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현대사상연구회 회장]
대한민국이 미국의 앞잡이와 친일파들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 대한민국 건국운동의 핵심지도자인 이승만이 미국의 앞잡이이며, 이승만과 더불어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한민당이 친일파들의 집단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이승만이 미국의 앞잡이이기는커녕 미국정부에 맞서 싸우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추진했다는 사실은 이 장의 4절에서 자세히 기술했다. 대한민국 건국의 핵심인물인 이승만이 그와 같았으므로 대한민국이 미국의 앞잡이들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정 반대되는 그릇된 것이라는 점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민당이 친일파들의 집단인지 여부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민당에 친일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상당수 참여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친일활동 경력자들을 모두 ‘친일파’로 규정할 수 는 없다.
해방 직후 친일파 숙청을 강하게 주장했던 좌익진영의 통일전선기구인 민주주의민족전선은 친일파를 ‘일본제국주의에 의식적으로 협력한 자들’이라고 정의 했다. 이러한 민전의 친일파 정의를 기준으로 할 때 한민당에 참여한 친일 활동 경력자들의 대부분은 친일파로 규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친일을 해야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친일활동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일제의 강요 때문이거나 일제말기 사회단체나 기관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일제가 조직한 단체의 임원 명단에 포함되거나 친일적인 연설을 하고 글을 섰던 인사들이다. 좌익의 여운형이 일제말기 상당한 친일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친일파로 규정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한민당에 참여한 친일경력자의 대부분도 친일파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한민당의 간부진에서 그들 친일경력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일제치하에서 민족운동을 전개한 민족지사들이 차지하는 비율보다 크게 적다. 한민당에는 친일경력자보다는 비록 온건하기는 했지만 민족운동을 전개한 민족지사들이 더 많이 참여했었다. 실제로 한민당에는 분명하게 ‘친일파’로 규정될 만한 인사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것은 한민당을 창당할 때 ‘친일파를 배제하되 다소 융통성을 둔다’는 인선원칙을 준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한민당은 친일파들의 정당이 아니라 극소수의 친일파를 내포한 온건한 민족지사들의 정당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처럼 한민당이 친일파들의 정당이 아닐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에서는 친일파를 배제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전개되었다. 대한민국 건국세력은 5.10선거를 실시하기 위한 선거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친일 부역자들의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까지 박탈하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또한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첫 번째 내각을 구성함에 있어서 친일 경쟁자를 철저히 배제했다.
대한민국 건국 후 관료기구와 경찰조직 및 군대조직에 일제하에서 관료와 경찰 및 장교를 지낸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건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의식적으로 친일을 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생계를 위해서 관리나 경찰로 일을 한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한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이상의 사실들에 비추에 볼 때 , 대한민국이 친일파들에 의해서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실제 일어났던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그릇된 주장임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건국 후 어떤 형태로건 친일파들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정리절차를 취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친일파들에 건국되었다거나 친일파들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로지 대한민국을 비방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억지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양동안, ‘대한민국 건국사’, 573쪽~575쪽, (서울: 현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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