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아무도 밟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 거기에 눈이 소복이 쌓인 길이 생눈길이다. 한 폭의 동양화, <세한도(歲寒圖)>가 떠오른다. 어릴 적 불렀던 동요 속의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처럼 새벽 눈길의 정경이 꿈을 꾸듯 다가선다. 그러나 생눈길은 발이 푹푹 빠지는 좀체 걷기 힘든 길이다. 생뚱맞은 표현 같지만 이처럼 ‘김정은의 시대정신’을 적확(的確)히 가리키는 ‘생눈길정신’은 앞으로 북한 주민의 고단한 여정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기에 가슴이 쓰리다.
과거 김일성의 ‘백두혁명 정신’, ‘천리마 정신’, 김정일의 ‘속도전의 혁명정신’, ‘고난의 행군정신’ 등 주체혁명사업의 정치적 과제를 내던질 때마다 당시의 상황에 맞춰 인민들에게 선사(?)하는 메시지는 대를 이은 충성 강요가 첫 째 목적이다. 맹목적 충성이 정신적 강요라 한다면 수반되는 육체적 강요는 두 번째 목적인 자기희생이다.
생눈길 정신은 “자신을 다 녹여 대지를 옥토로 만들어주는 흰 눈처럼 한 목숨 바치는 것을 최대 영광으로 여기는 고결한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라고 주문하고 있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인 올해가 다름 아닌 ‘강성대국의 문이 열리는 첫 해’라고 선포했지만 세계 경제의 추락, 주변국의 외면으로 핵을 부둥켜안은 채 ‘열려라 참깨!’의 문은 안 열리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 등 끝나지 않는 강행군의 독려 속에서 북한 주민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동안 샛별을 보고서 천리마처럼, 땅크의 속도전으로 생의 고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무작정 달려 왔는데 아직도 행군의 끝은 보이지 않고 이번에는 올레길도, 비포장길도 아닌, 난데없이 <생눈길>이라니 기가 막힌다.
김정은의 미천한 정치경험이나 인생경험으로 봐서는 중대급 규모를 인솔할 위인도 못된다. 국가 지도자로서는 어불성설이다. 경험을 빌리고 두뇌를 빌릴 수 있다지만 지도역량이 부족하면 결정적 시기에 결정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따라가는 주민들만 길 헤맬 각오하고 따라가야 한다. ‘논길’도 아닌 ‘눈길’이면 배급 줄 식량도, 생각도 아예 없다는 말이다. 생눈길이니 오죽 하겠는가? 눈밭을 헤매다가 눈으로 목이나 축일 뿐이다. 그간 뙤약볕 아래 황야를 누비는 죽음의 길을 걸어 왔는데 또 생눈길이라니 다름 아닌 형극(荊棘), 험한 가시밭길이로다.
노예생활을 접고 모세를 따라간 이스라엘인들은 홍해를 건너 40년간 광야를 헤맨 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다. 그보다 긴 70년 세월 김씨 일가에 맡겨진 북한 인민들은 배고픔을 끼니삼아 죽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새 지도자로 치켜세우지만 청맹과니나 다름없는 젊은이가 어쩌겠는가? 경험 없는 말은 다른 말이 끄는 수레 뒤에 매어 길들여야 요령을 배운다. 그간에 죽으면 할 수없는 일이지만.
형제국 중국은 등소평(鄧少平)의 발 빠른 변신에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구분 없이 쥐를 잡더니 지금은 밥술은 먹는 세계 2위의 ‘통 큰 중국’이 되었지만 9억 농민의 주린 배를 채워 줄 그 많던 쥐들은 온데간데없고 3억 명의 농민공을 양산하여 쥐 대신 도시 고양이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도 끼니는 늘 부족하다. 너무나 커진 빈부격차는 풍요 속의 빈곤으로 농촌의 공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앞으로 저 사래 긴 밭에 씨는 누가 뿌리고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걱정하고 있다.
중국을 닮으려던 북한의 경제는 꽂을 피우기도 전에 난관에 봉착하고 경제 실무를 담당하던‘경제 전도사’ 박남기는 총살당하였다. 화폐개혁의 실패로 책임추궁 당한 걸로 알고 있지만 실은 바른 소리 때문에 미움을 샀다고 한다. 평양에 주택 십만 호 건설은 김정일이 인민들에게 자신있게 보여주고픈 ‘어버이 탄신 100주년 기념 선물’이었다.
그러나 , 외화벌이가 이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십만 호 건설은 재정파탄을 가져올 것이 뻔했다. 그야말로 ‘생눈길’을 걷게 될 것을 우려한 박남기는 계획을 취소하도록 직언한 것을 두고 건설 책임자인 장성택이 못마땅하게 보고 화폐개혁 실패에 그를 희생양 삼았다. 성난 민심을 달래고 자기는 살기 위한 고육책으로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총살당하다니 죽으나 사나 생눈길은 피할 도리가 없는 어이없는 현실이다.
김정은이 리설주 데리고 유원지로, 공연장으로, 식당으로 돌아다닐 때는 아, 그래도 어린 것이 유럽에서 눈길질한 경험이 있어 새로운 시도를 하려나 보다 했다. 그런데 , 발표 한다던 ‘신 경제지침’은 유야무야 지나가고 뜬금없이 <생눈길 정신>이 나왔을 땐 그 말이<생눈길질 정신> 즉, 전례 없이 새로운 ‘신사고(新思考)’같은 획기적 시대정신이려니 했다. 그럼 그렇지, ‘우리식’ 길을 가겠다는 긴 변명을 다 들을 필요도 없이 바로 ‘우리식’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뻔한 소리임을 알아 차렸다. 이래저래 ‘애비 잘못 만난 자식들’같아 북한 주민들의 고생이 안타깝다.
북한 인민들은 허구 헌 날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꾸다가 허망한 현실에 실망하고 다시 새로운 이상을 쫒게 만드는 북한 지도자의 무능으로 인하여 희망 찾아 떠나는 ‘파랑새 증후군’에 빠져 있다. 김광진 의원 같은 종북주의자 중에는 ‘그래도 북한이 나은 것 같다’는 환상을 가지면서도 자기는 아파트 사고, 터어키 여행 계획하는 배부른 좌파들도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다 안다. 출애굽이 없이는 가나안도 없다는 것을. 모세 같은 지도자가 아니면 굶어 죽기 딱 맞다는 것을. 무능한 세습 왕조를 원망하고 있다. 북한에서 출애굽은 이제 시작이다.
역사학자들은 김정일을 모택동에, 김정은을 등소평에 비유한다. 鄧은14세에 프랑스에 유학하여 모스크바까지 10년을 ‘눈길질’ 하면서 익힌 결과, ‘흑묘백묘론’의 이노베이터가 되었다. 공(功)이 있지만 과(過)도 있는 법. 천안문 사태 등 많은 중국인을 죽인 그의 조사(弔辭)에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여“ 선행은 천 년을 기억 못하지만 악행은 만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라는 주홍글씨를 새겨야 했다. 얕얕한 눈발이 쌓이면 백양나무 생가지도 뚝 부러뜨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말에는 숫눈길이 있다. 숫총각 같은 길, 생눈길과 같은 의미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생눈길은 가봐야 생고생, 헛수고다. 반면, 숫눈길을 가려면 베짱이 필요하다. 건상유족(蹇裳濡足)이라는 말이 있다. 옷을 걷어 올리고 발을 적셔야 연꽃을 꺾어 여인의 환심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주체 100년대의 장엄한 진군길’에 들어 선 북한의 나어린 지도자가 영명한 지혜로 북한 주민들을 생고생 시키지 않길 빌 뿐이다. 김씨, 마지막으로 생눈길 떠나기 전에 Tip하나 주마. MB 정부가 제안한 <그랜드 바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자유주의를 두려워하지 마라. 핵을 두려워하고 주민을 두려워하라. 생눈길 만만치 않을 걸. 참, 정신 없을 텐데 이 쪽 대선엔 신경 꺼라. 추운 겨울 손난로 하나 보낼테니 남풍 불면 삐라에 유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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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수 harubang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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