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이름의 존재는 비참하다!
[박제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레미제라블>의 인기는 암울한 시대를 읽는 척도를 말해주듯 영화로, 책으로, 뮤지컬로 시공을 초월하여 곳곳을 누비고 있다. 세계 4대 뮤지컬 중의 하나, 역시 명불허전이다. 벽초 홍명희가 1914 년 초역한 제목은 <너 참 불쌍타>. 인기 있는 책 제목으로는 가엾기 짝이 없다.
미국의 개인 주택에서 비롯된 세계불황을 2300년 전,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요(堯)임금이 어찌 알았을까? 집이 대세요, 그마저 두 채가 없다면 살아가기 힘든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미생(未生)’ 임을. 아들의 어리석음을 계도하려고 만든 바둑원리를 통하여 완생의 조건, 즉 집 두 채- 한 채는 주거용, 한 채는 임대용-가 있어야 먹고 산다는 현대의 팍팍한 삶을 꿰뚫고 있었다니 놀라울 수밖에. 이래서 바둑이 <주역(周易)>의 원리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맞긴 맞나보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은 밀월(蜜月). 마음이 화급한 자들은 문풍지에 침을 바르고 신혼방을 들여다보고 싶겠지. 닥치고 지켜볼 때다. 허니문 베이비는 ‘국민 대통합’이다. 밀월이 마뜩찮은 이들은 아예 징과 꽹과리로 신혼의 꿈을 난장판으로 만들 기세다. 고공 줄타기 같은 암울한 세계 환경 속에서 숨을 죽이고 성원을 보내도 모자랄 판에 밑에서 좌로, 우로 소리 지르고, 줄을 잡고 흔들고 급기야 줄을 싹둑 자를 태세다. 그것도 딴 게 아닌 통합하겠다는데...
감히, 통합 한다고? 역사 속의 ‘통합(統合)’은 제왕적 언어다. 무소불위의 군주가 평생을 두고 세를 불리는 칼의 방정식이요, 정치 언어다. ‘통일, 정복, 복속, 지배’처럼 힘의 논리에 의한 일방적 통로 개념이다.
초기와 중세의 유럽사에서 모든 길은 라틴어로 통하였고 징키스칸의 말발굽 아래 720 개의 언어가 통합되었고, 중국의 실크로드는 한자(漢字)의 진출로였고 러시아의 ‘붉은 제국’은 이데올로기의 통합이었다.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내선일체 역시 통합의 허울을 뒤집어 쓴 식민주의 합방이다. 통합은 일방의 힘의 선언에 의한 폭력이었고 준비되지 않은 약자를 위한 무자비한 변명이었다. 통합은 화합과는 핏줄이 다르다.
간혹, 통합이 겉보기에 평온한 상태(Pax:평화의 여신)라고 하여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분기(奮起) 하기위한 잠시 멈춤이었다. 단, 단일 목적의 통합은 갈등을 해소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반세기전에 흑백 통합을 이룬 남아공, 노사정 재정통합을 이룬 아일랜드 등을 꼽는다.
그러나, 미국의 흑백통합도 남북전쟁 후 100 년이 지난 1960 년대 까지 ‘마틴 루터 킹’의 꿈이었고 현재, 2기 오바마 정부의 국가목표 역시 ‘One Nation’, 즉 인종과 정파의 통합이다. 프랑스 역시 대혁명으로 바스띠유 감옥이 부서지고 100년이 지나서야 ‘구제도’의 모순을 벗어 날 수 있었다. 진정한 통합은 그렇게 한 세기를 터울로 천천히 온다.
정조대왕의 탕평책도 임금의 언어였다. 정파 싸움에 이골이 난 그가 정치꾼들에게 호통 친 구호가 ‘탕탕평평’이다. 절대 왕조시대에 왕권 강화를 위한 이른바 ‘정당해체’ 정책이다. 정파 간 차별을 없애야만 정쟁이 사라지고 제대로 된 민중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테니까 두리뭉실하게 사람을 써서 당파를 무력화 시킨 것이다.
물론 당대에 끝났다. 이해집단의 방해 공작은 그렇듯 집요하다. 현재의 정당정치는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여 국민을 헷갈리게 해놓고 선택을 강요한다. 인사(人事)나 조직의 탕평이란 애당초 어림없다. 통합은 요원한 숙제다.
탕평정책에 역행하는 정당정치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편 가르기를 한다. 대의 정치의 모순이다. 차별적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되면 공약이행에 매진한다. 사실 사람보고 선택할 수도 있고 공약 전체가 선택을 검증 받은 것이 아니라서 통합에는 무리가 따른다.
공약의 이행을 두고 미생지신(尾生之信)에 증삼팽체(曾參烹彘), 그야말로 장군 멍군이다. 개념과 상관없이 게나 고둥이나 등딱지 또는 고깔로 쓰고 다니는 것이 또한 통합이다. ‘민주 통합당’, 또는 ‘통합 진보당’이라고. 그러고는 필요할 때마다 통합을 밤나무처럼 흔들어 댄다. 개념 없는 친구들, 화가 난다!
그럼, 대체 통합이 뭐꼬? 마른 똥막대기라고? 권위를 내려놓고 형식도 없이 다름을 인정하는 자연 그대로 살린 상태다. 자연 상태는 이미 잘 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손 델 필요가 없다. 요순시대처럼 왕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다.
단, 잘 못 놓인 것, 훼손된 것은 제자리에 돌려놓거나 보수가 필요하다. 허나, 여기에 무리한 힘이 들어가선 안 된다. 무지개 색을 마른 똥막대기로 휘 저으면 흰 색이든, 검은 색이 된다. 그 아름다운 것을...
통합이 고작 언어유희(言語遊戱)인가? 통합은 수식어 없는 언어 자체다. 정치적 언어로 의미를 흐리면 안 된다. 통합은 소통이 기본이다. 피가 돌아야 건강하고 막히면 썩는 법, 피가 깨끗해야 산다. 소통이 진심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통합은 낮춤이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통합을 일구었다. 그는 필요한 시기에, 이끌어야 할 사람들을 위해 낮은 자리에 있어 주었다. 흑백갈등을 진실과 용서, 화해로 대타협을 이루니 세계가 열광했다. 지도자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기대할 즈음, 그는 떠날 때임을 직감하였고 일찍 파자마로 갈아입고 혼자만의 느긋한 만찬을 즐기고 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살피고 막힌 소통을 걱정하였다. 막힘을 해소하려는 결과물이 한글의 창제다. 언문(諺文), 암클(아낙네의 글), 즉 아녀자들이 재잘거리는 말(트위터)의 탄생이다. 측우기도 만들었다. 비는 소통이요 나눔의 선물이다. 비가 많을 때를 대비하여 우산을 준비하라고 한다.
정작, 우산은 비를 피하는 수단이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너나없이 비를 같이 맞는 것이다. 통합은 공유도 하지만 그보다 공감하는 것이다. 불교의 불이(不二)사상처럼 왕이 백성과 하나가 되면서 느끼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발로(發露), 이것이 통합에 이르는 길이다.
통합에 걸림돌, 지레 겁먹는 이유는 뭔가? 통합은 살얼음 같이 마음이 여리다. 특히, 언어폭력, 희롱에 취약하다. 교과서나 언론, 법정, 심지어 축구장에서도 언어 경찰(Language Police)이 단단히 그 몫을 해야 한다. 성별, 인종, 종교, 문화에 대한 편견, 고정관념을 걸러낼 ‘언어 사용지침’을 정하고 현장에서 지켜봐야 한다. 이념 대립, 집단 이기주의의 표출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인의 흑색선전, 황색저널의 언어 난폭자들을 철저히 수색하여 그들의 입 밖에서 더럽고 추잡한 언어의 씨앗들이 배회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는 우리 민족, 이 얼마나 소통을 중시하였는가? 일본 우익분자들은 틈만 나면 과거사에 대한 망언(妄言)을 쏟아낸다.
앞서 했던 사과도 소용없게 만든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것이 말실수 때문이다. 우리도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상대를 비하하는 혀 놀림 때문에 흥이 깨지고 판이 깨지고 만다.
통합은 돈이 든다고 한다. 재원부터 걱정하는 일은 하수들의 정치다. 배고픔을 채우는 것에 우선하여 배아픔에 공감해야 한다. 불공평, 불평등, 부조리로 아픈 배를 할머니의 약손으로 쓰다듬어 줘야 한다. 손톱의 가시만이 아니라 눈엣 가시, 귓구멍에 대들보도 뽑아야 아픔이 가신다.
인천의 100 년을 지켜본 마지막 쪽방촌 ‘괭이부리말’ 사람들이 5 년째 기부금을 모았다. 이 하늘 아래 자기들보다 더 굶주릴 사람이 어디 있다고 작년 말 133만 3560원을 모았다. 대기업의 100억, 아니 1000억 보다 가치가 크다. 십시일반의 효과,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은 나눔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허균 선생의 도문대작(屠門大嚼)의 묘를 살리고, 어른들은 숫자에 연연하여 중요한 것을 볼 줄 모른다는 어린 왕자의 충고대로 마음으로 보는 기술을 익힌다면, 통합이 돈이 없어 못한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쟝발잔은 말한다.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금세기 가장 성공한 나라로 꼽히지만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 교육열 1위면서 출산율 꼴찌의 나라, IT 최강국, 자동차 수출 강국이면서 입양아 수출 강국이다.
싸이와 아이돌의 문화 천국이지만 아동 학대국, 재벌 독식의 나라면서 노동자 시위의 나라다. 오천년의 역사 강국이지만 세계 유일 분단국인 나라, 위안부 피해 당사국이면서 매춘에 관대한 나라, 동물 애호국이지만 개고기 먹는 나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선과 악이 뒤범벅인 나라. 남북이 갈라지고 동서가 쪼개진 나라, 두서너 개 고등학교가 법관을 독식하는 나라, 두서너 개 대학 인재가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나라, 두서너 개 재벌그룹이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나라, 경제대국 중의 한 나라이면서도 기업인, 국회의원이 존경받지 못하는 나라, 통합을 해야 할 이유다.
미국의 대공황 당시, 굶주리던 식구를 데리고 찾아간 캘리포니아는 기대와 달리 기아, 질병, 학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혹사당하던 뜨거운 태양아래 익어가는 포도를 응시하던 가난한 사람들 영혼 속에는 착취를 일삼는 대농장주와 부질없는 삶에 대한 분노가 포도처럼 익어갔다. 왜, 인생의 즐거움은 여행길에 있을 뿐, 목적지에 도달하면 슬픔만이 남는다고 할까? 분배 없는 성장, 무자비한 경쟁에 전 세계의 ‘분노의 포도’는 가지가 휠 정도다.
강자들은 힘으로 모든 것을 가졌다. 약자들은 가진 것을 빼앗겼다. 학교에서는 희망을, 젊은이는 미래를, 늙은이들은 젊은 날을 빼앗겼다. 약자는 되돌려 달라고 애원했다. 강자들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당신들은 그걸 지탱할 힘이 없지 않소? 포기하시오.”
슬픔을 알면, 삶의 심연을 알게 되고 슬픔을 알면, 숨은 그림자 같이 진실을 알게 될 터인데... 애써 외면하는 저들에게 슬픔을 알게 해줄 소통이 절실하다.
외교적 통합에도 자세전환이 필요하다. 왜 일본에게만 사과를 요구하는가? 중국, 러시아, 북한도 일본과 마찬가지다. 3국 모두 한국 전쟁의 A급 전범국가다. 중국의 끊임없는 침략은 병자호란만 해도 일본군의 위안부보다 더 많은 공녀(貢女)를 심양에 보내고 환향녀, 호로자식을 만들었다.
연해주의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켜 민족적 박해를 가한 소련(러시아)다. 베트남을 보라. 청룡부대가 소탕작전을 벌였던 빈호아의 증오비(憎惡碑)에는 피해상황과 함께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萬代)를 기억하리라.”라고 새겨져 있다. 그러고도 태연하게 우리와 무역을 한다,
국제결혼을 한다고 딴전을 피운다. 한국에 사과하라는 말은 아예 꺼내지 않는다. 독립기념관에 증오비 세우고 일본이 자발적으로 사과하는 날을 기다림이 현명하지 않는가? 먼저 무능한 위정자들을 탓해야 맞다. 외부에 적을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다.
한창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기에 바쁜 인수위가 천재화가 다빈치의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11만 3천장의 기발한 밑그림을 그렸던 그가 아닌가! 의사보다 심장을 더 잘 아는 그이지만 생명을 살리는 수술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500 년을 뛰어 넘는 기발한 아이디어, 즉 비행기, 헬리콥터, 전차, 로봇 등을 설계하였지만 완성된 것은 하나 없는, 단지 방향만을 제시하려 했던 진정한 시대의 선각자다.
청와대 내에서의 소통에 장애가 되어 부속건물의 리모델링을 해야 할 지금 그가 제시한 설계안은 김수근의 공간(空間) 같은 사무실과 전혀 다른 이외의 집무실, 근정전(勤政殿)이다. 경복궁의 근정전은 정도전이 이름 지은 왕의 집무실이다.
지엄하신 왕에게 부지런히 일하라고? 그러고 보니, 청와대는 중국의 조어대(釣魚臺)처럼 영빈관이나 음식점 같은 이미지다. 사실, 청기와집 아닌가? 근정전은 일할 맛 난다. <태조실록>에는 “부디 어진이를 찾는데 부지런하시고 어진이를 쓰는 데는 빨리하십시오.”라는 충신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디지털 시대는 이미지 센서로 해서 그림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 국민들의 욕구도 즉각적이다. 잠시라도 지체하면 원성이 자자하다. 부지런을 떨어야 할 이유다.
사방에 방탄유리로 둘러싼 근정전 내부는 밖에서 누구나 들여다 볼 수 있다. 책상 하나 없는 실내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투명 스마트 윈도우’가 설치되어 제스처 인식이 가능하다.
범죄예측시스템, 자연재해예방시스템이 가능한 ‘빅데이터’를 제공하고 첨단 보안시스템까지 갖춘 완벽한 방에는 <오봉산 일월도>자리에 모나리자가 걸려있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인자한 시선을 마주하는 미소야말로 국민대통합의 이미지에 안성맞춤. 그 맞은편, 대통령이 항상 시선이 멈추는 곳에 또 하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이 걸려있다. 소외받는 자들을 위한 만찬! 역시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다르다. 이 중에서 나를 배신한 자가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 12제자의 쇼크 받은 표정이 아니다. 참석자는 5부요인, 4대 권력 기관장, 여성대표 등 11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빈 자리의 큰 골프백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가 골프백을 만찬장에 가지고 왔나? 없는 사람을 지목하는 건 담합해서 왕따시키는 것 아닌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손가락들이 가리키는 네임택을 살펴보니 뚜렷이 ‘관행(慣行)’이라고 적혀 있다. “통합에 목숨을 거세요. 실패하면 누가 책임지실 거예요?” 대통령이 단호하게 책임소재를 묻고 있는 최후의 만찬장에서 다들 저렇게 여유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이미 희생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리라.
통합의 마지막 마무리는 유머다. 유머는 나눔이요, 관용이요, 배려다. 부담스런 긴장을 풀어주는 통합의 촉매제, 금간 곳을 채우는 접착제다.
대변인이 굿뉴스를 당선인에게 보고한다. 10대 재벌 회장이 사재를 100% 기부한다는 전경련의 통보에 환호성이 나온다. 이제 우리도 빌게이츠, 워렌 버핏이 나오기 시작하는구나. 종합청사로부터 낙하산 고위 공직자 전원 사직, 여의도에서도 국회의원 전원이 사퇴한다는 기쁜 소식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아, 멀게만 느껴졌던 통합이 이렇게 착착 다가오는구나.
한참 지나서 밷뉴스를 보고한다.
재벌회장 개인 평균재산 29에 10명 곱하니 290억? 겨우? 아니, 290조겠지, 복지기금이 천지 삐까리라 좋아 죽을 뻔 했는데... 미안하게도, 작년 전부 상속을 마쳐서 남은 건 겨우 29만원 씩 해서 10명에 290만원이라나?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의원들 사퇴 시기도 당장은 지역 지지자들이 말리니까 못하고 2016년 4월30일, 임기 만료 한 달 전에 한단다. 그럼, 그렇지! 우씨.
진짜 돌겠네그려. 그래도 우짤껴. 취임식 때는 웃어야지. 통합 하려는 마당에. 건배주는 캘리포니아 산 포도주에 각 도별 명품주를 섞어 이공계 폭탄주로 맛있게 제조하고, 건배사는 “더불어!” 다들, 말춤 출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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