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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온라인커뮤니티 | ||
[푸른한국닷컴 전영준 칼럼니스트]고인은 지난 2007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병세가 호전돼 2008년 한화 2군 감독,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7월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남고와 군산상고의 레전드 매치에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나 많은 야구인과 팬들에게 근신 걱정을 주었다.
최 전 감독은 당시 “식이요법을 통해 체중을 줄여야겠다고 하다보니까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 다음에는 꼭 던지겠다”고 복귀를 약속했다.
그러나 병세가 급격히 나빠져 경기도 포천 등지에서 요양해 오다,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났다.
경남고와 연세대를 나온 최 전 감독은 선동열 전 삼성 감독과 더불어 한국야구 100년사에서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다.
고 최동원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야구 최고의 투수였다. 그가 롯데 시절인 1984년 기록한 한국시리즈 4승은 불멸의 대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교 및 대학과 실업 무대에서부터 최고로 군림하던 최동원은 1983년 롯데에서 프로 데뷔해 이듬해인 1984년 정규시즌에서 27승 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했다. 데뷔 2년차에 프로 무대를 평정한 것이다.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을 상대로 혼자 4승을 모두 거두며 롯데 자이언츠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안기기도 했다.
1985년부터 3년 동안 20승-19승-14승을 거두며 롯데의 에이스로 꾸준히 활약하던 최동원은 선수협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으면서 1989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돼 1989년 1승, 1990년 6승에 그친 뒤 정든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2001년 한화 이글스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최동원은 2007년 한화 2군 감독,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 경기위원을 역임했다. 그리고 2011년 9월14일, 영면에 들었다.
지난 13일 출범 최초로 600만 관중 돌파라는 신기원을 이룩한 프로야구는 최근 ‘영원한 3할 타자 ’장효조 전 삼성 감독에 이어 최 전 감독까지 떠나자 비통에 빠졌다.
인터넷에서는 최 전 감독의 영면을 기원하는 추모 물결이 일고 있고, 최 전 감독과 함께 현역 시절을 보낸 야구인들은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16일 오전 6시다. 장지는 경기도 자유 로청아공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현주 씨와 군 복무 중인 아들 기호 씨가 있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전영준 news@bluekorea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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