양이다. 그런데 지금 특각에는 겨우 의사 혼자 달랑 있다고 했다. 더구나 남북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다. 김정일은 전화기를 찾았다. 이미 책임부관이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어디 전화 걸고 있네?”
“봉화진료소에 걸었습네다”
“원장 대라우”
“어디 있는지 모른답네다”
“뭐이야? 수화기 이리 내라우”
김정일은 난폭하게 수화기를 빼앗다시피 쥐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원장이 어데 있는지 몰라? 주치의는?”

“야, 개소리 집어치고 당장 의사들을 동원해 직승기로 오라 우! 알갔어?”

그 사이 젊은 의사가 청진기를 귀에 꽂고 열심히 김일성을 검진하고 있었다. 책임부관은 어디 갔다 왔는지 급한 걸음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김정일은 아버지의 상태를 묻지 않고 책임부관에게 소리 질렀다.

“어딜 갔다 오네?”
“호위총국장 동지께 보고 드렸습네다”
“와 쓸데없는 짓 하네? 지금 호위총국장이 필요할 때네?”
“비상조치는 취해야 하기 때문에....”
“알았어! 다시 봉화진료소에 전화 걸라우. 의료진이 직승기 로 떠났는지. 아, 또 원장과는 연락이 됐는지 알아 보라우”
“알갔습네다”

김정일의 시선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김일성에게 갔다. 의사는 손을 떨며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지혈하려고 끙끙거리고 있다.

“어떠시네?”

젊은 의사는 벌떡 일어서려다가 무릎이 펴지지 않는지 앞으로 쓰러지듯 기우뚱 했다.

“그대로 앉아 대답하라우”
“....위중하십네다”
“위중한 건 난도 알아. 위급조치는 하긴 핸?”
“함부로 조치를 취할 수가 없습네다.”
“비키라우”

비실비실 의사가 물러나자 김정일은 김일성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얇은 여름상위 밖에 입지 않았는데도 심장 뛰는 감각을 느낄 수가 없었다. 잠 잘 때도 권위를 잃지 않던 얼굴은 고통을 헤매고 있는지 일그러져 보였다. 손을 쓸 여지가 없어보였다. 의사에게 지시했다.

“떠나지 말고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라우”
“네”

걸음을 옮기려던 김정일은 갑자기 온 몸이 좁은 궤짝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나온 것처럼 뻐근했다. 어깨 근육을 풀던 그의 눈에 호위군관들이 근심에 찬 눈으로 김일성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호위군관들은 와 여기 있네? 다들 나가 있으라우”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책임부관에게 집중해 있었다. 그가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자 그제야 다들 물러났다. 김정일로서는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은 이미 후계자로 지명 된 지 20년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일개 호위군관까지 선뜩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을 호위하는 2호위국 소속이 아니고 김일성 수령 호위 전담 1호위국 소속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자신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근래 아버지로부터 부쩍 심한 질책을 받고 있었던 터라 울화가 치밀었다. 인민의 생활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도 잘 살고 있는 양 허위 보고를 올리고 있으며,

암암리에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했을 뿐 아니라 수령을 무시하고 이권개입을 하는 등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질책이 떠올라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조직비서 동지, 의료진을 실은 직승기가 이륙했답네다”
“봉화원장은?”
“상기도 행방을 모르나 봅네다”

온몸 속으로 서서히 달아오르는 전율의 쾌감을 느끼며 김정일은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은 하늘이 점지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지금 장대비가 내리고 있는 것도 하늘의 점지와 같았다. 이 시간까지는 자기의 시나리오에 의해 촬영한 것이었다면 지금 밖에서 내리는 비는 하늘의 격려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책임부관이 재빨리 받았다.

“뭐요? 직승기가 우천으로 특각에 접근할 수 없다구요?”

김정일은 전화를 바꾸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조직비서 동지, 직승기가.....”
“다 듣었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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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news1@bluekorea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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