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현대사상연구회 회장]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삶들은 두 가지 근거로 그것을 긍정 평가한다. 하나의 근거는 48년 4월 평양에서 전개된 남북협상이 실제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견해이다.
그런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들은 당시 남북협상의 본회담격인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의 진행과정과 결정사항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 회의에 참석했던 남북한의 지도자급 인사 15명간에 이루어진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남북요인회담)의 합의 내용만을 언급하며 남북협상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주장한다.
대표자연석회의에서 채택된 두 개의 결정서는 남한을 북한처럼 만들 것(곧 공산화통일)을 인정하고 그 회의에 참가한 남한지역의 정당. 단체들이 남로당의 남한총선 반대투쟁에 무조건 동조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아무리 남북협상을 찬양하는 사람들이라도 그것을 성과로 제시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요인회담의 합의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면밀히 검토해보면 그것에도 남북협상의 성과라고 말할 내용이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남북요인회담 공동성명서는 1)미.소 군대의 즉시 철수, 2)미.소 군대의 철수 후 내란. 무질서 발생 부정, 3)미.소 군대 철수 후 전조선정치회의를 통한 통일 임시 정부 수립과 임시정부의 주관에 의한 남북한총선실시, 4)남한단독선거와 그에 입각한 남한단독정부 불인정 등 4개의 합의사항을 내포하고 있다.
남북협상을 긍정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 중 2)항과 3)항의 합의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내란이나 무질서의 발생은 본질적으로 구두 약속이나 문서로서 저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2)항의 합의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것은 미.소군이 철수를 하고 나면 내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남한 민중들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선전에 불과하다. 3)항의 경우에는 전조선정치회의에 참여하게 될 남북한의 정당과 사회단체들의 성격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3)항은 전조선정치회의에 참가할 남북한의 정당과 사회단체 56개의 명단을 제시하는바, 그 명단에는 평양의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정당과 단체들만 기재되어 있고, 남한 우익진영에 속하는 정당과 사회단체는 단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남한 우익진영의 정당과 사회단체들을 전면 배제한 전조선정치회의를 구성하자는 합의를 남북협상의 성과로 본다는 것은 한반도의 공산화통일을 위한 중간단계의 조치를 지지하는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남한의 공산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남북요인회담의 4개 합의사항도 연석회의에서 채택된 두 개의 ‘결정서’들과 마찬가지로 남북협상의 ‘성과’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 노력을 긍정 평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근거는 남북협상을 추진한 김구와 김규식의 민족주의적 의지이다. 그 사람들은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 노력은 그 당시로서는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지라도 남북한의 분단정부 수립을 저지하고 민족의 통일을 달성하려는 민족주의적 대의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긍정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상한 의지에서 출발한 행동이라고 해서 무조건 긍정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아군 병사가 평화를 구현하겠다는 고상한 뜻에서 공격해 오는 적군 병사에게 총격을 가하지 않게 되면 아군은 적군에 의해 몰살당하게 된다. 그 경우 뜻이 고상했다 하여 적군 병사에게 총격을 가하지 않은 행위를 찬양할 것인가?
아무리 고상한 뜻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행동이 타인이나 공동체에게 큰 피해을 줄 경우에는 그 행동을 긍정 평가해서는 안 된다. 북한공산 세력이 공고한 단독정권을 수립해 놓고 북한지역을 사회주의화하기 위한 노력을 확고하게 전개하면서 군사력을 강화하여 그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남한까지 공산화하려는 태세를 취하고 있으며, 남한만이라도 공산화를 방지하려면 남한민중의 의사에 근거한 민족의 정부를 수립하여 남한의 혼란을 방지하고 북한공산세력의 공산화기도에 대응해야만 했던 48년 봄의 시점에서 김구와 김규식이 추구했던 남북협상은 비록 민족분단을 막아야 한다는 고상한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남한지역의 공산화방지 노력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 어리석은 행동이었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우리 민족은 46년 2월 북한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단독정권이 수립되어 강압에 의한 토지개혁을 비롯한 사회주의화 개혁이 전개됨으로써 이미 분단되었다. 김구와 김규식이 민족을 분단시킨 북한공작세력의 그러한 조치들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이미 민족이 분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남한지역에서 민의에 근거한 정부를 수립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성공 가능성이 추호도 없는 남북협상을 내걸고 좌익세력과 더불어 격렬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아무리 민족주의적 대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상황판단을 올바로 하지 못한 어리석은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 노력을 당시 남한 중도파의 핵심적 지도자의 한 사람인 안재홍의 입장과 비교해 보면 양김의 남북협상 노력이 어리석은 것이었음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안재홍은 김구. 김규식과 동일하게 민족분단에 반대하고 남한의 단독선거에 비판적이었지만 북한에 이미 단독정권이 수립되어서 사회주의화를 실천하고 있으며 공산군의 강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남한에 정부를 수립하여 그에 대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여 5.10선거에서는 불참했으나 남북협상에서도 참여하지 않았다.
안재홍은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이러한 안재홍의 행동에 비추어 볼 때,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 노력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
양동안, ‘대한민국 건국사’, 567쪽~570쪽, (서울: 현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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