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 2008년 11월 발간한 자서전 <동행>에서 재야 인권운동가 고(故) 계훈제 씨와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 만나기 전 한때 재야인사 고(故) 계훈제 씨와 결혼할 생각을 했다는 뒷얘기 등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가 폐결핵에 걸렸고 고민하다 결국 미국 유학을 결정했지만 죄책감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100%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늦은 감이 있는 이희호 여사의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고(故) 계훈제 씨와 이희호 여사의 러브스토리는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회자되어 왔으나 공개적으로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내용을 보면 고(故) 계훈제 씨와의 헤어짐에 대한 이유와 시기만 나왔지 만남의 동기와 일자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자서전에는 대학 졸업 무렵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학생위원장이었던 고(故) 계훈제 씨를 소개받았다고 이희호 여사는 밝혔다. 그러나 이화여전 졸업 때인지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때인지는 불명확하다.

前 영부인 이희호 여사는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제 치하에서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입학하여 1950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의 렘버스대 사회학과와 스카릿대 사회학과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였다. 이화여대 강사,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1962년에 40세의 나이로 김대중과 결혼하였다.

결혼 당시에 김대중에게는 전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김홍일과 김홍업이 있었고, 결혼 후에 김대중과의 사이에서 김홍걸(1963년)을 낳았다.

고(故) 계훈제 씨는 1921년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태어났다. 1943년 경성제국대학 1학년 재학 중 일제의 학병 징집을 거부하다가 일본 헌병에 붙잡혀 지원병 훈련소로 압송된 뒤, 평양 인근의 채석장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민족해방협동단에 가입해 항일 활동을 하였다.

▲ 사진@네이버지식in캡처

이상이 네이버에 소개된 두 분의 이력이다. 네이버에서도 두 분은 '사셨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두 분의 경력을 보면 대충 언제쯤 만났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이희호 여사는 일제치하에서 이화여전을 다녔다. 또한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46년 서울대에 다시 입학을 했다.

고(故) 계훈제 씨는 8·15광복 후에는 김구(金九) 밑에서 신탁통치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 김구의 남북협상을 지지하였고,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학생회장 때에는 국립대학案 반대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두 분의 만남은 멀리는 고(故) 계훈제 씨가 1943년 경성제국대에 재학하고 있을 당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전에 재학 중에 만남이 이루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두 분의 이력을 보면 열혈사랑을 하게 된 것은 8.15해방 후 45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자서전에 고(故) 계훈제 씨가 서울대 문리대 학생위원장 시절에 만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故) 계훈제 씨의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학생회장 시절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다시 서울대에 입학했다. 이화여전까지 졸업한 분이 왜 다시 서울대에 다시 입학했을까.

아마 사귀던 고(故) 계훈제 씨의 권면내지는 흠모하는 그를 따라 더 공부하고 싶었던 이희호 여사의 열정 등이 합쳐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 있다.

고(故) 계훈제 씨는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을 전공했고, 이희호 여사는 문리대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희호 여사가 졸업 후 54년에 유학길에 올라 미국의 렘버스대 사회학과와 스카릿대 사회학과에서 대학원 공부를 한 것을 보면 정치사회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 분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 이희호여사가 학창시절 김구 선생을 방문하여 찍은 사진. 앞 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희호 여사 사진@김대중도서관방문블로그캡처

또 두 분은 공통적으로 김구선생을 존경했으며, 신탁통치반대 운동을 하였고 김구의 남북협상을 지지했다. 김대중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희호 여사의 김구 선생과 찍은 사진이 증명된다.

이희호 여사의 사랑관은 아마도 남녀 간의 뜨거운 애정보다는 동지적 결합을 중시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가 고백한 두 번의 사랑은 모두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희호 여사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자서전에서 '그에게 정치는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고(故) 계훈제씨와 이희호 여사의 뜨거운 사랑도 남녀 간의 애로스 사랑보다는 정치적, 동지적 사랑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유추해 볼 수 있는 예가 두 분 다 김구 선생을 존경하고 따랐으며 신탁통치반대를 했고 남북협상을 지지했다는 공통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분의 사랑을 이어 줄 끈이 없어졌다. 그 끈은 김구선생이었는데 김구 선생이 49년6월 안두희에 의해 암살되었다.

고(故) 계훈제 씨와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에는 한국전쟁 부산 피난시절 계훈제 선생과 결혼할 뻔 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김구라는 끈과 남북통일이란 꿈을 잃어버린 그는 계훈제 씨가 더 이상 정치적, 동반자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이 든다.

꿈을 잃어버린 이희호 여사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사랑과 공부의 선택의 기로에서 아픈 고(故) 계훈제 씨를 를 두고 유학길에 오른다.

이 세상에서 다시 새로운 꿈을 만들어야 했다. 이희호 여사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란 꿈을 새로 만들었다.

그는 유학을 마치고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하는 등 소망한대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강지처인 고(故) 차용애 여사와 1960년 사별하였다. 2년 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여사는 1962년, 5월10일 서울 종로구 체부동 이희호여사 외삼촌댁의 넓은 한옥 대청에서 조향록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두 분의 결혼은 사회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정일형. 이태영 박사 부부의 중매로 결실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처음 만남은 아니었다. 6.25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이희호 여사의 1992년 발간한 자서전 <나의 사랑 나의 조국>에도 나와 있듯 김대중과 이희호의 만남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스릴이 넘치는 인연이었다.

아래는 1951년 처음 만남에서부터 1961년 자연스럽게 사귀기까지에서 발췌한 글이다.

“그와의 처음 만남은, 1951년 부산 피난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새로이 결성된 대한여자청년단 외교국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청년단 간부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김정례의 소개로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면우회’가 한달에 한번씩 모이고 있었는데 그도 그 일원으로 들어 왔다. 면우회는 처음 시작할 때는 33명 회원이었는데 6·25후 흩어지고 줄어서 부산에서는 약 20명이 모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강영훈 전 총리도 그 일원이었다.”

“내가 유학에서 돌아온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 동안 우리들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지내던 터였다. 그는 1959년,8월 부인과 사별했고, 나는 그해 9월 멕시코에서 열리는 YWCA 세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한국을 다시 떠났다. 미국에서 3개월 동안 미국 YWCA 두 곳을 연구 관찰하고 세계 각 나라 YWCA 방문후 1960년,2월 귀국했다. 1961년 늦가을이었을까, 초겨울이었을까, 그 때 쯤에 그와의 자연스런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것을 인연이라고 하는 것일까, 신의 섭리라고 하는 것일까.”

처음 만났을 때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부남이었지만 다시 만났을 때는 부인과 사별한 홀아비였다.

결국 두 분의 결혼은 정일형.이태형 박사의 중매로 결혼한 것이 아니라 길가에서 우연한 재회를 통해 인연이 만들어졌다.

하여튼 불타는 사랑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희호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꿈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자서전에 결혼동기를 '그에게 정치는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이희호 여사는 지난 날 MBC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출연해 김미화씨가 '천안함 등 최근 남북 정세'를 묻자 "기가 막힌다"며 "북한에 대해서 강경조치를 하고 있고 북한도 마찬가지다. 통일의 길은 너무 멀어지고 문이 막혀가고 있다.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희호 여사는 지난 10년 간 쌓은 남북 교류 성과의 훼손에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오랜만에 같이 만나고 통일의 길을 열었다. 평화가 이뤄지고 남북이 왕래도 하고 금강산 관광도 하고 가족들이 만남도 가졌다"면서 "오늘에 와서는 이것이무너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상반된 살아온 환경, 사회운동과 정치로 세상의 변혁을 꿈 꾼 다른 성향 이질적인 만남이었다.

그러나 꿈을 이루고자하는 ‘정치’와 사랑에 실패한 ‘연민’이라는 공통점이 그들을 동질적으로 만들었다.

민주주의 가치를 신봉하는 대의가 같았다는 점에서 동지였고, 이질적인 면들을 회피하지 않고 조화롭게 헤쳐 나갔기 때문에 서로 존경과 존중하며, 마침내 꿈을 이루고 해로(偕老) 했던 것이다.

이희호 여사가 존경했던 김구, 한동안 같이 살았던 계훈제, 40여년 동고동락했던 김대중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통일’이었다.

그것은 이 여사의 학창시절부터 지녀온 꿈이기도 하였다. 그 꿈을 3명의 남성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김구가 바랬던 ‘신탁통치 반대, 남북협상’은 이 여사의 생각이었고 계훈제와 김대중의 ‘민주화’는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수단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계훈제 씨는 김대중 씨와 같이 70년대 유신 독재 타도를 외치며 민주화 운동을 하였다. 정치적으로 김대중 씨를 지지했으며 그가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병마와 싸우다 1999년 3월 14일 별세했다. 그가 죽었을 때 꼭 왔어야 할 사람들이 안 왔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부부 눈치 보느라 그랬을까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이었다.

김대중 씨를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한 동지 계훈제 씨가 서울대병원에서 쓸쓸히 목숨을 거두었을 때 김 전 대통령 부부는 화분하나 안 보냈다.

왜 그랬을까. 연적(戀敵)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과거사가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을까
 

“문상을 오고 안 오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도권에 들어간 뒤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 재야경력을 출세 배경으로 삼는 정치인의 조문은 사양합니다. 이 말 좀 꼭 써주십시오.” 99년3월14일 밤 서울 종로구 연지동 서울대학병원 계훈제(桂勳梯) 선생의 빈소를 지키고 있던 한 빈민운동가의 울분 섞인 토로였다. 평생 동안 민주화를 향한 형극(荊棘)의 길을 걸어온 고인은 말이 없지만 남겨진 이들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고인의 외로운 투병을 1년 가까이 지켜본 사람들은 이날 빈소를 찾아오지 않는 옛 동지들에 대한 섭섭함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80년 내란음모사건에 선생님과 연루됐던 정치인은 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말이 나왔는가 하면 특정인을 겨냥한 비난도 이어졌다. 87년 국민운동본부와 민통련 등에서 고인을 따라온 국민회의 J의원 등 여권에 몸담고 있는 ‘재야 후배’들은 특히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들의 얘기를 ‘출세한’ 옛 동지들에 대한 질투와 험담이라고만 지나치기는 힘들었다. <경향신문> 1999년 3월 14일자 기사 중에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진실도 사망 전후 밝혀졌다. ‘전 부인 차용애 여사의 죽음의 동기, 몇 년 전 월간지가 보도한 혼외자식 ’ 문제 모두가 진실로 밝혀졌다.

일반인들이라면 덮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지만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은 거짓이 없어야 한다. 조선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야사(野史)를 민주주의 시대인 지금은 정사(正史)로 돌려놓아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죽을 때까지 딸아이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본처의 딸 박재옥 씨는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제대로 ‘아버지’를 불러보지도 못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달 친자확인소송에서 패소한 1심 결과에 불복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항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식으로 인정하겠다는 것과 같다.

약속 안 지킨 적은 있지만 거짓말 한 적은 없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이제 이희호 여사도 모든 것을 밝혀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제시대, 8.15해방, 6.25전쟁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산 사람들은 완벽한 삶을 살 수 없었다.

전쟁을 통한 사별(死別), 이별(離別), 이로 인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그 시대에 새로운 만남이 불미스러운 죄가 될 수 없다.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덕목은 ‘고도의 지적 능력, 높은 도덕적 깨끗함’이 아니라 일반인들과는 다른 ‘솔직함과 투명함’이다.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솔직해야 한다.

당사자가 죽으면 한 줌의 흙속에 명예로만 남는 것, 회자정리(會者定離) 속에 얻은 열매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제대로 불러 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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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준  news@bluekorea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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