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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명시까지
전영준 | 승인 2013.01.19 19:55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2년 1월 20일,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체결하였다.

[전영준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1991년 12월 31일 판문점에서 핵관련 제3차 대표접촉과, 6차례의 정회 끝에 공동선언문 내용을 합의하였고, 이듬해인 1992년 1월 20일에 채택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양측 고위층의 검토를 거쳐 1992년 2월 19일 회담합의서와 함께 발효됐다.

선언문에는 양측은 남측이 주장했던 "국제원자력기구 핵관련 절차 이행명시" 조항과 "북측의 핵공격 가상 군사훈련금지" 조항을 모두 제외시켰다.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아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합의했다.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3.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4.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
5. 남과 북은 이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공동선언이 발효된 후 1개월 안에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6. 이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되자마자 북한이 신고한 핵 개발 원료인 플루토늄의 양 문제로 북한과 IAEA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북한은 NPT와 IAEA의 가입국으로서 핵물질을 신고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의 양이 IAEA가 파악한 양보다 현저히 적었다.

이에 IAEA는 북한에 특별사찰을 요구하였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NPT와 IAEA의 탈퇴를 선언했다.

NPT탈퇴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당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공습을 계획했다.

이후 북미 고위급회담이 개최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북한은 그해 6월에 하려고 했던 NPT탈퇴를 유보했다.

대신 북한은 1992년 12월 21일 개최하기로 한 남북고위급회담 제9차 회담이 남한의 일상적인 팀스피리트 훈련재개를 핑계 삼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사문화시켰다.

북한은 과거 미국과 한국과의 회담을 합의에 따른 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남적화통일전략 차원에서 이용해 왔다.

당시에도 북한은 공갈협박을 통해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마지못해 회담에 응해 합의했다.

북한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니 합의실행보다는 그들의 통일전략에 팀스피리트 훈련재개를 핑계로 합의를 파괴했다.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는 "북측의 핵공격 가상 군사훈련금지"가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팀스피리트 훈련재개가 선언문에 명시된 것과 같이 우리가 먼저 위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언문에는 "국제원자력기구 핵관련 절차 이행명시" 조항이 동시에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원인제공자인 북한이 먼저 국제원자력기구 핵관련 절차 이행을 해야 하는 것이 순리였던 것이다.

북한은 대남적화통일전략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핵무기 개발 포기를 절대 할 수 없다.

당연히 북한은 회담에 마지못해 응하는 척하며 어려운 국면을 타개하고 핵 개발을 계속하기 위해 우리 쪽으로 잘못을 전가시키며 합의사항을 파기한 것이다.

북한은  1993년 3월에 NPT탈퇴를 선언했고, 이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1차 북핵위기'가 촉발되었다.

미국은 동서해안에 항공모함을 발진시켜 북한에 대한 공습을 준비했다. 그러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중재에 나섰다.

1994년 6월15일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전격 방문한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에서 미국 정부가 유엔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북 제재를 중단한다면 북한도 핵개발을 동결하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김일성은 남한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조건 없이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항복선언을 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1994년 7월8일 감자기 사망했다. 이로서 북핵문제는 잠시 수면 하로 내려앉았고 김정일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오랫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북한은 다시 기지개를 피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북한에 우호적인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부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노벨상 평화상 수상이라는 업적을 남기려고 무리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이점을 간과한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의 댓가로 거액의 돈을 요구했다. 결국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정권은 북한에 4억5000만 달러를 불법송금했다.

북한은 우리가 지원한 돈과 물자를 갖고 북핵 개발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결국 2002년에 북한이 핵개발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제네바합의는 파기되었다.

북한이 핵개발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농축시설 설치를 우리가 지원한 돈으로 만들었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에 2000년에 집권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 이라고 몰아세우며 북한을 압박하자 북한은 2002년 12월에 IAEA 직원들을 추방하고 감시카메라를 제거했다.

2003년 1월에 북한은 유보한 NPT탈퇴를 공식선언했다.

2차 북핵위기라 불리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 북한이 참여하는 6자회담을 통하여 북핵위기를 해결하려 했지만 2006년 10월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6자회담도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렇게 북한이 한미양국을 우롱하며 북핵을 포기하지 않고 추진했던 배경에는 노무현 정권도 김대중 정권과 마찬가지로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남한에서 북한으로 유입된 현물·현금은 연평균 7억달러로 총 규모는 69억5950만달러에 달한다.

쌀·비료 지원과 경협 등으로 북한에 들어간 현금(약 29억달러)을 모두 더한 액수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의 대북 지원액 19억달러의 3.7배, 북한 전체 수출액 77억달러의 90%에 해당한다.

북한이 작년 12월12일 발사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7억8천만 달러를 투입했으며, 지금까지 장거리 미사일 개발-발사에 총 17억4천만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가 최근 국내외 연구기관의 자문을 받아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미사일 개발을 위해 ▲평양 산음연구소 미사일 연구시설(1억5천만 달러} ▲동창리와 대포동 발사장 건설(6억 달러) ▲노동-무수단-대포동 1, 2호 등 탄도 미사일 개발(8억4천만 달러) ▲위성제작 및 연구개발(1억5천만 달러) 등에 총 17억4천만 달러를 투입했다.

여기에 핵무기 개발비를 포함하면 최대 32억 달러(약 3조4592억 원)가 대량파괴무기(WMD) 개발에 투입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북한 전체 주민 2400만 명의 3년 치 식량에 해당하는 규모로 우리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옥수수 933만~1066만 톤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으로 북한 주민들의 31~36개월 치 식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구체적으로 영변핵연료제조공장 등 핵시설 건설 6~7억 달러, 원심분리기 등 고농축우라늄 개발 2~4억 달러, 핵무기 설계-제조 및 핵실험 1억6000만~2억3000만 달러, 핵융합 연구로 설계-제작 1~2억 달러 등 11~15억 달러가 핵개발에 투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북한의 핵보유도 자위권 차원에서 일리가 있다’고 인식하는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김대중 정권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았다.

북한은 돈보다 더 중요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남한의 혼란을 야기 시키는 정신적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6자회담에서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지원했습니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북한을 비난하는 발언이 나오면 최대한 사리를 밝혀서 북한을 변론했습니다. 개별 정상회담에서도 한 시간 이상을 북한을 변론하는 데 시간을 보낸 일도 있습니다.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라고 국민을 현혹시키며 선동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음흉하게 북한을 지원하고 응원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드러내 놓고 대변인 역할을 했다.

두 사람 다 북한 김씨왕조 돕는 데는 일심동체(一心同體)로 난형난제(難兄難弟).용호상박(龍虎相搏)이었다.

북한은 2012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이라고 명시했다.

북한의 헌법 개정을 통한 핵보유국 명시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9·19 공동성명에 반하는 것으로 북한은 비핵화 공동선언과 안보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

북한이 핵보유국 사실을 헌법에 명기하고 나선 것은 김정일 업적을 강조해 내부 체제 결속을 다지고,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의도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2005년 9·19 공동선언을 통해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토록 했다.따라서 북한은 북한주민의 행복과 한반도평화를 위해 핵 프로그램 폐기 약속을 지켜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우리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다. 북한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준수해야 한다.북한이 일방적으로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국제사회에서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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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dugs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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