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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반란군 지도자를 추모하자는 곡이다.
전영준 | 승인 2016.05.17 15:52
사진@한겨례신문 1995년 7월21일자,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화면캡처
윤상원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죽은 사람과는 엄연히 다르다.
 
[전영준 기자=푸른한국닷컴]16일 국가보훈처는 5·18 기념곡 지정 요구에 대해 “5대 국경일, 46개 정부기념일, 30개 개별 법률에 규정된 기념일에 정부에서 기념곡을 지정한 전례가 없고, 애국가도 국가 기념곡으로 지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할 경우 '국가 기념곡 제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혀 기념곡 지정에 대해 반대입장을 밝혔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 27일 5·18 민주화운동 중 전남도청을 점거하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것이다.
 
결국 윤상원은 5.18 민주화 운동 중 끝까지 투항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체제파괴를 위해 정부군과 맞서 싸우다 사살당한 반란군의 지도자 즉 수괴(首魁)라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상기 곡은 대한민국 체제를 파괴한 반란군의 수괴를 추모하는 곡이라 할 수 있다.
 
1980년 5월21일 시위군중 2만명과 계엄군의 격렬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일부 시위대들이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 트럭, 장갑차 탈취해 광주시 내로 몰고들 어오고 계엄군은 집단발포를 시작했다.
 
이에 시위대가 나주시, 화순군 등지의 예비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해 무장을 시작했으며 7공수여단, 11공수여단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철수, 3공수여단은 광주교도소로 철수했다.
 
5월22일부터 광주는 치안부재상채가 되며 ‘해방광주’가 되었다. 조비오 신부, 명노근 변호사등 양식 있는 일부 광주시민들은 계엄군과 협상에 나서는 한편, 수습위 무기회수반을 조직해 총기 회수 작업을 시작해 자치질서를 찾아가고 있었다.
 
일부 시민들의 계엄사에 무기 자진 반납을 하자는 온건파 주장과는 달리 강경파들은 지속적인 투쟁을 주장하며 계속 무장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수차례에 걸친 내부 대책회의와 협상 끝에 계속 무장을 해야 된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원만한 타결을 원하는 '온건파'를 축출한 ‘강경파’는 지도부를 구성해 5월 25일부터 윤상원은 강경 지도부에서 '대변인' 직을 맡으면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윤상원은 시민군의 실제적 지도자였다.
 
한겨레신문 1995년 7월21일자 ‘5.18 당시 상황 재구성’제목의 기사를 보면 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을 앞둔 26일 밤 윤상원의 행위가 잘 묘사되어 있다.
 
“(1980년 5월26일)오후8시께 전남도청 내에서 수습위원들 간에 마지막 회의가 열려 진압작전 시 대항하는 것은 엄청난 피해만을 야기할 뿐이므로 무기를 반납하고 의연히 처벌받자는 의견이 다수로 채택되었다.그러나 윤상원 박남선 등 최후 항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회의실로 들어와 총으로 이들을 위협하고 내 쫓아,무기 반납을 주장한 인사들은 오후9시께 전남도청을 빠져 나갔다.”라고 적혀 있다.
 
윤상원 등의 행위가 반란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주장에서 알 수 있다. 한겨레는 “12시10분께 민주시민투쟁위는 광주시민들이 총을 버리려면 정치적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과도정부 퇴진,계엄령 즉각 해제,살인마 전두환 처단,구국 과도정부 수립 등을 요구했다.”라고 밝혔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구국 과도 정부 수립 요구’는 분명히 당시 헌정체제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며 1년 내에 개헌을 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겠다고 약속했기에 정치적으로도 대다수 국민들에게 승인을 받았다.
 
결국 윤상원은 평화로운 해결방법을 주장하는 대다수 시민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대한민국 전복을 위해 투항을 거부하고 최후항쟁을 선동 정부군과 맞서 싸우다 사살당한 반란군의 지도자인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자는 것은 앞서 죽은 윤상원의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체제전복을 위해 살아 있는 자들이 따르자고 외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윤상원은 민주화운동을 하다 죽은 사람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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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dugs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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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 왜곡된자료다 2016-05-17 16:38:14

    기사어디에도 경찰서습격내용은 없다.
    이미 왜곡된 자료를 정확한 자료인것처럼 게시마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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