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일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세대별유니온은 진보적 노동계의 돌파구!

노년유니온과 함께 설립신고에 나선 청년유니온이 고용노동부로부터 4차례나 설립신고를 반려당한 사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부가 노동부이기를 포기한 채 고용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속내 역시 이해할 만하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난 2010년 3월 청년유니온창립 이후 4차례에 걸친 설립 신고서를 심사해온 노동부가 신고서를 반려한 이유로 가입대상 노조원으로 구직 중인 청년층이나 실업자 등을 대거 포함시킨 점을 들고 있다. 노동부가 청년유니온이 제출한 노조설립 신고서에 등록된 전체 조합원 80명의 근로자 여부를 분석해보니 특정 사업장에 소속된 실제 근로자는 12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지위 향상'이나 '취업준비생과 실업상태 청년 노동자의 조직화' 등의 문구를 포함한 노조 강령이 노조법상 노조 결격요건 중 하나인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조 설립의 기본 목적인 근로자의 근로조건 유지나 개선과 관련된 문구가 강령과 규약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노조 설립 목적과 대상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를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부의 설립신고서 반려에 대해 당사자들이나 후원세력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세대별 노조가 정치적 조합주의를 앞세우고 있다는 노동부의 입장은 지나치게 노동조합을 개량주의적 시각으로 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청년들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지위 향상이라는 표현이 정치적이라면 그런 문구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노동조합이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두가 그렇다면 모두가 안 그렇다는 얘기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노동부가 '취업준비생과 실업상태 청년 노동자의 조직화'라는 좀 더 심각한 부분을 추가시켜 청년유니온이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로 해석한 듯하지만, 노동계의 시각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보수 우파적 시각이나 친기업적 입장에서, 그리고 청년운동에 대해 사시로 바라보는 기성세대 입장에서 보자면 생각하지 못할 수준도 아니지만 그렇게 정치적 조합주의라는 무리한 잣대를 써서 제도권 밖으로 내몬 청년유니온이 과연 정부나 보수우파 어르신들의 생각대로 물거품이 되어 줄지 잘 모르겠다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다만, 유신정권이나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던 ‘추억의 법외노조’라는 이름으로 긴 생명력을 이어가면서 필요 이상의 스포트 라인을 받으면서 노동운동의 또 다른 발화점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뿐”이라는 악어의 눈물과도 같은, 충고 같은 경고가 노동계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조합주의라는 노동부의 판단은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들 양대 노조가 노조라는 명칭 대신 유니온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노정간에는 물론 노동계 내에서도 보혁갈등의 단초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유니온(　　Union)은 통상 노조로도 병기되지만 조합·협회·연합 등의 다양한 뜻으로 번역되는 그 뜻이 더 다양하고 넓은 말이다. 청년유니온과 노년유니온은 노조 명칭 대신 해석의 여지가 큰 유니온이라는 이름을 활용하고 있는데, 사실 그 미묘한 어감 사이에 현재 한국사회 노조운동이 직면한 위기가 투영돼 있다는 점을 진보적 노동계 역시 부인하지 않는다.

양대 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노동은 97년 외환위기를 결정적 분기점으로 정규직 중심의 경제적 이해와 요구를 지키는 데 발목이 잡혀 더 열악한 노동자계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전체 노동계급을 포괄하고 대표하는 대중조직이라면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차별과 고용불안, 실업의 고통에 시달리는 900만명을 넘는 비정규 노동자와 수많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복잡다단한 문제해결을 전면에 내걸고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마땅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진보적 노동계의 자성의 목소리가 투영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55세 이상이 가입 대상이며 현재 실업 상태인 구직자와 정부의 일자리 사업 참가자 등이 가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노년유니온이나 15~39세 청년을 가입 대상으로 하며 기존 기업별, 산업별 노조에서 소외된 아르바이트생, 인턴, 청년실업자, 취업준비생 등 이른바 '88만원 세대'가 가입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청년 유니온은 특정 사용자와의 단체교섭보다는 정부와의 '사회적 교섭'을 통해 직접 요구사항을 전달할 계획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조 아닌 노조로서의 연대를 연상케 하는 또 다른 형태의 노조 아닌 노조가 바로 유니온인 셈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10월 4일자 매일노동뉴스 기고문에서 기존노조 울타리 바깥의 새로운 주체들이 유니온이란 이름 아래 나타난 건 노동운동사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사회에서 기존노조의 핵심 주체인 대공장-정규직-남성노동자 중심의 활동을 어떻게 혁신하고 극복할 것인지 하는 묵은 과제를 두고 여러 뜻 있는 시도가 있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로 빈곤이 극단적인 생활고와 정신적 피폐로 이어져 끝내 자살로 마감되기도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얽매여 있는 계급계층의 문제를 기존 노조운동의 논리와 활동방식으로는 개선하거나 해결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피해당사자가 중심에 서는 노동자운동의 의미가 각별해졌다. 이제 한국자본주의의 근본모순으로서 역사발전의 엔진 역할을 해 온 노동-자본 간 계급투쟁의 한 당사자가 무력해져 희화화된 21세기 노동운동의 부활을 위해선 새로운 주체가 필요하게 됐다”면서 유니언운동은 바로 이런 시대 배경과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2010년 3월13일 창립된 청년유니온, 2012년 9월24일 창립된 노년유니온에 이어 예술인소셜유니온이 10월17일 준비위원회 발족을 앞둔 상태다. 이 소장에 따르면 진보적 노동계에서는 이러한 유니온 운동에 대해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당사자이기도 한 청년과 노년층, 그리고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문화예술인 등 신자유주의의 최대 희생양인 당사자들이 유니온을 자신의 무기로 들고 사회적 투쟁을 시작함으로써 침체에 빠진 노동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자평하는 것 같다. 유니온운동이 구세주는 아니지만 사회적 연대의 새로운 지평을 연 희망버스처럼 사회적 노조운동과 노동자 조직화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며, 새로운 노동자계급운동 주체를 낳는 산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굳이 연대하여 노조설립신고를 한 청년유니온과 노년유니온이 정부를 협상 상대로 지목한 것이나 대선기간 중 공동으로 각 후보들의 노인·청년 정책을 검증하는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는 점이나 정치적 조합주의에 기초한 사고로 해석될 소지가 커 보인다. 1-20대, 그리고 5-60대를 ‘루저’로 만들고 있는 사회도 문제지만, 당사자가 나서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자각을 문제 삼는 것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법원판결에서도 인정됐듯 노동부가 청년유니온을 주로 정치적 목적을 위한 조직이라고 본 것은 과민반응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 학원비 등 20대 어깨를 짓누르는 취업 사교육비 짐을 덜어보자는 취지에서 올해 40여개 시민단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취업사교육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청년유니온이나 현재 65세 이상 노인 70%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을 노인 전체에게 확대할 것과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을 완화해 현재 15만~20만명 수준인 장기요양보험 혜택 대상자를 60만명 수준으로 확대해줄 것과 현재 7개월인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 기간을 12개월로 늘려줄 것을 요구하는 노년유니온의 돈키호테식 발상은 그냥 참신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2일 세대를 넘어 만난 노년유니온과 청년유니온의 만남에 대해 한 진보적 노동운동가는 무한경쟁·약육강식·유전무죄·승자독식이 판치는 정글자본주의 한국사회의 밑바닥에서 그간 유령처럼 무시당하면서 희생을 감내해 온 이들이 “여기 사람이 있다”, “노인과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달라”, “노조를 만들어 합법적으로 활동할 기본적 권리를 달라”고 우이독경인 고용노동부에게 촉구하고 호소했다고 평가한 뒤, 가장 중요한 노동기본권마저 묵살한 채 직무유기를 일삼고 있는 노동부의 행태를 규탄하면서 ‘왜 노조가 아니고 유니온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 하나를 던지게 된다면서 희망버스와 함께 유니온운동을 주목해야 되는 이유라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진보적 노동계의 관점이 역으로 청년유니온이나 노년유니온이 화물연대처럼 노조 아닌 노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이 뚜렷한 사용자가 없이 모든 요구의 해소대상을 정부로 삼고 있는 한 결국은 국민의 주머니를 열어달라는 얘기라는 점에서 청소년 문제를 부모에게, 노년층의 문제를 자식들에게 요구하는 세대간 갈등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고, 청소년층과 노년층이 세대를 넘어 만나는 동안 그들 사이에 낀 세대는 말할 자격도 없고 할 말도 없는 방관자로 남은 채 그냥 부담만 하라는 식으로 들리거나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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