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복잡하고 독특하다는 미국의 긴 선거 여정이 드디어 오늘 결판이 나는군요. 세계의 선거답게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 부어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민주주의의 절차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과정 자체가 선거란 이런 것이다, 하고 세계만방에 보여주는 교과서나 다름없다.
선거캠프의 철저한 선거 전략, 축제로 승화한 자원 봉사자들의 열성, 차분하고 반전이 있는 정책 비교와 여론조사, 절정의 순간 드라마틱한 TV토론과 이어지는 격려의 진한 포옹은 선거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감동적인 영화의 피날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정당 내에서 당원선거(코커스), 비당원선거(프라이머리)로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와 같다. 오늘 실시하는 ‘선거인단 선거’는 승자독식 선거다. 상금이 걸린 투표에서 다수당이 상금을 전부 가져간다고 하면 쉽다. 각 주의 인구에 비례해서 정해진 상금액수를 최종적으로 합계하여 많은 쪽이 이기는 것( 대통령)이다. 아주 쉽죠?
승자독식은 인구가 적은 주의 독립성을 인정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부시와 고어 때처럼 인구대비 총득표수는 많아도 선거인단 수가 부족하여 대통령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긴다.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되지만 켈리포니아 주처럼 인구 많은 주의 횡포를 막아야만 연방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선도 한 달 남짓 남았다.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글로벌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도 기웃거린다. 그런데 , 우리는 정작 보여줄 만한 것이 너어무 없다. 미국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초·중·고 학생들 반장선거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배울 게 없다보니 관심마저 끊게 된다. 투표율은 투표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혐오거나 투표권자를 흡인하는 콘텐츠가 빈약해서이다. 저녁까지 일하는 사람보다 일없이 쉬면서 투표 빠진 사람이 더 많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고 관련기관에서는 투표를 독려하지만, 왜 해야 하는지 당위성이 실종되었다. 휴일로 지정까지 했는데 느닷없이 시간 연장이 대두되고 단일화는 야당 내 문제일 텐데 시민단체가 아우성이다.
단일화 안하면 이민 간다는 소설가, 초야에 묻히겠다는 교수가 있다. 가나 안 가나 지켜보겠지만 대국민 협박이다. 우리는 미국처럼 횡포를 막을 장치가 없다. 아예 촛불 들고 나서기로 한 단체도 있다. 그 촛불, 촛불, 촛불! 또 빈대 잡으려고? 또 그러다가 집은?
법을 존중하는 미국은 규정에 의하여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내일 무엇을 하는지, 일주일 후 무슨 행사가 계획되었는지 척 보면 다 알 수 있다. 일정이 투명하다. 이에 반하여, 한국은 눈에 뵈는 게 없다. 국민도 헛갈리고 취재기자는 죽치고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여의도의 횡포인지 습관인지, 권위인지 무능인지 당일치기 일정표를 가지고 정치권이 움직이고 어쩌다 약속도 없는 행사 갔다가 한쪽이 만나자고 추파를 보내면서 악수하려고 내민 손이 부끄러워 멋쩍어하고 또 다른 한편은 소 닭 보듯 애써 무시하는 꼴이 짝사랑에 빠진 바람난 ‘과부와 홀애비’가 따로 없다.
한 무더기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고 몰려온다. 철새도 있고 짭새도 있다. 오리도 있고 기러기도 있다. 섞이다 보니 동석 못 할 편끼리 부딪히고 멱살잡이 직전이다. 품앗이 온 일꾼들이 일은 안하고 엉덩이 붙일 의자 모자란다고 투정하질 않나, 밥 타령, 반찬 타령에 주인의 속은 타 들어 간다. 물과 기름이 섞이면 처음에는 잘 타다가도 꺼져 버린다.
한 편에서 합치자 하니까 그 조건으로 살생부 주면서 없애라 하니 당사자는 기가 막혀 팔짝 뛴다. 청부살인이 그리 쉽나? 박힌 돌이 쉽게 빠지겠는가? 일이 성사라도 되면 자리싸움에 골치 아플 터인데 끌어들이기는 왜하며 오기는 왜 하는지, 권력의 속성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기심의 발로다. 노인이 어느 버스를 타고 보니, 신사 옆에 자리가 하나 남았는데 짐이 자리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치우겠지 하고 앉으려는데, 사람 올 거라 한다. 혼자 편히 가려는 속셈이었다.
버스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가방을 차창 밖으로 내던지면서 “그 사람, 짐은 찾아 가야지.” 속이 다 시원하다. 부처님 자비로 착한 일을 많이 한 죄인에게 지옥을 벗어날 거미줄을 내려줬다. 다리 잡는 동료를 뿌리치다가 거미줄이 끊어져 도로아미타불됐다. 마음 비우기 참 어렵다.
우물을 퍼 올리려면 펌프질 하기 전에 깨끗한 마중물이 반 바가지 필요하다. 다수를 위한 미끼물이다. 다수를 위하다가 소수의 희생양으로 끝날 수도 있다. 퍼 올린 물이 깨끗하려면 마중물도 깨끗해야 한다. 물론 지하수 물 자체가 깨끗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게 이미 구정물에 오염되었다면 아무리 마중물이 좋아야 헛고생이다.
<스왐피>라는 모바일 게임이 있다. 디즈니 작품인 새끼악어 이름이 ‘스왐피’다. 퍼즐게임인데 여러 악어들 중에 유독 깨끗한 물을 좋아하고 구정물을 싫어하는 스왐피가 퍼즐을 풀 때마다 지하에서 ‘내 우물 어디 있지?’( Where is my water?)하면서 깨끗한 물을 찾아가는 게임이다. 우리 정치 지형에는 스왐피를 몇 십 마리는 키워야 할 것이다. 아예 '여의도 스왐피 동물원'을 부속건물로 ...
빨간 이석기가 말했다. 당원이 선택한 후보는 사퇴할 권리가 없다고. 그렇다면 누가 마중물이 되어야 하는 지는 분명하다 하겠다.
설마, 루이 15세처럼 “내가 죽고 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 알 바 아니다"(Apres moi le deluge)라고 발뺌할 것이면 그 창대하던 출마의 변은 어디로 갔는가? 그 사이 정당쇄신이 완성되기라도 한 것인가? 마중물이 구정물 되기 참, 쉽다.
이벤트가 대세다. 생일이든, 취업이든, 승진이든 만난 지 100일 만 되더라도 뭔가 있어야 한다. 예술계나 과학계에 융합이 트렌드이듯 온갖 공적, 사적 행사에 퍼포먼스가 난립한다. 즉흥성에 길들여진 생활 속에서 계획성 보다는 일회성 이벤트가 만연하다보니 이벤트인지 헤프닝인지 모를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꼬리를 문다.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정치나 교육이 행위예술처럼 무계획적으로 입맛 당기는 데로 흘러가는 현상은 게임기를 만지작 거리는 손놀림 마냥, 묵직해야 할 정치나 교육을 다루는 자세가 깊이가 없이 가벼워졌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선거비용을 보전하는 조건의 단일화 후보매수사건이 발생한 것이 얼마 전이다. 선거의 공정성 측면에서 출마나 사퇴가 자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출마나 사퇴에 있어서 제3자가 개입한다면 이미 공정성을 상실한 것이다. 담합은 상거래 위반으로 처벌하고 있지 않은가? 최소한 출마를 공식 선언한 이상 진퇴여부는 간섭이 없어야 한다.
예술의 독창성을 중시하듯이 정치의 본질은 정체성이다. 공정성은 야합을 가름하여 정체성의 순도를 측정하는 도구인 것이다. 표절한 예술은 순수하지 못하여 지탄 받는다. 정체성을 잃은 정치는 표절한 예술과 같다.
요임금이 아들을 물리치고 순임금에게 자리를 이양하면서 “한 사람 이롭게 하려고 천하가 손해 볼 수 없다(終不以天下之病而以一人)”고 한 것은 정치의 순도를 높인 사례다. 교육감 선거의 전철을 대통령 선거에서 반복해선 안된다.
마을 어귀에 개 한 마리 짖으면 온 동네가 개 짖는 소리로 시끄럽다. 어느 분야이건 자기 목소리를 내야한다. 시민단체나 선거꾼에게 등 떠밀려 나오고 들어가기를 택한다면 지금까지 외쳐대던 신성한 충격이 한낱 폐일(吠日)에 지나지 않는다. 쫙 짜여진 정치일정, 축제같은 선택, 포옹! 이거라면 국민은 미친개라도 마다 않을 터, 그래도 미국 이민 간다는 말은 없지?
공명은 후출사표에서 ‘몸을 굽히어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鞠躬盡瘁 死而後已), 일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고 했다. 일개 회사의 창업도 신중할 진데 국가 대사를 가벼이 대함은 어느 쪽이 되었든 바른 선택이 아니다. 괜히 주변에서 열심히 꼬리 흔들면서 짖고 있는 데, 주인은 ‘하품하는 개’ 꼴이면 그것도 구정물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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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수 harubang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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