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처리 미숙으로 지탄을 받아야 할 저 어른들!

[박제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2013년 2월 12일 IOC 가 최종 결론을 내렸다. 5개월의 검토 끝에 내린 결론은 박종우에게 동메달을 수여키로 했다. FIFA에서는 이미 A매치 2경기 출전금지에 3500 스위스 프랑(4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박탈우려가 있었는데, 그럼 ‘독도 세리머니’가 해피 앤딩이겠네?
정치적 의도가 없는 우발적 행동임을 적극적으로 대한체육회가 나서서 해명하고 본인은 징계위에 나가 선처를 호소한 결과, 깨끗하게 훈방 조치된 것이 아니고 ‘조건부’ 방면이다. 마치 죄 진 자식으로 해서 부모까지 반성문을 쓰고, 재발방지 훈육 계획을 승인 받은 다음 다른 자식들도 범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전부 불러 모아 교육시키되 3월 말까지 끝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렵게 받은 메달은 시끌벅적하게 떠들지 말고 ‘조용히’ 뒷주머니에 넣고 뒷문으로 퇴장하라는 경고로 막을 내렸다.
정치성을 배제한다고 벌인 결정치고는 너무나 정치적 ‘눈치’를 본 냄새가 나니 씁쓸하다. 76년 전,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 시상대에서 ‘조용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던 그 이유가 지금 와 생각하니 ‘조선은 독립국가다’라는 플래카드 하나 전해 줄 관중도 없이 제 3제국 독일의 하켄 크로이츠 땅에서 그 동맹국 일본의 욱일 전범기에 짓밟힌 민족의 허망함 때문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슬퍼했으리라.
그 슬픔을 쓸어내듯 박종우는 웃통을 벗고 ‘독도는 우리땅’ 플래카드를 들고 달렸다. 유럽인의 무지를 일깨우듯 달렸다. 그런 박종우가 고개를 떨구었다. 온 국민이 어이없어 했다. 일본 전범기로 재무장한 일본인들 때문에.
일본은 아시아에 해를 끼쳤고 주변국의 원수가 되었지만 유럽에는 동양의 겸손과 스시를, 닌자와 만가(漫畵)의 낭만을 심었고 친구도 많다. 이번에도 그런 친구들 덕을 톡톡히 봤다. 메달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면, 단단히 혼을 낸 후의 일은 경기장 밖의 일로서 간섭할 것이 못 된다.
올림픽 정신을 담은 메달은 명예 자체다.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 할 문제가 아니다. 기왕 주었으면 말이다. IOC는 그동안 가슴조린 본인과 가족들, 한국인들의 관심과 기쁨을 집까지 따라가서 끝까지 박탈하고 대신 일본인의 허탈감, 패배감을 지극히 배려한 감정적 처리를 보면 IOC 집행위원들은 분명 일본인 친구가 써준 시나리오를 읽었음이 틀림없다는 사실에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다. 또 손기정을 만들다니... 도대체 정치가 뭥미?
일본은 메이지 정부 개시 해인 1868년 일장기를 국기로 정한 것 외에 1870년부터 일본 육군기로 햇살무늬 깃발을 쓰기 시작, 해군기, 그리고 제 2차 대전에는 일본군기로서 대동아공영권 침략의 전범기가 되어 1945년 이후 금지되었다가 지금은 자위대 깃발로 쓰고 있다. 침략을 정당화하는 극우단체의 상징이다. 독일의 하켄크로츠가 경기장에 금지되었듯 마땅히 추방되어야 했다.
이 깃발의 명칭 또한 ‘욱일승천기’라는 평화적, 미학적 명칭이 아니라 저주적, 파멸적 명칭인 ‘일본 군국 전범기’이어야 한다. 일본 왕을 섬기는 일본인처럼 ‘천황’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IOC, FIFA 등은 일본 군국 전범기를 ‘표현 영역’이라고 봐주고 일본의 자의적 결정에 맡긴다. 돈을 앞세운 일본 스포츠 외교의 힘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일본 스스로 일본 전범기를 금지했다. 중국에서 맞아 죽기를 각오하고 덤빌 수 없는 일이요 도와 줄 이웃도 없었다. 그러나 영국은 달랐다. 유럽 아닌가? 일본은 오래 전부터 짝퉁 유럽인으로 살고 있다. 일본 체조 선수단은 아예 유니폼을 전범기로 디자인했다.
그 체조선수들의 말로는 그 깃발을 보면 힘이 솟는단다. 관중석에도 버젓이 전범 깃발을 흔든다. 유럽사회에서 독일이 감히 할 수 없는 짓거리를 일본은 나무라는 사람들이 없으니 맘 놓고 한다. 유럽은 무관심이요, 아시아는 힘이 없다. 영국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쇼와 일왕이 1971년 10월 유럽을 방문했을 때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일본 전범기’를 불태우는 항의 시위가 있었다. 1998년 5월 아키히토 일왕이 영국 방문했을 때도 일본 포로였던 영국인들이 일장기를 불태웠다. 얼마 전의 일이다.
2차 대전의 추축국인 독일과 이탈리아는 패전으로 붕괴되고 ‘하켄크로이츠’와 ‘방패십자’가 사라졌다. 소비에트도 연방붕괴와 동시에 ‘낫과망치’가 사라졌다.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공산국가들도 낫과 망치, 붉은 별의 국기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은 전범 정치인도, 군국재벌도 그대로 살아남아 1999년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살려냈다. 일본 왕과 함께 군국주의 망령은 ‘일본 전범기’마저 버젓이 평화의 제전, 정치 제로의 청정지역 IOC, FIFA 등에 나타났다.
가미가제에 얻어터진 미국은 진주만을 기억하라고 말은 하지만 돈에 약하다. 2월3일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일본 군국 전범기를 형상화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유니클로, 일본항공이 후원한다면 알만하다. 뉴욕 한인 학부모회가 항의하자 비판적 시각에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그냥 넘어가자고 한다. 아베 수상의 기세등등한 몸짓이 일본 전범기와 오버랩 된다.
학교 수업 중 역사시간이 짧고 수능시험에 한국사가 선택이라서 그렇다고는 하나 역사의식이 부족한 젊은 가수들이 무심결에 일본 군국 전범기로 디자인한 옷을 입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경우가 많다. 작년 10월에는 초등학교 교과서가 바뀌게 한 희귀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도 서정초등학교 4학년 4반 학생들이 2학기 국정 <사회>교과서에 실린 예금통장의 햇살 무늬가 일본 전범기와 유사한 것을 용케 발견했다. 3cm 정도 크기의 무늬를 찾아낸 작은 관심은 ‘각시탈’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공부를 한 덕이란다. 삽화를 그리고 감수하는 전문가들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도 이런데 외국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문제는 관심이다.
뉴욕 한인단체가 다시 나섰다. ‘일본 전범기 퇴출을 위한 시민모임’은 2월 17일 평화 마라톤 행사를 개최한다고 한다. 뉴저지주 ‘팰리세이즈 파크’의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를 출발, 유엔본부를 경유하는 30마일(48km)거리를 ‘아시아의 나치 기발, 욱일 전범기를 써서는 안된다’는 구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서 달린다. 국내도 유사한 대회를 개최한다니 기대된다.
올림픽 축구경기에서의 패배로 의기소침했던 일본인들이 IOC결정으로 메달 박탈은 못했더라도 까다로운 조건을 붙혀 우리의 기분을 더럽히는 데는 성공했다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피해 당사국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합심해서 일본의 정치색을 경계하고 IOC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아베와 극우단체들이 세계무대 도처에서 날뛰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박종우의 동메달은 슬픔을 가져왔다. 메달을 받으려고 구걸한 모양새가 못마땅하다. 모든 조건을 수용한 것은 메달의 자존심, 나아가 ‘독도는 한국 땅’의 의미마저 퇴색되어 버렸다.
‘조용히’ 받으라는 것- 훔쳤거나 장물을 구입한 것인가? 밀수품인가? 왜 공항에서 자랑스럽게 환호하며 말춤을 추지 못했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플래카드로 대합실을 도배하지 못했나? TV에 나와 뒷얘기를 하면 좀 좋아? 이 마지막 조건이 얼마나 수치스런 것임을 축구 협회나 대한 체육회는 몰랐는가?
이 조건을 없애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쏟았는가, 아니면 감지덕지하고 땡큐를 연발하지는 않았나? 일본축구협회에 '사과메일'을 보내 일본언론이 공개했던 망신살, 이번엔 '감사메일' 보내지 않겠나? 사각사각한 '거창 사과 부사' 한 박스 선물도 잊지말고...
또다시 문전처리 미숙으로 지탄을 받아야 할 저 어른들! 지하의 손기정 옹이 다시 통탄하고 계실 것이다. 아니, 해피엔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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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수 harubang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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