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김영명 칼럼니스트]

6년째 잠자는 북 인권법 여야 논의도 않고 또다시 연기 ´만행´,종북주의 못버리는 야당에 무기력한 여당…"국가적 수치" 언제까지

지난달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위원들이 북한인권법안 상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민주당 위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국회 법사위는 법안의 자구 수정 등 법률의 형식을 따지는 곳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이 법안의 내용을 문제 삼아 반대함으로써 법사위에서만 14개월째 취침 중이던 북한인권법은 더 긴 잠속으로 빠지게 됐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엊그제 29일, 국회는 179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북한인권법은 포함도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날 한-EU FTA를 비롯한 주요 쟁점법안에 대해서는 보완해서 다음 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은 인권문제로 북한정권을 자극하는 것은 북한의 대외정책을 더욱 고립주의로 빠져들게 하여 북한 주민의 인권상황과 생활수준을 악화시킬 뿐이라며 이를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북한인권법 반대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신이 ‘종북주의자’로 불려도 좋다며 결연한 자세로 이를 반대한다.

원군으로 나선 좌파언론은 “흔히 인권 침해국에 제재와 압박을 가하지만, 그렇게 해서 인권개선이 이루어진 예는 거의 없다”는 생뚱맞은 논지로 민주당을 지원한다.

북한인권법안 국회 법사위 상정을 시도했던 한나라당은 어떠한가?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상정 시늉만 냈을 뿐 민주당을 탓하며 팔짱만 끼고 있다. 그러니 북한인권법안 18대 국회 처리는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기만 하다.

우리는 민주당에게 다음 3가지를 묻는다. 첫째,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왜 (당신들 주장대로)북한 주민의 인권상황과 생활수준을 악화시킬 뿐인 북한의 인권문제를 그토록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가? 둘째, 과연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개선 운동에도 북한의 인권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북한인권법은 동법 제정 자체만으로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돕는 선언적 효과를 갖지 않은가?

민주당은 북한의 인권문제 제기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의 소치다.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문제 제기는 북송 탈북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처벌 완화에서 그 실효성의 일단(一端)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1990년대 중반 탈북자가 대량으로 발생했던 초기까지만 해도 북한 당국은 중국에서 체포돼 송환되는 탈북자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단순 탈북자라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거나 총살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꾸준한 탈북자 문제 제기로 요즘은 처벌 강도가 현저히 약해졌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최근에는 많은 탈북자들이 단순 노역장에서 몇 개월 살다가 나오는 정도의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제 인권단체가 북한의 한 수용소에 관한 보고서를 준비하자 이를 미리 입수한 북한 정권이 그 수용소를 해체했다는 증언도 있다.

국제인권단체들의 북한인권 개선 활동으로 북한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더 이상 북한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반발하고 나서자 북한 당국이 곤욕스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북한의 반응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당의 주장대로라면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북한을 비롯하여 미얀마나 아프리카 제국, 또는 쿠바 등 인권침해국가에 대해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의 인권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되레 악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로 된다. 과연 그러한가?

민주당의 대부인 DJ는 박정희 정권 때 정치범으로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당시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 대해 간단없이 인권 개선 압력을 가했다. 그 결과 DJ는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이 나라 대통령까지 역임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좌파언론은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미국의 인권 개선 압력으로 DJ는 더 고통만 받았다고 말할 것인가?

국제사회는 오래 전부터 북한 정권의 반인륜적 인권침해 행위에 대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북한정권을 설득하거나 압박하여 북한 주민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쏟아왔고 지금도 쏟고 있다.

유엔은 2004년 채택한 결의에 따라 그해 6월부터 임기 6년의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을 임명하여 북한의 인권상황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보고토록 하고 있다. 미국은 2004년에, 일본은 2006년에 각각 북한인권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각종 북한 인권 현안에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는 북한 인권에 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과거 집권 10년 동안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눈을 돌렸고 유엔의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에도 기권을 일삼았다.

지난날 10년 동안 민주당 정권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채 김정일 독재정권만을 상대로 ‘퍼주기’에 급급했다. 겉으로만 인도주의를 외쳤을 뿐 속으로는 남북문제를 정치적,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그러고 받은 대가는 핵실험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아직껏 정신을 못 차린 채 햇볕정책에 중독되어 인권문제를 아킬레스건으로 여기는 김정일 정권을 무조건 감싸고만 돈다. 2008년 제9회 서울평화상을 탄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지난달 29일 “한국이 김정일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아직도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는 점은 국가적인 수치”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가?

북한인권법안과 관련하여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내가 종북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 박 원내대표의 속셈은 무엇일까? 잘은 몰라도 민주당이 친북좌파와 단절하면 지지기반이 줄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북한을 등에 업고 권토중래를 노린 것이 아닐까?

얼마 전 김경재 전 민주당 의원이 한 발언을 상기하면 그런 의심이 더욱 강하게 든다.

그는 과거 북경 등에서 북측 사람과 접촉한 사실을 떠올리는 가운데 “북측 인사가 나에게 대선에 출마하면 돕겠다며 남한 내에서 최소 600만 표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상하게 정치인들이 북한만 다녀오면 다들 종북노선으로 회귀한다"며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손학규 대표를 들먹였다.

이 말을 듣고 있노라면 민주당이 왜 그토록 북한을 감싸고돌면서 너도나도 김정일 알현(?)에 목을 매는 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민주당은 인권을 정치적, 정략적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인권은 인류 보편의 기본 가치다. 그런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북한 실정을 한사코 모르는 체하는 것은 인도주의에 반하는 죄악이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에 묻는다. 한나라당이 진정 보수우파라면 민주당만 탓하며 북한인권법 처리를 소 닭 쳐다보듯 하지 말고 직권상정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은가? 다수결원칙에 따랐다면 북한인권법안은 진작 통과되고도 남지 않았겠는가?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지난 3월29일 임시국회 대책회의에서 “우리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을 대할 면목이 없고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4월 국회통과를 공언했다. 그러나 보수우파의 거대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 북한인권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 행동에도 나서지 않았다.

지난해 11월26일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한통속이 되어 자신들의 올해 세비 5.1% 인상안을 운영위원회에서 매 꿩 낚아채듯 전격 통과시켰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이 있은 지 불과 사흘 뒤였다. 벼룩도 낯짝이 있고 빈대도 콧등이 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북한의 인권 유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 3월 23일 대북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2008년 이래 벌써 4번째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결의안에서 “정치범 수용소 등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며 “세계가 북한 인권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태양절’과 김정일 생일파티에 수십억 달러를 탕진하면서도 막상 인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하지 않아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곳이 오늘의 북한이다.

그런데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 동포들이 지구상 가장 최악의 인권 유린 상태에 놓여 있는데도 그 개선을 도울 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회라면 그런 국회는 차라리 해체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우리는 민주당과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게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다. 만일 당신의 부모들이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신음하고 있고, 당신들의 누나와 여동생이 성 유린을 당하면서 죽지 못해 살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북한인권법 처리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것인가?

지난달 27일 6.25 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회원 50여명이 릴레이 형식으로 자그마치 8만3437명의 이름을 불렀다. 6.25 전쟁 당시 납북자 8만2641명, 전후 납북자 510명, 일본인 등 외국인 납북자 286명의 이름이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그들의 피맺힌 목소리가 정녕코 들리지 않은가? 우리는 정치권의 대답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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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news@bluekorea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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