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환경부는 10월 31일 국내에서는 최초로 ‘한국 토종여우 복원사업’ 일환으로 여우 한 쌍을 소백산에 방사하였다고 언론에 공표하였으나 일주일도 안되어 민가 아궁이에서 암놈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 되었다.
사인은 아궁이 재를 마셔 호흡곤란이 생긴 것이다. 사육된 여우를 겨울에 방사하였으니 추위에 적응 못하고 따뜻한 곳을 찾았다가 그 불쌍한 것이 변을 당한 것이다.
최근 TV 코메디 프로에서 ‘꽃제비’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또 다른 프로에서 남희석이 진행하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아오지가 고향인 ‘꽃제비 모녀’의 우여곡절을 이제는 성인이 된 딸은 물론 참석자 전원이 눈물을 흘리면서 탈북 어머니가 고백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과연, 시청자들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궁금하다. 500원을 주더라도 묻고 싶다.
2010년 8월 KBS에서 방송된 충격적인 뉴스의 주인공, 23세 꽃제비 여성이 이후 토끼풀로 연명하다 2개월 지난 10월에 옥수수 밭에서 죽은 채 발견된 사실이 ‘데일리 NK'에 의해 알려져 또 한번 충격을 주었다.
2010년 10월 남포시 항구지역에서는 3명의 꽃제비 아이들이 식인 인간에 비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공포에 떨게 하였다는 소문, 한 노인이 강냉이를 주겠다고 유인 후 살해하려다가 자루 속 꽃제비가 밀치고 뛰쳐나와 신고한 사실, 북한에 가족을 둔 중국 동포가 양식을 들고 찾아 간 누님 집에서 잡아 먹혔다는 소문 등 1995년과 1996년 식량난으로 북한사회가 굶주림 속에 식인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기 시작, 실제로 여러 지역에서 범죄자들이 공개사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영하 15도 추위에 얼어 죽은 4명의 꽃제비 사연, 김책제철소 인근에는 제철소 공장의 온기 때문에 몰려들기도 하지만 그 곳의 무연탄을 훔쳐 팔려는 꽃제비들이 붙잡혀 수시로타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화폐개혁 이전에는 밥술이나 먹던 노제비가 밑천을 다 잃고 음독자살 하였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러나 , 평양의 창천거리의 고층아파트는 늘어만 가고 대형 상점, 코피숍, 인민극장, 놀이공원 등 핵심 지지층을 위한 시설에 지원이 집중되다 보니 빈부격차는 폭발직전의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의 캐릭터 상품인 ‘꽃제비’는 공식적으로는 단순히 부랑자, 방랑자로 불리고 있으나 원래 ‘집이 없이 먹을 것을 찾아 장마당, 역전 등을 떠돌면서 구걸하거나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어린이’로 출발하였다. 지금은 범위가 넓어져 노숙자 전체를 아우르는 부랑아 집단이 되어 버렸다.
젊은 거지는 ‘청제비’ , 늙은 거지는 ‘노제비’, 어린아이를 ‘꽃제비’라고 세부적으로 구분하지만 일반적으로 부를 때는 ‘꽃제비’다. 어원적으로 어린 것을 ‘꽃’이라 하는데 중국에서 거지를 ‘화자(花子)’라고 한 것을 보면 중국에 가깝고, ‘꼬체비예’라는 러시아어가 ‘유랑’이라는 의미이므로 러시아에 가까워, 용어상으로 보면 글로벌화 되었다고 하겠지만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최초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김일성 사후, 1995년 이후 ‘고아 거지’를 일컫다가 범위가 넓어진 것은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배급을 줄 수 없는 북한의 실정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국제적십자연맹에 따르면 산업재해나 자연재해로 지난 10년간 7만 8천명의 어른들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생계가 막막하여 가정의 분열이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그 뿐이겠는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숙청당하거나 탈북가정의 잔여 식구나 친척 등 정치적 탄압을 받는 세대들은 꽃제비 대열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구조일 것이다.
북한 정권은 이들을 방관하지도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김정일이 지시한 날을 따서 ‘2.13수용소’, ‘9.27 수용소’ 등을 시, 도마다 설치, 잡아들여 3년 이상을 구금되어 폭행과 기아에 시달렸다. 중국에 몰래 나갔다가 강제 송환된 경우는 더 가혹한 시달림을 받았다.
심지어 ‘620 상무’, 일명 ‘꽃제비 상무’가 잡아들인 꽃제비가 너무 많아서 보호소에서 받아 주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굶주림에 북한을 탈출한 여성이 중국 남성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은 무국적자가 되어 의료나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이 꽃제비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탈북자들의 증언집인 ‘최근 북한실상’ 1999년 7월호에서 꽃제비 유형을 역할별로 구분한 것을 보면, 덮치기 꽃제비, 쓰레기 꽃제비, 완구당 꽃제비, 매춘 꽃제비로 나뉜다.
덮치기는 농민시장에서 음식을 강탈해 먹는 10~20 대 청소년, 쓰레기 꽃제비는 쓰레기통 뒤지는 5~7세 어린이, 완구당은 장마당에서 마술과 재주를 부려 볼거리를 제공하고 돈을 받아 생활하는 패거리, 매춘은 18세 전후의 소녀 꽃제비들이 한다. 꽃제비들이 부랑아로 떠돌면서 살기도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국내는 물론 두만강 건너 연길, 도문, 화룡 등지에서 구걸과 절도, 소매치기 등을 하면서 열차를 이용, 선양과 대련은 물론 칭다오 까지 퍼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세력이 커짐에 따라 꽃제비들은 점차 조직화하여 상인단체, 철도원, 보안원 등과 공생관계를 맺고 상납과 보호를 거래하게 되었다. 브로커 비용을 포함 3000 달러에 이르는 탈북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꽃제비 생활을 유일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자유의 대가는 만만치 않다.
정보가 차단된 북한 사회에서 꽃제비들은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뿐만 아니라 여론몰이를 주도하기도 한다. 검열에 의하지 아니하고 생생한 정보를 전파할 수 있는 효율적 정보전달 수단으로 휴대폰이 33%, 입소문 39% ,장마당 23% 기타 5%로 입소문과 장마당 62%의 정보조작을 꽃제비들이 주도한다고 볼 수 있다.
실례로 리설주 신상에 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북한 사회에서 청진 출신이며 은하수 관현악단 가수라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역할 때문이다. 또한 지난 6월 28일 탈북녀로 살다가 입북하여 기자회견을 한 박정숙(남한의 박인숙)이 북한의 스파이라는 사실은 꽃제비들의 입소문으로 전파되어 기자회견 이전에 북한에서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자유 아시아 방송 보도)
사회현실을 패러디하여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해학의 맛을 즐기는 것은 강자에 대한 도전이어야 한다. 사회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를 희화화 한다는 것은 필요한 도움은커녕 조롱을 하는 것이다. 악취 나는 쓰레기 속에서 먹을 것, 돈 되는 것을 찾던 케냐의 어린이를 웃음의 소재로 삼겠는가? 아니면, 인도의 불가촉천민 ‘딜라트’ 어린이를 노리개 삼겠는가?
그것이 북한 사회의 약자라서 ‘꽃제비’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권리주장도 못할 것이라 하더라도 인권에 관한 것이고 사회적 인식에 관한 것이라 한다면 웃음도 입을 가려야 할 것이요, 괴로움에 동참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신중함이 묻어나야 할 것이다. 올 겨울은 더 혹독할 것이란다. 집 떠난 여우가 아궁이에서 죽은 것처럼 꽃제비들이 떠올라 허경환의 익살을 보아도 울음이 난다. 지금은 차마 웃을 수 없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면 그 웃음은 '비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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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수 harubang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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