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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에도 부모 공경 명시돼 있다.
안호원 | 승인 2015.02.17 20:35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라” <시편 32 : 8>

[안호원 칼럼위원,수필가 겸 시인]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을 맞이하면서 진정한 을미년 한 해가 밝아오고 있다.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기도 하다.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으로서 새해 첫 날을 의미 한다고 말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교체기라 할 수 있다. 즉, 평소의 이기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 이 날 만큼만은 조상과 함께 하며 조상을 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정신적인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 성스러운 시간이다.

사회적이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갖는 의미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갖고 있다. 고향의 따뜻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명절인 설, 평소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이 오랜만에 한 지붕아래 모여 조상님께 제사도 드리고 어른들께도 세배도 올리면서 밀렸던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여기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 할 수 있는 설날의 의미다. 그러나 설을 맞이하면서 기독교인들은 전통과 신앙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을 일으키며 갈등을 하게 된다.

또 ‘민족의 대이동’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귀성행렬은 예배를 드려야 할 주일과 겹칠 경우 도심지의 교회가 교인 출석 저하로 설렁하게 되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이런 현상은 있어왔다.

명절 때마다 불거지는 이 같은 신앙적인 갈등과 텅 빈 교회의 모습은 앞으로 기독교인들이 어떤 명절문화를 창출해야 할지를 고심하게 하며 과제를 만들고 있다. 우리 문화와는 다른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전통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즐거워야 할 날이 때로는 고통스러워지고 더러는 가족과도 불화를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과제와 불화는 제사 문제에서 비롯된다. 명절 때마다 제사 문제로 시끄러운 가정이 의외로 많다.

제사를 우상숭배란 생각으로 절을 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가족 구성원이나 친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다. 당사자가 종가집의 일원일수록, 젊은 나이 일수록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고성이 오가며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혼 등 살인까지도 발생한다.

온 가족과 친지가 오랜만에 모여 화기애애하게 보내야 할 명절이 갈등의 시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한 세대가 기독교인일지라도 이 같은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명절이면 친지를 찾아가서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내는 큰 집이나 작은 집을 방문하지 않을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종교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특히나 종손이 기독교인이라면 그 갈등은 더욱 첨예하다. 제사를 지내기도 그렇고 안 지내기도 그렇다. 마음 내키지 않아도 제사를 지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다 보니 신앙적 양심 가책으로 마음이 심란해진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관계에서 대립이 촉발 되는 등 소모적인 논쟁이나, 미묘한 갈등을 낳아 명절마다 제사 문제로 가족들과 친지들과의 고성이 오가는 등 싸움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심한 경우, 제사 등 종교적 문제에서 출발한 갈등이 재산문제로 결합되어 법정 싸움까지 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특히 집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기독교인 주부는 제사문제 등으로 냉가슴을 앓는다. 제사 음식 준비로 인한 갈등이 심하다.

전통적 제사문제를 우상숭배로 보는 보수적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교단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도 많은 수의 목회자들이 제사음식 준비하는 것이나 이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설교를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설날을 어떻게 맞이해야 지혜롭게 맞이할 수 있을까. 성경에는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또한 예수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 사람으로 거듭 났다고 쓰여 있다.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셨다. 첫 번째 아담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두 번째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아 많은 사람이 생명에 이르렀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 : 6>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죄의 몸의 효력은 상실됐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몸이 아니라 옛 사람이다. 죄를 가진 옛 사람이 못 박혔기 때문에 우리가 여전히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라” 즉 새로운 ‘나’가 살기위해 옛 ‘나’가 죽었다.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아는 것이 바로 새 해 첫날인 설날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는 새로운 ‘나’로서, 나그네가 아니다. 나그네란 고향을 떠나 온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옛 육신의 고향이 아니라, 그동안 잊어버렸던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따라서 설날을 맞이해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본향임을 깨닫고, 이를 사모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소망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세상풍습을 떠나서 진리에 거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우상숭배로 완전하게 못을 박고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것은 한 나라, 민족 고유명절 풍습을 무시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옛 부터 명절 때 지낸 제사음식을 나누는 것은 가족공동체의 전통적인 먹거리 나눔이요, 삶의 문화로 자리매김해 왔음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무조건 종교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가족 간의 소통까지도 막는 가족 간의 불행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주후 1세기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놓고 먹느냐, 마느냐의 논쟁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황제 숭배를 위한 축제나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공동체 삶에서 필수적이었다. 이것은 사회적 관계 유지나 유대관계 형성에 절대적으로 필수였다. 특히 상류 계층의 사회, 경제적 지위를 획득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겐 절대적이었다.

제사에 사용된 고기는 대개 세부분으로 나누어졌는데, 꼭 필요한 부분은 제단에서 태웠고, 한 부분은 제사장들의 몫으로, 나머지 한 부분은 개인이나 관리들 몫이었다. 이 중 개인들은 제사 후 남은 고기로 이웃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고 나머지는 관리들이 가게나 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전에 바쳤던 이런 잔치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거리었다. 또한 시장에서 고기를 샀을 때 그 고기가 어떤 우상이나 신전에 바쳤던 고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항상 고기를 먹을지 말지에 대해 문제거리가 됐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천지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은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을 세상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고기를 먹어야 할 지, 행여 그 음식을 먹게 되면 죄가 되는 건지, 혹 예수님을 배반하는 건 아닌지, 죄를 범하는 건지, 염려하므로 그들을 배려한다는 게 사도 바울의 입장이었다.

다시 말해 양심이 연약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들이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아예 교인들에게 제사로 갈등을 빚을 수 있으니 정가집이나 친지방문을 피하도록 권유하고 심지어는 이때에 기도원 집회를 갖기도 한다. 이는 오히려 교인과 비교인들과의 갈등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더 나아가서는 전도의 문을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비록 종교적인 갈등을 빚는다 해도 오히려 더 가족이나 친지 방문을 권고하고 이런 과정에서 끈끈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야 한다. 반면에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진보적 태도를 취하는 목회자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십계명에는 분명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신 후에는 귀신이 되어 우상숭배로 된다는 말인가. 기독교야 말로 ‘효의 종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부모에 대한 공경과 섬김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조상을 섬기는 차원에서는 우상숭배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조상이 남긴 발자취를 기억하며 추모하는 것을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설날은 모든 가족들이 모여 조상에게 감사하며 화목하고 풍성하게 지내는 날이다.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기독교단들도 설을 맞이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조상에 대한 효행의 감사한 마음을 우리 전통문화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가족 간의 융화에 앞장서는 슬기로운 기독교계의 대처가 필요한 때다. 지금도 제사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이 졸지에 ‘불효자’라는 낙인이 찍혀 가족들 사이에서도 외톨이가 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더 신앙심이 강화되고 유익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1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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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원  egis0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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