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헐뜯고 깎아 내려야 내 위신이 서며, 남을 끌어내리고 짓밟아야 내가 출세하는 세상에서 「사람과 다투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보통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는 반드시 인품도 고아（高雅）할 것이고, 식견도 뛰어남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람을 불행히 당대에서는 찾기 어렵고 역사상에서나 찾아볼 수 있으니 그 사람들이란 바로 조선시대 명종대의 영의정 상진（尙震）이 그 사람이며. 중국 서진시대의 완적（阮籍）과 오대（五代）시대의 풍도（馮道）가 그 사람들이다.

먼저 상진은 우연히 밭가는 소와 농부를 보고서 하찮은 미물인 소도 감정이 있음을 알고 그 뒤로는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언잖은 소리를 하지 않았으며. 완적은 기행과 술로써 시대의 가파름을 달랬는데 그는 평생 동안 남을 폄하하지 말하지 않았다 한다. 풍도는 다섯 나라 열 한명의 황제를 섬기면서도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훗날 상진은 윤원형의 무리로 지목되기도 하였으나 사람들의 신망을 잃지 않았고. 완적은 사마염의 비호를 받고 묵시적으로 동조했다는 비난을 들으나 그가 이따금씩 마차를 몰아 막다른 곳에서 대성통곡한 것을 보면 그 고뇌를 알 수 있으며. 풍도를 줏대 없는 사람으로 평하기도 하나 당시가 정변과 전란의 시대임을 감안한다면 살아남는 것의 중요성을 오히려 가르쳐 준다.

「굶어죽는 것은 작은 것이고, 정조를 잃는 것은 큰 것이다.」라는 도덕적 원리주의자 입장에서는 변절자나 처세의 달인 등으로 깎아내릴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는 심원한 정신적 기맥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옛 군자는 친구와 절교해도 악평하지 않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그 누명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는 갸륵한 인간상이 자리 잡고 있고. 남을 비난하거나 다른 사람을 재단하는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며, 「천명은 이동」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를 준열하고도 통렬하게 바라보는 사마광이나 송시열의 관점에서는 그들은 권신이나 권간이다. 그러나 표현의 욕구를 더구나 무수한 곡해와 오해를 참을 수 있고 모든 일에 개인의 호 불호를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보통 이상의 수양이 없고서는 어림없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길에서 탄탄대로이든 진창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열린 마음과 남의 불행으로보다는 나의 장점으로 살겠다는 反네거티브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거기에다 사마광이나 송시열의 비난을 비껴갈 뿐 아니라 도리어 무색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 죽을 때까지 청렴한 정신과 어진 마음을 잃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 부끄러울 사람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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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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