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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패망이 주는 교훈은 지금의 베트남이 될 수 있다는 것김정일 집단 및 남한 내 종북세력의 목적은 베트남 식 친미공산정권을 세우는 일
전영준 | 승인 2011.04.28 00:08

[푸른한국닷컴 전영준발행인]

“결혼 이주 여성과 산업연수생 등 한국으로 이주하는 베트남인들을 위해 한국 정부가 펴낸 안내책자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오늘자 언론보도였다.

1992년 12월 22일. 총 뿌리를 겨누고 싸웠던 한국과 베트남 양국은 대사급 수교를 하였다. 그 후 양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며 양국간 경제교류가 활발하다.

미국과 베트남도 1995년 수교를 하였다. 이후 정치,경제적 교류는 물론 전면적 군사협력을 하는 관계까지 이르렀다.

베트남군의 젊은 장교 수백 명이 이르면 올해 중 미 국방부의 국제 군사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해 영어 교육과 함께 각종 군사훈련을 받을 정도다.

2011년 4월30일 월남패망 36주년이 되는 날이다. 교류가 활성화된 한국과 미국의 우호국인 베트남은 한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룬 적국이었다.

10년 가까이 치른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월남은 패망했고, 한국과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배했다.

월남패망을 통해 우리가 다시한번 기억해야 할 것은 공산당의 북한 김정일 집단이 노리는 암수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베트남 전쟁 파병을 통해 대한민국 국군 32만명이 파병되어 5천명이 전사하고 31만명이 생존 귀국하였으며, 고엽제로 2만여 명의 피해 및 화공약품 후유증으로 귀국 후 병사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암울한 기억.

외화획득 등 많은 경제적 이익으로 한국 경제의 활로를 트고, 군의 현대화와 전투 경험을 얻었다는 긍정적인 평가, 베트남 파병이 국군의 목숨을 담보로 한 미국의 용병일 뿐이었다는 부정적 시각.

베트남 전쟁은 지도층 인사들의 ‘특권과 부패’로 월남이 망했다는 우리 알고 있는 표면적 교훈과 기억 들이다.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이 바라고 있는 것은 오로지 적화통일 한가지뿐이다. 한반도에 베트남같은 국가를 건설하는 일이다.

6자회담을 하든 북, 미간 회담을 하든 아니면 남북정상회담을 하든 북한은 변하지 않는다.

북한의 김정일 이가 추구하는 목적은 한 가지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체제유지이다.

그 목적을 달성키 위해 지금까지 북한은 회담을 통한 협상, 테러, 정치공작, 간첩남파, 남한 내 추종자 육성, 국제 사회와 한국 간의 이간질, 등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 왔다.

이런 수법이 75년 월남이 패망하게된 원인이요, 모든 면에서 약했던 베트콩과 월맹이 승리했던 이유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승리했을까

첫째 ‘외세배격’을 주장하며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웠다. 승려들의 설법, 신부들의 설교가 외세인 미군을 내쫓고 자주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전국 도처를 휩쓸었다.

승려들은 반미의 ‘외세배격 자주통일’을 외치며 온몸에 기름을 끼엊고 불을 지르는 즉 소신공양(燒身供養)에 나섰다.

월남의 국민들은 스스로 소신공양을 올리면서 불타 죽어가는 승려들의 절규같은 설법을 가슴에 담고, 자유월남의 패망을 봉기했다.

둘째 월맹에 대한 포격은 동족살상이라고 호치민은 선동했다. 호치민은 승려와 신부들을 동원하여 자유월남을 수호하려는 월남군의 마음을 바꿔 놓았다.

월남군이 동족인 호치민군을 향해 총을 들지 말고, 미군을 향해 총을 들것을 선전선동한 것이다. 승려와 신부들의 선전선동으로 월남군은 무섭게 변질 되어 갔다.

호치민이 승리하여 1백만이 넘는 자유월남의 군인과 시민들이 공산군에 의해 처형되었고, 월남탈출의 ‘보트피플’에서 1백만 가까운 탈출인들이 공산군과 해적의 총에 비참하게 살해당했다.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던 호치민 일당은 1백만명의 죽은 보트피플도 1백만명의 넘는 군인과 시민들도 더 이상 ‘우리 민족’이 아니었다. 오로지 공산당에게 협조하는 자만이 ‘우리민족’이었다.

셋째 베트콩(남한 내의 친북종김과 같은 세력들)들이 교묘한 모략과 이간책으로 월남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격화시키면서 미군철수를 부르짖게 했다.

미국은 전쟁에 피로감을 느낀 호치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73년 1월 파리협정이 베트남전쟁에 마침표를 찍고 미군은 철수하며 종전을 하였다.

월남의 군사력 경제력과 국민생활 수준은 월맹을 압도했다. 미군이 남기고 간 무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월남군 화력은 세계 4위로 손꼽혔다.

그러나 종전 2년 뒤인 1975년 1월 월맹군 사단이 남베트남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석 달 뒤인 4월 30일 자유월남공화국은 월맹군과 베트콩에 항복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1년 8월 트란 득 루엉 베트남 국가주석의 방한 방문 시 "우리는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공식 사과 하였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였을 때 "우리 국민들은 마음의 빚이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이 그렇게 외쳤던 ‘자유와 민주’를 위해 참전한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왜 사과해야 하는 지 알 수 없는 망언이었다.

북한의 김정일 집단과 남한의 베트콩 집단들이 바라는 것이 한반도에 베트남식 ‘친미공산정권’을 세우는 것이라고 최후의 목표라는 것을 안다면, 남한에도 수백만명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울타리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을 모르는 국민들은 자유를 논하고 인권을 외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갖을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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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news@bluekorea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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