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중 리얼콘 칼럼니스트]

난 영화 매니아다.지금이야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로 한 달에 한 편 관람도 어렵지만 영화에 빠져있을 땐 일주일에 한 편은 기본이였다.그것도 다운로드가 아닌 극장에서 본 영화만 산출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난 영화를 '극장 영화'와 '다운로드 영화'로 구분해 부른다.혹자는 "너무 극장 영화만 편애하는 것 아니냐?"며 핀잔을 줄 수 있으나 "좋은 영화를 원한다면 제값을 주고 극장에서 보는 게 정답"이라는 내 신조로 답을 대신하곤 한다.물론 다운로드 영화도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면 하등의 상관이 없겠지만 상당수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렇듯 극장 영화 예찬론자가 손가락으로 셀 만큼 발길이 뜸한 사이 공간과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드라마가 빈자릴 대신하고 있다.

특히 TV 드라마는 본방을 놓쳤을 때 영화와 달리 출퇴근길 스마트폰을 통해 작지만 생생한 화면까지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사실 영화도 내가 즐기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다운로드 받아 감상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특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욕심이 있는 직장인은 더더욱 그러하다.

각설(却說)하고 요사이 내 마음을 격동시킨 드라마는 다름 아닌 '추적자'다.극의 줄거리를 대략 소개하면 강력계 형사인 손현주가 자신의 외동딸을 뺑소니로 잃게 만든 진범인 김상중과 김성령 부부를 잡기위해 탈출을 감행 고군분투(孤軍奮鬪)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지만 아직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한 회를 못 보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이나믹한 줄거리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더욱이 자신의 사위인 김상중과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오그룹 회장역인 박근형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인사사고를 낸 김성령과 기사회생한 딸을 약물 교사(敎唆)시킨 김상중의 죄를 밝히기 위한 손현주의 분전이 큰 줄기지만,사위이자 맞수인 김상중과 박근형의 대결이 더 큰 흥미를 유발시키는 게 사실이다.고향이 정읍임에도 경상도 사투리를 감칠맛나게 하는 박근형의 연기는 비전문가인 시청자가 보기에도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난 과거 영화 리뷰를 쓰며 이 말을 여러차례 언급한 적이 있다."화를 내거나 우는 연기는 어렵다"허나,"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희노애락을 표출하는 연기는 더 어렵다"고 말이다.지금 추적자가 후발주자였지만 강력한 라이벌이였던 '빛과 그림자'(종영)를 맹추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주인공들의 절제된 연기 때문이다.

박근형 뿐아니라 김상중 또한 화를 거의 내지 않는 냉혈한(冷血漢)역을 소름끼치게 소화하고 있다.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배역과 스토리를 관록의 배우 박근형은 거부했고,김상중은 차단했다.그 둘이 만약 부자지간이였다면 부전자전의 전형인 셈이다.

물론 주인공 손현주의 연기도 일품이다.손현주에게 무슨 수사(脩辭)가 필요하겠나?故 최진실과 열연한 '장미빛 인생'의 여운이 아직도 남은 내가 손현주라는 배우를 홀대할 이유가 없다.그도 천상 배우이다!다만 그는 주인공이고 내가 극찬하고자 하는 박근형과의 대결구도가 아니므로 제외시킨 것이다.나도 손현주 열성팬임을 밝혀둔다.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내가 박근형을 좋아하는 이유는 연기도 그렇지만 나의 선친(先親)과 닮아서도 그러하다.약간 호리호리한 몸매나 콧날도 그렇지만 꼭 집을 수 없는 외향 또한 흡사하다.지금 나의 곁에 안 계셔서일까? 난 박근형을 보며 선친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최불암에게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접하며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의 아내도 장인어른과 박근형이 닮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내가 보기엔 나의 선친과 훨씬 더 닮았는데 집사람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게 인정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닐 뿐더러 이 자리에서 더 왈가왈부 일도 아니지만,내 지인의 상다수도 박근형과 자신들의 부친을 흡사하게 인식한다는 점은 우연이라 하기엔 묘한 구석이 있다.

아니 대다수 배우들의 멘토라는 이순재나 국민 아버지 최불암도 있는데 왜 박근형이 지인들의 닮은 아버지가 됐을까?이 부분을 난 이렇게 본다!박근형은 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아버지 역할을 했다.또 이 영화는 당시 국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3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대박을 쳤다.

현재 40대 이상은 이 영화를 어려웠던 시절의 자화상을 그린 명작으로 기억하고 있고,지금 다시 본다해도 박근형의 모습은 당시 일상에 지친 자신들의 아버지와 다를 게 없다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니 "내 부친과 닮았다"는 얘기가 나올 법한 것이다.게다가 박근형은 미남이지만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들의 친근한 외모와 선을 지닌 점도 부친과 닮았다고 느끼게 한 원동력이다.

흔히 배우의 롤모델은 이순재고,국민 아버지는 최불암이라고들 한다.맞다!최불암은 전원일기부터 공인된 국민 아버지다!다만 최불암이 농촌 지역을 대표한 푸근한 아버지 상(象)이라면,박근형은 도시 서민들의 삶을 대변한 친근한 아버지 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과거 가족을 위해 중동으로 외화벌이를 떠나던 우리 아버지들처럼 말이다.

대작(大作) 한 편은 돈을 쏟아 부으면 나오겠지만 '국민 아버지'라는 수식어는 오랜 경륜이 결집돼야 가능한 것이다.젊고 싱싱한 배우들의 패기도 좋지만 주름진 노장의 연륜 또한 우리가 놓쳐선 안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추적자라는 드라마에 내가 열광하는 이유도 과잉 공급되고 있는 패기 대신 연륜을 느끼게 해줬다고 보면 틀림 없다.

부친과 닮은 연기자'에 빛나는 명(名) 배우 박근형을 오래도록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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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중  blog.chosun.com/jhj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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