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전교조에서 ‘반전 계기교육 자료’를 배포한 것에 대해 교육부는 적절하지 않다고 하고, 일부 언론에서는 ‘학생 의식화’라며 반발하고 있다. ‘계기수업’을 하려는 전교조와 교육부·보수언론 사이의 논란 이전에, 교사로서 왜 ‘전쟁 반대’를 가르칠 수밖에 없는지 말하고자 한다.

이라크 무장단체가 김선일씨를 무참히 살해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죽게 만든 그들은 체포되어야 하고 상응하는 법적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똑같은 이유로 처벌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9·11 테러, 대량살상무기, 알카에다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무 잘못 없는 이라크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시와 이라크 무장단체 모두 ‘생명의 소중함’을 배반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진실을 가르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안중근을 위인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유인즉, 그 자신이 죽음을 각오하고 조선 침략을 자행했던 대표를 죽였지만, 아무 잘못도 없었을 일본 국민들에게 테러는커녕,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라크 무장단체와 안중근의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쨌든 안중근은 일본에 의해 테러리스트라고 규정된다 해도 우리에게는 위인이다. 역사의 해석이 나라마다 다르다고 해도 진실은 존재한다. 안중근의 행동은 진실이다. 그리고 그의 행동을 우리는 교육 내용 중의 일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교육은 사회현실과 괴리된 채 진공상태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보수언론들은 ‘중립성’을 내새워 비판한다 하지만, 중립적태도와 절대적 가치로서의 진실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언론은 ‘과연 교사가 학생들에게 (반전에 대해) 균형 있게 가르칠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진실과 왜곡 사이의 균형을 말하고자 함인가. 또, 파병 논란은 국가정책의 방향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예민한 성격의 주제이기 때문에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민한 성격의 주제라고 해서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을 덮어버릴 일이 아니다. 고도의 비판정신과 창의성, 그리고 지혜를 요구하는 난이도 높은 논술 문제와도 같다. 생명존중의 관점에서 볼 때, 부시와 이라크 무장단체가 죄 없는 민간인을 죽게 만든 것만큼은 명확하게 성립되는 하나의 교육 내용이 된다.

이는 진실에 대한 접근이기도 하다. 교육은 사회현실과 괴리된 채 진공상태의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7차 교육과정에서도 당면한 사회문제를 수업자료로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하지 않는가. 보수언론들은 ‘중립성’을 내세워 비판을 제기한다. 하지만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립적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과 ‘절대적 가치로서의 진실’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일제의 조선 침략은 가치관에 따라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때 ‘중립성’이란 것으로 진실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이 교사의 길은 아니다. 군사독재 시절에 그 ‘중립성’이라는 말로 권력에 동조하거나, 권력의 지배에 침묵하는 모습이 있었다. 진실에 대한 뿌리깊은 침묵의 역사가 21세기에도 이어지는가.

김선일씨의 유족들은 지난주 장례일에 ‘이라크를 용서합니다. 당신들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타전했다.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유족들이 앞서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전투병 파병을 운운하며 나서서 전쟁을 부추기고 파병을 강행하려 하는 보수언론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여기에 교사들의 ‘생명 존중’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교육마저 ‘중립성’을 내세워 비난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총칼보다는 사랑을, 전쟁보다는 평화를 가르치는 것은 교육 내용의 본질 중의 하나다. 이는 교육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생명 존중이 소중함’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광국/인천 명현중학교 교사 [한겨레 2004-07-04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