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2화] 김정일의 2차 음모

김정일을 태운 헬리콥터가 잠시 기우뚱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김정일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사색이 됐다.

순간 그의 손이 등허리에 찔러 넣은 권총 쪽으로 갔다. 얌전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른 쪽 바지 주머니 위로 손을 얹었다.

독침도 그대로 있었다. 오늘 2차 음모 계획이 구체적으로 집행되는 날이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어쩌면 오늘로 2차 음모의 막이 내릴 수도 있다. 지금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척이 50여 성상 쌓은 야심의 결정판이 나오는 것이다.

선회하던 헬리콥터가 김일성이 묵고 있는 묘향산 특각 헬리포터에 착륙하려던 순간 쏟아지는 빗속에 잠시 시야가 가려졌다.

김정일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다시는 헬리콥터를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착륙장 부근에는 이미 호위군관들이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서 있었다.

김정일은 권총으로 가던 손을 오른쪽 바지주머니로 갔다. 호위군관이 앞으로 뛰어 왔다.

“수령님께서 아직도 서재에 계신가?”

김일성이 늦은 시간인데도 서재에 있었다.
김정일은 튀긴 빗물을 천천히 닦으며 다시 한 번 오늘 촬영할 시나리오 부분을 재검토했다.

영화광인 그가 쓴 2차 음모 시나리오는 완벽했다. 국제영화제 각본상 감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감독의 몫이다.

“늦디 않았디요?”
“와 보잔?”

김일성은 얼굴 표정은 마치 달콤한 꿈을 꾸고 있다가 갑자기 흔드는 바람에 깬 사람처럼 몹시 언짢았다.

김정일 역시 어두운 얼굴이었다. 최대 경쟁자이며 장애물이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시선은 책임부관과 호위군관에게 갔다가 김일성에게 향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네다”
“하라우”
“부관들은 물리쳐 주시라요”
“야이들은 있으나 없으니 똑같아”
“안 됩네다”
“기래?”

김일성에게도 할 말이 있었다. 이 기회에 자식에게 단단히 일러 둘 말이 있었다.
군인까지 헐벗게 하고 또 남북 고위급 회담까지 반대하는 안하무인의 오만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김정일이 쓴 오이꼭지를 먹은 얼굴로 버티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조용히 지나갈 것 같지가 않았다. 둘 사이는 총서기와 조직비서지만 그에 앞서 둘은 부자지간이다.
부자지간에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꼴을 아래 것들에게 보이기 싫었다.

“너희들 나가 있으라우”
책임부관이 머뭇거렸다. 김일성의 분신이다. 잠시의 한눈도 팔 수 없다.
“저 짝 구석에 가 있갔습네다”
“구석에?”
“담화가 들리지 않는 저 짝에 가 있갔습네다”
그 때 벼락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나가 있엇!”

김일성도 놀랐다. 아 새끼가 애비 앞에서 소리까지 지르게 된 데 놀라면서도 일순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부르기 전엔 얼씬도 말라우”

김정일이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으나 책임부관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김일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책임부관이 마지못해 문을 천천히 열며 나갔다.

김정일은 문을 꽉 닫았는지 확인했다. 도청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방음까지 완벽해 밖과는 완전히 차단 돼 있었다.

“야, 와 소리지르고 기래?”
책임부관이 나가자 화를 참고 있던 김일성이 버럭 성을 냈다.
“와 소리 지르고 기래?”

김정일은 김일성의 목에 달린 큼직한 혹을 쏘아 봤다. 궁수가 과녁을 보듯 노려보았다. 그런 김정일을 본 김일성은 제풀에 힘이 빠져 나갔다. 그래도 자신은 아비다.

미우나 고우나 후계자로 세운 녀석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처한테서 얻은 장남이다.

마음 같아서는 후처 김성애한테서 얻은 평일을 후계자로 삼고 싶었으나 앉히기도 전에 큰 분란이 날 것 같아 참았다.

그러곤 어려운 국가 형편에 성질은 사나워도 돌파력이 강한 녀석이 더 필요하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말해 보라우”

그러지 않아도 말더듬이 김정일이 재촉하는 소리에 더 더듬어지는 혀를 의식하고 말소리를 높였다.

“와 저를 죽이려고 하십네까?”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는 소린지, 당 조직비서가 총서기에게 하는 소린지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말을 끄집어냈다.

“.....뭐이야?”
“제가 이번 고위급 회담을 반대한다고 누가 기랬습네까? 기래서 고위급 회담이 끝나고 서울 회담까지 끝나면 절 내 치겠다고 하셨디요?”

뜻밖의 충격적인 추궁이었다. 이건 자식이 아비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김정일의 눈은 이미 시뻘겋게 출혈돼 있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가?”

김정일의 손이 등 뒤로 가면서 권총을 빼들었다. 불빛에 총신이 번쩍했다.

“일어서라우요!”

이미 자식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서 살기가 뻗혔다. 그런 얼굴을 본 일이 있다. 다섯 살 남동생이 연못에 빠졌을 때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도 싸늘하게 바라보며 기묘한 미소를 짓던 바로 그 때의 그 얼굴이었다. 김일성은 겨우 일어섰다.

어찔했다. 바로 서기가 힘들었다. 한 손을 책상에 짚었다. 다가선 김정일이 권총을 코앞에 갖다 댔다. 그러고는 장정했다.

찰칵하는 금속성이 들렸다. 앞이 희뿌예 지더니 온 몸의 힘이 일시에 빠졌다. 더 이상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김정일은 지체 없이 오른 주머니에 넣어 온 독침을 꺼내 김일성의 목에 붙은 혹에 찔렀다.

이어 권총과 독침을 제자리에 넣고는 김일성의 윗도리 깃을 양쪽으로 잡아끌었다 가 있는 힘껏 책상 모서리로 향해 밀었다.

순간 거구가 썩은 나무 쓰러지듯 책상모서리에 부딪치며 맥없이 거꾸러졌다. 안경이 튕겨 나갔다. 노인의 눈은 뒤집어져 있었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는 됐다.

“책임 부관! 군관!”

소리가 들릴 리 없다. 문을 열자 책임부관이 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호위군관들도 뛰어 들어왔다. 각기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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