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중 리얼콘 칼럼니스트]

(창작 무협소설:절치부심)

금일은 전체 무림인들을 총괄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청와성(靑瓦城) 접수를 위한 선발전 격인 '무림(武林) 왕중왕전'이 열리는 날이다.

5년마다 치루는 왕중왕전의 지난 대회 우승자 백야검은 상석(上席)에 앉아 자신과 혈투를 벌였던 금화접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금화접의 철퇴에 연타를 허용해 피를 철철 흘리며 황천길 입구까지 갔던 쓰린 기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금화접의 내공은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당시 여러 강자를 곤죽으로 만든 것도 우승자인 백야검이 아닌 금화접이였다.

이유인즉슨 당시 왕중왕에 유력한 후보는 금화접이란 게 강호의 상식이였으므로 출전 무림인들은 죽기살기로 금화접에게 달려들었고 그녀 또한 왕중왕이라는 목표를 위해 피눈물을 쏟았던 지난날을 회고하며 사력을 다했기에 무리지어 덤비는 강적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기력(氣力)을 소진해 예상대로 왕중왕 자리를 놓고 겨룰 백야검에게 사용할 필살기인 '철마탄(鐵魔彈)'의 위력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급락했다는 사실이다.

이 철마탄은 금화접의 주무기인 철퇴가 순식간에 호두만하게 작아져 상대의 가슴을 강타해 기절 내지는 급사(急死)까지 다다르게 하는 신공으로 최후의 일격에만 사용해야할 정도로 극진한 체력 소모를 필요로 했다.사투를 벌여 땀으로 범벅이 된 금화접은 악조건을 딛고 체력 소진이 거의 없었던 백야검까지 몰아부치며 철마탄으로 변신한 철퇴를 두 손에서 떠나보내면 모든 것이 끝나는 기회를 잡고 있었다.

헌데,하늘은 백야검을 돕는 것일까?회심의 일격을 가하려던 금화접이 난데없는 벼락 소리에 시선을 뺏긴 틈을 타 노련한 백야검은 발목에 감춘 단도를 던져 왼쪽 허벅지에 명중시킨 뒤 중심을 잃은 금화접을 이단옆차기로 목덜미를 가격해 혼절한 그녀 대신 왕관의 주인공이 됐다.

금화접 입장에선 너무도 허망한 패배였고,백야검에겐 천우신조(天佑神助)라는 단어 이외는 설명할 수 없는 신승(辛勝)이였다.

백야검은 5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평소와 달리 파르르 떨고 있는 입술이 이를 증명했다.한편 금화접 역시 그때의 악몽을 상기하며 절치부심(切齒腐心) 오늘을 기다렸다!귀족 출신인 그녀가 독신까지 고집하며 강호에 뛰어든 이유는 비명횡사한 부모님의 원한을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금화접은 뼈를 깍는 고통을 견디며 수련에 임했고 승리를 눈앞에 뒀었다.헌데 중원(中原)의 왕중왕으로 공인받을 수 있는 한 방을 남겨둔 찰라에 변방 격인 서역 출신의 백야검에게 반격을 당했으니 5년의 시간이 50년과 다름 없었을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왼쪽 어깨에 필승(必勝)이라는 문신까지 새기고 나온 금화접은 다른 선수들의 면면을 살피며 분신과도 같은 철퇴를 점검하고 있었다.

한편 가장 늦게 출전을 통보한 중부권의 맹주 화검성은 주무기인 쌍칼의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자신의 영지인 화성(華城)소속 무림인들의 거한 환송식을 떠올렸다.

특히 이번 왕중왕전의 강력한 우승 후보 금화접을 노려보며 "역전패의 아픔을 되새겨 주겠노라"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반면 화검성의 출전 목적은 왕중왕에도 있었으나 차기 대회를 염두한 경험 축적이라는 포석도 깔려 있었다.이유는 남부 무림인들의 기대주이자 이번 대회의 복병(伏兵)인 백호성이 출전했기 때문이다.

그간 소문으로만 접하던 백호성은 부리부리한 눈매와 8척 장신에 예전 관운장의 주무기였던 청룡언월도와 흡사한 흑룡도(黑龍刀)를 쥐고 있었다.위풍당당한 체격도 체격이지만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는 주변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물론 그를 주시하던 화검성 또한 내심 놀라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그 밖에 서부 무림인의 대표 상록성과 활쏘기에 능한 청림 또한 단상을 주시하면서도 한 치 양보 없는 탐색전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규정은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기권을 하거나 혼절 등으로 더는 결투를 지속할 수 없을 때까지 벌이는 약육강식으로 5인이 한꺼번에 서로를 물고 무는 승자독식이였다.전 대회 우승자인 백야검은 "건투,건승을 빈다"라는 짧은 한마디를 건네며 피비릿내나는 왕중왕전의 서막을 알렸다.

바로 그때였다!개전을 알리는 나발 소리가 나자마자 화검성은 노려보던 백호성을 뒤로 하고 금화접에게 쌍칼을 휘두르며 신형을 날렸다.합장을 하고 목례(目禮)를 한 뒤 공격하던 관행를 생략한 화검성에 기습에 금화접은 놀라면서도 부아가 치밀어 철퇴를 재빨리 꺼내 공중부양을 시도했다.

헌데 이 찰라의 순간 백호성 또한 흑룡도를 휘두르며 금화접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으니 그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후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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