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역사
② 뤼순·하얼빈 방문기,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찾아서
최토출 | 승인 2012.03.19 00:00

[최토출 칼럼위원, 사단법인 푸른한국포럼 이사장]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의 '정화암'편에서 독립운동가 정화암은 조마리아 여사에 대해 아래와 같이 회고하고 있다.

마차에다 이삿짐을 잔뜩 싣고 가는데 마적들이 나타났어요. 총을 마구 쏘면서. 그러니까 같이 가던 청년들 수십명이 전부 땅에 엎드려서 꼼짝 못해요.

이때 그의 어머님이 척 내려오더니 ‘이놈들아, 독립운동한다는 놈들이 이렇게 엎드리기만 하기야? 이렇게 엎드려 있다간 다 죽어’라고 대성일갈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벌벌 떠는 마부를 제치고 스스로 말고삐를 쥐더니 ‘죽는 한이 있어도 가고 보자’고 소리를 질렀다죠. ‘에야’ 소리를 지르며 마차를 몰아 결국 무사했다는 것 아닙니까? 보통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창원대학교 사학과 도진순 교수는 <안중근 가문의 유방백세와 망각지대>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선 상황에 정통한 일본의 고위경찰 관리도 조마리아를 <상당한 여걸>로 평가했다. 안중근 순국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북만주·연해주·상하이를 전전할 때, 조마리아는 독립운동 진영의 상징적 어머니였으며, 안중근 가문이 독립운동의 전선에 계속 나서게 하는 정신적 지주였다.

1927년 7월 조마리아가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자, 국내의 신문들도 그 소식을 전하며 애도했다. 그는 상하이 징안쓰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그 후 유실되어 아직까지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준생은 어떠했는가? 호부견자(虎父犬子)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안준생은 그의 형 분도가 어릴 때 죽고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7년 안중근 의사가 해외망명을 떠날 때 태중 6개월이었다. 아버지가 32세로 순국할 때 이제 겨우 4세였다. 그래서 그는 태어난 후 한번도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안준생은 온 집안이 연해주와 북만주로 망명한 후 가족과 함께 떠돌이 삶을 살았다. 상해로 이주한 후 거기에서 후장대학을 다녔으며 한때는 독립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안준생의 비극은 국민당 군대가 철수하고 상하이가 일본 천지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안중생에 대한 일본의 공작은 그때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안준생은 일본 공작원들의 꾀임에 빠져 1939년 9월 26일 한국을 방문했다.

10월 15일 이또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가 장춘단 공원 기슭에 건립되어 있었는데 거기를 찾아갔다. 안준생에게는 평생 최대의 비극인 <박문사 화해극>이 벌어졌다.

안준생은 거기에서 ‘이또의 명복을 빈다’고 했고 아버지의 행위가 ‘오해로 인한 폭거’라고 주장했다. 이튿날 안준생은 조선호텔에 묵고 있던 이또의 아들 분기치를 찾아가서 ‘사죄하러 왔다’고 했고 분기치는 ‘불가사의한 인연’이라고 답했다. 10월 17일 두사람은 함께 박문사를 방문하여 합동공양을 올렸다.

이 사건은 ‘부처의 은혜로 맺은 내선일체’, ‘이제 이토 공의 영령도 미소지을 것이다’ 등등 한국과 일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참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김구선생은 장세스에게 안준생을 아편 매매법으로 즉각 체포해 주길 바란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1945년 11월 5일 귀국길에 ‘민족반역자로 변절한 안준생을 체포하여 교수형에 처해달라’고 잘알고 지내던 중국 관헌에게 특별 부탁하기도 했다.

안준생의 비극은 일본 제국주의의 교묘하고 악랄한 공작의 산물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비극적인 가족사를 역사의 한 장으로 넘기면서 덮어두기로 하자.

인류사에서 가장 악질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고 민족혼을 빼앗아간 일본 군국주의를 기억하면서. 그리고 100만에 가까운 우리 민족을 학살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학살을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여행기를 마치면서 꼭 한가지 빠뜨려서는 안될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TV에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설문조사하는 앵커가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안중근이 누구냐고 물으니 권투선수인가요 하고 되물었다.

어느 언론사에서 3.1절을 맞아 애국가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초등학생 100명을 상대로 애국가 가사를 써내라고 했더니 64명은 일절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18명은 백지상태로 답안을 제출했다.

참으로 기가 막힌다. 우리나라 교육탓이다. 민족교육과 국사교육을 팽개친 결과이다. 민족혼을 일깨우는 교육을 없애버린 양아치 교육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X같은 교육에 침을 뱉고 싶다.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나약해졌는가? 왜 이렇게 이해타산적으로 변했는가?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등록금에만 왜 목숨을 거는가? 여자정신대 문제가 연일 대서특필되고 대형 부정부패 사건이 터져도 왜 침묵만 하고 있는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최배영)아! 이 나라 젊은이들이여! 안중근 삶을 살자. 그리하여 창대한 조국을 건설하자.

-끝-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최토출  webmaster@bluekoreadot.com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토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최근 이슈기사
김민석 미복귀제대, 말년휴가 중 코로나19 여파로김민석 미복귀제대, 말년휴가 중 코로나19 여파로
민주당 당 대표 전당대회, 이낙연 vs 김부겸 양자대결민주당 당 대표 전당대회, 이낙연 vs 김부겸 양자대결
안희정 모친상,특별 귀휴 조치는 불투명안희정 모친상,특별 귀휴 조치는 불투명
국방부, 대구공항 단독후보지는 이전부지로 부적합국방부, 대구공항 단독후보지는 이전부지로 부적합
icon가장 많이 본 기사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 2가 247 3층  |  TEL : 02-734-4530(代)  |  FAX : 02-734-8530  |  긴급연락처: 010-2755-6850
제호 : 푸른한국닷컴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298  |  창간일 : 2010. 07. 20  |  발행·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영준  |  마케팅이사 : 김혁(010-3928-6913)
Copyright © 2010-2020 푸른한국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ugsum@nate.com.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