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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사라호 태풍 피해주민. 사진@온라인커뮤니티 |
[고성혁 군사전문기자] 얼마 전 길도형 타임라인 대표 그리고 정안기 박사와 전방 지역 전망대를 다녀오면서 철원군 마현면 일대를 지날 때였다. 길 대표가 마현면 이곳은 그 옛날 사라호 태풍 때 울진지역 수재민들이 이주해와서 형성된 마을이라고 말했다.
그땐 얼핏 듣고 지났다. 그저 철원 쌀이 좋다하니 나중에 철원에 와서 쌀이나 사가 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히남노 태풍이 사라호때와 비슷하다는 말을 듣고 길 대표가 언급한 철원 마현리 마을을 다시 떠올렸다. 정말 사라호 때 울진 영덕 66가구가 비무장지대 철원 마현면 일대로 이주해서 일궈온 땅임을 알게 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요즘은 태풍 하면 2003년 매미나 루사를 거론한다. 피해액을 기준으로 하면 태풍 매미 때가 가장 크다고 한다. 그러나 태풍 자체수치상으로 말하면 1959년 9월17일 추석날 사라호 태풍이 가장 강력했다.
통영 일대에 상륙하기 바로 직전 군용 비행기로 942 hPa를 실측하였다. 당시 일본 기상청의 자료에 따르면 10분 평균 최대풍속이 70 m/s라는 미친 수준의 풍속을 기록했다. 시속으로 하면 250Km/h다. 일본 오끼나와에선 중심기압 905hPa까지 나왔다. 부산에서의 측정된 수치는 951.5 hPa가 실측되었다. 이번 태풍 히남노가 기록을 깰지 지켜 볼 일이다.
인명피해로 보면 사라호 태풍 때 가장 컸다. 공식적으로 948명이 사망했다. 특히 영남권에 집중됐다. 추석이라 다들 모인 가운데 태풍이 덮쳤기 때문이다.
초가집의 흙벽은 태풍에 취약했다. 비바람에 초가지붕은 물기를 잔뜩 머금어 무게가 서너배 불어난다. 반대로 물에 젖은 흙벽은 지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그렇게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것이다.
마산 일대에 상륙한 사라호 태풍은 밀양 포항을 거쳐 울릉도로 빠져 나갔다. 영남일대는 완전 초토화됐다.
작년에 돌아가신 선친이 태풍이야기하면 사라호를 언급하셨다. 선친고향은 포항, 모친 고향은 울릉도라 나는 어려서 부터 사라호 태풍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외할아버지도 배 사업을 제법 크게 했는데 사라호 때 엄청 피해를 입으셨 다한다. 지금은 보험이라도 있지만 그땐 그런 것도 없으니 온전히 선주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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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촛대바위. 사진@온라인커뮤니티 |
다시 철원 쌀 이야기로 돌아 간다면, 지금 철원 일대는 민통선지역으로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었다가 김대중 때부터 개방되면서 철책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엔 전적으로 군 통제구역이었다.
1958년 38선 이북 수복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유엔으로부터 넘겨받은 이승만 정부는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을 철원 마현리로 이주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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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쌀. 사진@롯데on |
당시 철원 마현리는 수복지로서 주인 없는 땅이었다. 정부소유라고나 할까. 그 땅을 울진 66가구는 피눈물로 땅을 일궜다.
그런데 1982년 말 ‘수복지역 소유자 미복구 토지의 복구 등록과 보존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지주가 보증인을 3명 이상 내세우면 소유권 보존등기를 해줬다.
이 특별조치법 탓에 마현1리 주민들은 개간한 농지 중 70%가량을 잃고 다수가 다시 임대농지에서 경작하게 된 아픔이 있다. 이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지역에 대한 땅 소유는 무조건 정부로 하고 민간에 대한 소유권은 극히 제한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라호 태풍 이재민 울진 군남면 66가구, 그들은 정말 고래 심줄같은 삶을 살았다. 그렇게 일군 철원의 땅에서 나오 것이 지금의 철원 쌀이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고성혁 sdkoh40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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