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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잔재 청산은 新적폐몰이
안호원 | 승인 2019.03.05 19:55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사진@청와대
이제는 항일과 민족을 넘어 미래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때
 
[안호원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 시인 겸 수필가] 지난 1일은 3.1운동 100주년, 오는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기념비적인 해를 맞이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는 문화행사, 학술심포지엄 등 각종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교육계와 지자체 단위로 문화행사와는 별도로 ‘일제잔재 청산’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들 단체는 친일파가 작곡한 교가 퇴출, 지명 바꾸기. 조형물 철거 작업까지 진행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교조가 "친일 인사의 동상·기념관이 있거나 교가를 친일 인사가 지은 학교"라며 서울 초·중·고교 113곳을 지목했다. 당장 기념물을 철거하고 교가를 바꾸라고 요구까지 했다. 3월까지 말미를 주고 안 바꾸면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전교조가 말하는 친일파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안익태·홍난파 서정주 김동인 최남선 현제명 등이다. 지목된 학교에는 서울고 휘문고 숙명여고 창덕여고처럼 광복 전부터 있던 명문들이 대부분 해당된다.
 
일제 때 개교한 탓에 몇몇 교가 중엔 일본식 멜로디를 따오거나 일제가 붙인 지명을 노랫말에 넣었다가 광복 후 폐기한 경우가 있다. 역사가 오랜 학교일수록 교가는 당대 최고 시인이 가사를 쓰고 유명 작곡가가 멜로디를 붙였다.
 
지금 우리 학교 교가에 일제(日帝)를 찬양하는 내용이 어디 있는가. 교가, 가사를 지은 사람이 친일파라고 교가를 없애라면 그 교가를 가슴에 품고 학창 시절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은 어떻게 보상하겠는가.
 
일방적으로 낙인찍은 친일 인명사전을 토대로 학교 교가를 하루아침에 없애라는 것은 폭력이다. 경기도 고양시와 여주시는 ‘친일파 김동진이 작곡한 시가(市歌)를 부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 성북구청도 '인촌 로'라는 도로 명을 없앤 뒤 ‘고려대로’로 바꿨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에도 없던 교가 공격, 도로 명 공격이 때 아니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 최고 권력기관이라는 전교조가 '없애라'고 하면 교가까지 없애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100년 가까이 불러온 교가를 당장 없애야 한다면, 일제 적산 가옥을 보존해 관광 자원으로 써야 한다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리고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일본식 다다미방 카페와 교토 풍(風) 술집, 라멘 집, 이자카야는 무슨 말로 변명을 할 것인가. 문 정권이 입버릇처럼 떠드는 적폐청산처럼, 여론몰이 바람을 몰고 오는 유치한 발상에 할 말을 잊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 검찰, 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도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인권을 경시하는 권력기관 병폐를 ‘일제 잔재’로 규정한 바 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친일잔재 청산’강행하기에는 다소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일제잔재청산의 이유로 일본식 글과 문화를 뜯어고치려면 많은 문제가 발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일제시 일본어로 된 일본식 법전을 번역한 헌법을 비롯해 철학. 예술. 사회. 문화 같은 수많은 근대 개념어들은 다 어떻게 청산하며 또 어떻게 정리를 할 것인가?
 
머리가 혼탁해진다. 여전히 모호한 친일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식민의 역사는 식민의 역사대로 기억 보존하며 후세들이 보고 느끼는 것도 산 역사, 교훈이 되지 않을까.
 
그보다도 3.1운동 100년의 핵심적인 화두가 아직도 잔재청산, 단죄와 분노라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고, 미래를 생각조차 할 수없는 건 아닌지. 싫든 좋든 우리 근대성의 바탕은 일제 강점기의 유산이고, 나아가서는 조선 시대 성리학처럼 상당 부분 우리의 일부가 된 것은 부인 할 수없는 사실 아닌가.
 
일제의 유산 중 문제가 되는 것을 지적하고 바로 잡는 것과, 모든 악의 뿌리로 규정하고, 그 잔재를 뿌리 채 싹쓸이하지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고, 또 현실적이지도 않다. 내 맘에 안 든다고, 다 없애버린다면 역사는 존재 할 수 없다.
 
역사를 없애는 것은 무서운 범죄 행위다. 역사를 보존하여, 후(後)일까지도 스스로 평가하고 교훈으로 기억되게 해야 한다. 100년 전 우리는 대한제국의 백성이나 일제의 황국신민이 아닌 자유, 평등, 주권,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세계시민이었다. 항일. 독립. 민족이란 좁은 해석을 뛰어넘어 세계의 보편주의를 품는 일대 시각의 전환을 시도 할 시점에 와있다.
 
이제는 항일과 민족을 넘어 미래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때다. 이 와중에 늘 말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문재인대통령이 이번에도 또 사고를 쳤다. 지난 1일 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사를 통해 "빨갱이와 색깔론은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고 말했다.
 
이어 “‘빨갱이’는 일제가 모든 독립 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빨갱이란 용어 자체가 설사 일제의 독립운동가 탄압 과정에서 생겨났다 해도 굳이 기념사에서, 그것도 100주년까지 겹쳐 의미가 더욱 각별한 3.1절 행사장에서 대통령이 힘주어 강조할 말이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빨갱이라는 말 자체가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거론 하는 일상용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사회경제적 양극화에다 세대. 지역갈등까지 겹쳐 몸살을 잃는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불구, 문 정권이 ‘부역자’ ‘적폐청산’ 운운하며 적과 아군, ‘내 편’ ‘네 편’으로 편을 갈라 갈등과 대결을 부추겨 왔다.
 
문 대통령이 말한 ‘빨갱이’어원 풀이는 오히려 거꾸로 ‘색깔론’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좌우 이념 갈등의 최대 상처는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이라는 사실을 빼고서 좌우 갈등의 반쪽만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반(反)체제 인사에게 ‘빨갱이’란 이름을 붙여 ‘용공 프레임’으로 악용된 적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빨갱이란 단어를 친일잔재로 등치시킨 것은 6⋅25 남침(南侵)을 한 북한 김일성이나 북한 핵무장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까지 ‘친일 프레임’을 씌우려고 국민을 호도하며 선동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빨갱이’ 발언은 최근 북한 비핵화 가능성에 회의적인 야당을 겨냥해 ‘적대와 분쟁의 시대를 바라는 세력’이라고 지칭한 것과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그래서 현 정권의 남북 대화 기조에 비판적인 정치 세력을 ‘친일 잔재’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도 나온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문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쓰는 표현에 과한 측면이 있다 해도 집권자가 공개적으로 이를 친일잔재로 규정하는 건 건전한 비판조차 봉쇄하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민주당 이철희 의원 등이 발의한 ‘5.18 비방 특별법안’도 그렇다. 명예훼손죄가 분명 있음에도 특권층을 위한 특별법을 또 제정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한마디로 정부의 견해와 다른 생각을 갖고 의심을 하는 국민들을 붙잡아 감방에 보내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는 분명 반민주적 발상이다. 무슨 근거로 누가 대한민국 시민으로부터 ‘반대 할 자유’ ‘표현의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5.18특별법이 통과되면 “광주 사태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더라.”식의 술집 논쟁으로 이외로 많은 사람들이 ’5.18비방 죄‘로 감방에 가는 신세가 될 것이다. 국민의 입을 법으로 막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문 대통령도 5.18비방에 대해 강력한 불쾌감을 보였다. 최고지도자로서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아무리 5.18민주화운동이 신성하다 해도 수학공식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다 공감하고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하나의 견해만 용납된다면 전체주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완전한 악의 제거는 가능한 것일까. 유생의 입을 틀어막은 ‘분서갱유’ 경제적 파국을 홍위병 난동으로 덮어버린 문화대혁명, 유대인 증오로 민족주의에 불울 지른 나치, 그것이 정말 악이건 아니건 집권자가 그렇게 힘으로 규정하고 말살하려고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공한 사례가 없다.
 
지금은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미래를 향한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가 절실한 때이다. 비난의 경쟁이 아니라 잘하기 경쟁을 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친일잔재 청산은 3⋅1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역사 왜곡 여지가 있는 표현이다.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기 위한 ‘신(新)적폐몰이’와 국민 편 가르는 정치를 하지 않는 문 정권이 되기를 바란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안호원  egis0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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