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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새누리당 예비후보의 학력 의혹 단상
전영준 | 승인 2016.03.08 03:04
70년대 초 성남시 모습.사진@성남시청
4·13 총선을 앞두고 강원 동해·삼척 새누리당 예비후보들 간의 고소·고발과 지속전인 의혹제기등 난타전이 전개되고 있다.
 
[전영준 푸른한국닷컴 대표]7일 <일요서울> 1140호에 따르면,강원 동해·삼척 여론조사 결과 현역인 이이재 의원과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선두 자리를 앞다투고 있다.
 
선두다툼이 치열한 가운데 이 전 청장 측에서는 허위 사실 유포 등으로 이 의원 측 인사들을 고발했고, 급기야 이 의원 측은 이 전 청장에 관한 진정서를 중앙당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진정서에는 이 전 청장의 성남시(이하생략) 성일고 졸업앨범, 전의경재경향후회 자료, 성일고 졸업생 학적사항 회신서 등이 담겨 있다. 주 내용은 성일고 졸업에 대한 의혹들이다.
 
이 전 청장이 1977년 2월 성일고를 졸업했고, 1976년 3월 전경 25기(33개월 복무)로 입대해 고등학교 재학기간과 군 복무기간이 겹친다.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게 진정서의 골자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전의경재경향우회 자료와 고등학교 졸업생에 대한 학적사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전 청장은 전경 25기 출신이고, 1977년 2월 25일 성일고 1회 졸업생이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성일고를 1회 졸업했으나 졸업증명서 졸업대상번호가 2회 졸업생보다 훨씬 늦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졸업대장은 연번으로 작성하는 만큼 정상적인 방법으로 졸업장을 취득했는지 여부를 놓고 도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요서울>은 진정서 등과 관련해 이 전 총장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는 데 이 전 총장은 “겹치는 부분은 사실”이라며 “전투경찰 시절 고등학교 졸업장이 나왔다”고 인정했다.
 
이 전 총장은 “북평고를 1년 다녔고, 성일고를 2년 다녔다. 학교에서 출석일수를 인정해줘서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며 “당시 집안이 어려워 계속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부모님이 안타까운 마음에 수업일수 등을 맞춰서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위조한 것도 아니고 학교가 인정을 해줘서 졸업장이 나왔다”며 “공직에 가거나 할 때는 학력제한이 없어서 필요도 없었던 시절이다. 이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비난받을 일이라면 비난을 받겠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성일고 개교 당시의 성남시 상황을 살펴보자.
 
성남에 소재한 성일고는 성남출장소에서 성남시로 승격한 해인 1973년 6월20일 학교법인 성일학원 설립 인가를 받고 1974년 1월5일 성일고등학교 12학급 인가를 받았다.

이어 1974년 3월2일 첫 입학식(4학급)을 거행하였으며 입학한 학생들은 1977년 1월19일 1회 졸업생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성남시는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초반 시절, 서울특별시의 무허가 빈민촌 정리 계획으로 일부는 무허가 주택을 현지 개량해서 양성화하고, 또한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어 그쪽으로 이주시킨다는 계획에 의해 탄생되었다.
 
이 주거지로 계획된 것이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현 성남시 지역)에 조성되는 10만 명이 주거할 규모의 일명 광주대단지다.

광주대단지는 태평, 수진, 복정, 단대, 은행, 상대원, 돌마면, 낙생면 등이 성남으로 흡수되면서 탄생 했다.
 
이때 10만명이 넘는 빈민층 사람들이 살 집을 준다는 말만 믿고 서울에서 열심히 이사를 갔다. 당시 청계천과 서울역 일대에 살던 빈민들에게 '다시는 서울로 이사오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이주시켰다.
 
그러나 주변에 상권이나 업무시설 같은 건 없었다. 그나마 남쪽으로 내려가면 모란시장 정도가 있긴 했는데, 당시 모란시장은 정말 소규모 면소재지의 5일장일 뿐이었다. 10만명이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곳에는 생계, 생존 수단이 전혀 없었다.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일자리가 되어줄 공장 지역도, 물자 공급을 해줄 상가도 없었고, 교통도 개판이니 다른 지역으로 취업이나 물건을 구하러 나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학교시설은 물론 화장실, 상하수도, 전화 같은 기본적인 시설의 공급도 20% 이하였다. 그야말로 산천초목 산간지대 외딴 슬럼가에 버려진 셈.
 
1971년 8월 10일 오전 10시에 6만 명이 넘는 인파가 성남출장소 앞에 집결하여 세금 감면, 분양가 인하, 공장과 상업 시설 설치, 취업 센터 설치, 구호 사업 등 정부가 애초 한 약속을 이행하거나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당시 서울특별시장이었던 양택식과 면담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한달 전 받아낸 면담 예정일이었던 8월 10일, 서울시장이 약속되어 있던 면담 장소에 나타나지 않자, 마침내 분노가 폭발한 군중들은 봉기하여 주변 지역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이에 사건을 보고받은 정부는 내무부 차관과 경기도지사를 현장으로 파견해 이주민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은 물론, 주민대표에게 정식 사과하고 이주민들의 화를 달랬다.

8월12일에 서울특별시장 양택식이 방송 담화를 통해 광주대단지(성남출장소)의 성남시 승격과 함께 주민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시민들이 자진 해산한 끝에 소요는 3일만에 최종 진정되었다.이것이 그 유명한 광주대단지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 편의 시설 차원에서 급하게 초.중.고 등 학교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는 데 정부가 돈이 부족하다보니 사립학교 설립을 유도해 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생긴 학교 중 하나가 성남 수진역 건너편 중원구 상대원동에 세워진 성일고다. 지금이야 화려한 도시로 변모했지만 당시 학교 주변은 밭과 논으로 둘러쌓인 황무지 그 자체였다.
 
급하게 세워진 성일고는 그저 땅에 급조된 교실만 있었을 뿐 학생들을 위한 강당,도서관 등은 생각할 수 없었다.따라서 제대로 학사업무가 진행될리 만무했다.
 
그러면 성일고에 어떤 학생들이 입학했을까. 당시 성남시는 하루하루 사는 빈민들이 많이 거주했다.
 
간혹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학교에 입학해 통학했으나 대체적으로 빈민의 자녀들은 성일고 등 성남시 소재 열악한 학교에 입학했다.
 
성일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서울에 거주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첫째 당시 서울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면 연합고사라는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통상 한반에 60여명 정도된다면 30여명이 연합고사에 합격힐 정도로 그리 힘든 시험이 아니었다.
 
나머지 20여명은 상업계,공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물론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한다고 공부를 못해 가는 것은 아니다.공부를 잘하지만 가정형편상 실업계 학교에 입학에 빨리 취업전선에 뛰어들려고 가는 학생도 있었다.
 
나머지 한반에 5명 내외의 학생들은 공부를 못해 서울의 인문계도 실업계도 못 가는 학생들이 성일고 등 시 외곽에 있는 학교에 무시험으로 입학한다. 즉 돈만 내면 들어가는 것이다.이런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문제아들이 많다.
 
둘째 성일고에 가는 학생들 유형은 서울의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사고를 쳐 제적을 당해 편입하는 경우다.이들 학생들은 서울의 학교에서 받아 주지 않으니 서울 외곽학교로 전학을 간다.
 
한번 상상해 봐라 당시 성일고의 학사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학생들 또한 제대로 학교를 다닐리 없다.지금의 잣대로 당시를 평가하면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필자의 중학교 동창 3명도 성일고에 입학했다.두 친구는 2회 입학생이요,한 친구는 재수해서 서울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는 데 사고를 쳐 결국 성일고에 입학했다.

한 친구는 한 학년 위 친구가 있는 학교를 제대로 다닐리 없다, 학교 안가는 것은 다반사요 가더라도 중학교 친구들과 땡땡이치고 수업시간 빼 먹는 것 일상사였다.
 
필자가 친구 입학식때 가 본 성일고는 그야말로 학교가 아니라 막사였다. 정문도 제대로 없었고 운동장은 진흙탕이요.멀리 논밭이 천지인 지금의 분당이 보일 정도로 주위는 삭막했다.
 
부모가 학교 선생님 찾아가 등록금 낼테니 학적만 유지하게 해달라고 하면 통하던 그런 시대에 존재하던 학교였다.

부모 잘 만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곳이었다.부모의 교육 무관심에 성일고 같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60년대 70년대에 살던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이 전 청장이 “당시 집안이 어려워 계속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고, 부모님이 안타까운 마음에 수업일수 등을 맞춰서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충분히 가능한 해명이라고 본다.실제 당시에는 그랬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 전 청장이 졸업하지 않았는 데 졸업했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학교에 안 나와도 등록금만 내면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던 당시 풍토가 낳은 결과였다.

가정이 어려운 학생이 문제아가 많던 문제 학교의 졸업장을 받아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면 하나의  휴먼스토리가 아닌지 생각도 해 본다.  
   
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이 시대의 비극이듯이 이 전 청장의 학력문제도 시대의 비극이 낳은 것이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전영준  dugs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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