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한국닷컴 전영준 발행인]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김영삼 코스'에 접어든 박근혜”라는 칼럼을 재미있게 쓴 적이 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곤 반대 방향에서 '후보 조기 가시화론'이 나오고 있다. 주류 의원들이 박근혜 깃발로 총선을 치르자는 '박근혜 역할론'을 주장하고 나섰다.”라며 1992년 상황을 비교하며 쓴 글이다.

20년 전에 ‘노태우 코스’에 들어선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코스’에 접어든 박근혜 의원, 당시 주류를 자처하던 민정계의 좌장 역할을 하던 ‘박태준 코스’의 롤 모델인 이재오 장관. 1992년 정치지형이 다시 재현되고 있다.

‘대세론’을 앞세워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령후보로 인정받겠다는 YS,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거칠게 압박해 오는 그를 대신해 대안을 찾으려 했던 노태우, 어떻게 얻은 정권인데 색깔이 불분명한 YS에 대권을 줄 수 없다는 박태준.

결국 1992년 대선 때 여당 최대 계보였던 민정계는 마땅한 차기 주자를 세우지 못하고 YS의 민주계에 흡수당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마지못해 YS를 지원해서 정권 재창출을 이뤘다.

그러나 민정계 주류인 이종찬, 박철언 등은 탈당하여 정주영의 통일한국당에 합류하였고, 박태준은 끝까지 지지선언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박태준은 YS에게 철저한 보복을 당했다.

지난 4.27재보선이 끝나고 92년처럼 이(親李) 주류가 와해되면서 소수파인 친박(親朴)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 초 세종시 수정 문제를 놓고 대립할 무렵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관계가 험악했다.

당시 이 대통령 측근들은 "대통령이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대통령이 안 되게 막을 수는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박 전 대표 역시 대통령과 극단적으로 맞서는 모습이 여당 지지층으로부터 반감을 사면서 위기의식을 느꼈다.

세종시를 둘러싼 충돌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를 적(敵)으로 만들면 국정 운영이 순탄할 수 없다는 정치 현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려면 노무현 당시 후보자처럼 고분고분하라는 메시지를 박근혜 의원 측에 주문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세력은 조용모드로 돌아섰다. 작년 8월 이후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회담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의원 진영은 92년 모델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대세론’을 통한 압박과 불필요한 싸움을 통하여 적을 만드는 ‘이회창’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연 박근혜 의원의 92년의 YS가 될 수 있을까.
정치현실에 나타나는 현상은 비슷하지만 현미경처럼 관찰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1.박근혜 의원은 YS만큼의 정치이력을 뛰어 넘을 Showing이 없다.

당시 YS는 정치경력이 40년에다 국회 최다선이었다. ‘유신독재정권’을 실질적으로 타도한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YS가 한번은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김영삼을 미워하는 야당 및 시민단체들도 그의 대권쟁취에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민주화세력들은 김대중이 낙선 된다 해도 YS가 당선되어도 좋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심지어 야당 내에서도 DJ가 안되면 YS라도 대권을 잡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87대선에서는 야권단일화를 치열하게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싸울 때 동교동계 일부도 YS가 먼저 해야 한다할 정도로 명분이 있었다.

박 의원은 YS처럼 반대파도 인정할 만한 이력과 인품을 갖고 있을까. 국민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보여 줄 Showing은 있는가.

지금 야당에서 보내는 우호적인 발언은 제발 박근혜가 후보가 되었으면 하는 시그널뿐이다.

박근혜 지지율 유지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는 호남지역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내년 대선을 위한 정치공학에서 나온 역 선택이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박근혜가 후보가 되면 공격할 소재가 너무 많아 선거전략 수립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2. YS는 노태우에게 정치와 정책을 분리하여 대응했다.

3당 합당 후 YS는 민정계로부터 많은 견제를 당했다. 특히 박철언이는 YS가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다며 흔들어 댔다.

그때마다 YS는 정면 돌파를 통해 난국을 헤쳐나갔다.그 힘은 국민들이 지지에서 나왔다.

3당 합당 시 대다수 국민들은 다음은 YS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YS에 대한 공세는 노태우 정권의 반칙으로 생각했다.

YS는 민정계의 흔들기에 시달렸지만 노태우 정권의 정책에 관해서는 모두 지지하고 협력했다.

인천공항 건설, 고속전철 건설, 새만금 사업 등 노태우 정권에서 계획한 사업은 무조건 협조했다. 또한 민정계 사람들을 명분과 당직을 갖고 포용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박근혜 의원은 이 정권 출범부터 딴지를 걸었다. 본인에 대한 정치적 탄압도 없었는 데 공천에서 탈락한 측근들의 출마를 방치했다.

심지어는 종북좌파 민노당의 후보가 국회의원 되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 촛불집회, 용산사태, 미디어법 등 정책사항에 대해 양비론으로 일관했다.

물론 현재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때로는 정치에 간여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하는 여론이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겠지만 세종시 수정안 거부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

노무현 정권이 기득권해체를 통한 체제변혁을 위해 추진한 세종시를 국민들을 위한 과학도시로 수정하기 위한 시도를 ‘원칙과 신뢰’라는 이유로 포기하게끔 했다.

3. ‘이명박-이재오’ 관계는 ‘노태우-박태준’ 관계가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민정당 대표위원 시절 87년 6.29선언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으로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일약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이로 인해 민정당 어느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대통령 후보가 되어 그해 12월 3김씨가 모두 출마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이 12.12 쿠테타를 일으킨 혁명동지요, 민정당을 만든 공신이다. 사실상 전두환 대통령과 더불어 정권의 대주주였다.

따라서 그는 박태준,이종찬,박철언 등 측근들에게 부채의식이 있을 수 없으며 동반적 유대관계가 아닌 정치적 상하관계일 뿐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 갈 이유가 없으며 국민들의 뜻과 퇴임 후 정치적 행보를 고려하여 대권후보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차원이 다르다. 이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았고 정당의 당직도 맡아보지 못했다.

따라서 정치적 인맥을 구축할 시간도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철저하게 형 이상득 의원과 92년 국회의원 되면서 친하게 된 이재오 의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직계라고 해봐야 서울시장 재직시절 채용된 몇몇 사람인데 그들은 정치적 격동기를 같이 한 동지도 공신도 아닌 참모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대통령은 시대정신에 따라 즉 국민의 요구와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의원에 만들어진 대통령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적극적으로 YS를 지지하듯이 박 전 대표를 지지할 수 없으며 이상득, 이재오 두 의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상득 의원은 형제지간이므로 서로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나아 갈 수 있지만 지분을 갖고 있는 이재오 의원한테는 그렇지 못하다.

이재오 의원을 팽시키며 박 전 대표를 지지할 명분도 세력도 용기도 이 대통령에겐 없는 것이다.

과거엔 재벌이 돈으로 대선후보에 관여할 틈이 있었지만 지금 그럴 명분도 없고 하지도 못한다.

만약 재벌이 과거의 향수에 젖어 박 전 대표를 간접적으로 돕게 되는 상황이라도 된다면 과거의 권력과 재벌이 다시 뭉친다는 인상만 국민들에게 주게 된다.

선거후 그 후유증을 감내할 만 힘이 재벌은 없다.

결국 이 대통령은 총선 공천과정, 대선후보 선출과정 모두 방관내지는 중립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4년동안 박 전 대표의 당 조직 지지기반이 와해된 상태에서 이 대통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과연 제대로 된 총선과 대선을 치러낼 수 있을 까.

아쉬운 것은 친이계가 아니라 친박계될 형편이다. 내년 4월 전후로 박 전 대표는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4. 박근혜 의원에게는 허주 김윤환 같은 사람이 없다.

노태우 정권 시절 민정계는 이념이 아니라 이익에 따라 뭉쳤기에 YS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지만 친이계는 가치와 철학으로 뭉쳐있어 민정계처럼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국회의원 한번 더 하려는 욕심이야 있겠지만 박 전 대표에게 귀순하여 굽실거리며 까지 국회의원에 연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민정계는 박태준, 김윤환이라는 계파보스가 있었지만 자발적이 아닌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고용사장일 뿐 보스를 무시하고 개별적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었다.

허주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설득하여 의견일치를 본 상태에서 YS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동지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면서 바람 잡고 설득하여 민정계 대부분을 YS를 지지하게 하여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 공로로 당 사무총장과 대표위원을 했다.

그러나 이상득 의원, 이재오 의원이 당 대표 내지는 국무총리 욕심 때문에 총대메고 친이계들 설득하여 박근혜 의원 대통령 만드는 데 나설까.

그들의 목표는 친이계 출신 대통령 만드는 것이 목적이지 박근혜 의원 만든 데 목표가 아니다. 한 마디로 ‘못 먹어도 Go 한다’ 란 소리다.

박 전 대표를 도울 사람은 이상득 의원 정도인데 그는 대통령의 형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없으며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면 박 전 대표를 지지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되레 국민들에게 노욕이라고 비판만 받게 된다.

허주가 총대를 멜 수 있었던 것은 대다수 국민들의 성원과 노태우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개입한다면 친이계 지지하다 역풍 받는 것이 박근혜 지지하다 역풍받는 것보다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92년의 YS처럼 좋은 환경도 아니며 97년의 이회창처럼 대통령에게 대들 상황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정계에서 거론되고 있는 ‘92년 노태우-YS’니 ‘97년 YS-이회창’이니 하는 도식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절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은 독(毒)일까 약(藥)일까. 성공(成功)할까 실패(失敗)할까. 모두 아니다 좀 더 인내(忍耐)가 필요하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전영준  news@bluekoreadot.com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