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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국은 한반도 분단의 원흉인가
양동안 | 승인 2012.03.14 15:40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현대사상연구회 회장]

미국이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 미국이 38번을 획정했으며, 미국이 남한을 식민지화·군사기지화 하려했고, 처음부터 남한에 분단정권을 수립하려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활동을 전개할 미군과 소련군간의 군사분계선으로 38선을 책정한 것은 이론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38선을 책정한 사실이 곧 한반도 분단에 대한 미국의 책임으로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선 38선의 획정만 하더라도 미국의 일방적 선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 합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45년 8월 당시 만일 소련이 38선을 미·소간의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하는 데 반대했더라면 38선은 양측 간의 군사분계선으로 회정될 수 없었다.

소련은 38선 문제에 대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동의했었다. 따라서 만일 38선의 책정이 한반도 분단의 원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의 책임이 아니라 미·소의 공동책임이 되는 것이다.

한편, 여러 나라의 예를 볼 때 군사분계선이 곧 국토의 분단선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군사분계선이 어떤 나라의 국토에서 활동하는 외국군대간의 군사활동 분계선만 멈추고 거주민들의 생활이나 정치활동의 분리선으로 변질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것이 국토분단을 초래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은 2차대전 종전 직후 서독지역의 미·소·영·불 군대간의 군사분계선이 그 지역의 국토분단을 초래하지 않았으며, 90년대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되었던 여러 나라들에서 유엔군으로 참여한 각국 군대간의 군사분계선이 국토분단을 초래하지 않았던 사실에 의해 충분히 입증된다.

군사분계선이 국토분단을 초래하는 것은 군사활동을 하는 외국군대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자기들의 관할 하에 있는 지역과 여타 지역 간의 교통·통신망을 단전시키고 그 지여 주민의 생활방식을 여타지역 주민의 생활방식과 상이하게 만들 경우에 한정된다.

해방 직후 남한지역을 점령한 미국은 38선을 순수한 군사분계선으로 유지하려 했던 데 반해 소련군은 북한지역을 점령하자마자 38선을 통치분계선으로 변질시켰다. 소련군은 북한지역을 점령하자마자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한지역과의 교통·통신을 단절하여 남북주민들 간의 자유로운 통신·통행을 금지했다.

소련군은 이어 김일성을 앞세워 북한지역에서 토지개혁·산업국유화·교육개혁·주민사상개조운동 등을 실시하여 북한주민의 생활방식을 남한주민의 생활방식과 완전히 다르게 변질시켰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미소공동위원회를 비롯하여 몇 차례에 걸쳐 38선을 경계로 단절된 남북한 간의 교통·통신을 회복하고 남북한 주민간의 자유왕래와 자유로운 상거래 등을 회복할 것을 소련군에게 제의했으나 소련군은 일체 응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기준으로 할 때, 한반도 분단을 초래한 책임은 38선이란 군사분계선을 제안한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분계선으로 설정된 38선을 통치분계선으로 변질시킨 소련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미국이 남한지역을 식민지화 군사기지화 하려 했고, 처음부터 남한지역에 분단정권을 수립하려 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45년부터 48년까지의 기간 중 미국의 한반도정책 및 남한에 대한 정책을 분석해 보면 어느 구석에도 남한을 식민지화·군사기지화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없다.

미국은 처음부터 남한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미국은 남한을 미군을 주둔시켜야 할 전략적 가지가 없는 지역이며 극동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남한주둔 미군은 군사적 부담이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처음엔 소련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는 것을 저지하려 했고, 그것이 저지된 다음에는 한반도 전체가 소련의 위성국이 되는 것을 방지하려고만 했다.

미국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한반도에 좌우연립 통일정부가 수립되고 나면 남한지역에서 조속히 군대를 철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전략적 가지가 없는 남한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막대한 주둔비를 지출하는 것을 헛돈 쓰는 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정부 구성이 불가능해지자 헛돈을 더 이상 쓰지 않기 위해 서둘러 남한에 정부를 수립해놓고 남한 주둔 미군을 조속히 철수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실은 48년 8월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대한민국정부와 국회 주한미군의 주둔 지속을 간곡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서둘러 미군을 철수한 사실에서 잘 확인된다.

미국이 남한을 식민지로 만들고 군사기지로 만들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남한에 미군을 가능한 한 오래 주둔시키려 했어야 하는데 미국은 정반대로 남한정부가 미군을 좀더 오래 주둔해 달라고 간정하는 것을 뿌리치고 서둘러 철수해 갔던 것이다.

미국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9월 15일부터 주한미군 철수를 비밀리에 개시하여 49년 6월 29일 군사고문단 5백명만을 남기고 철수를 완료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재빨리 이루어진 주한미군의 철수는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게 만든 것이 주한미군을 ‘품위 있게 철수’하려는 데 주목적을 둔 것이었음을 말해 주는 동시에 당시 미국이 장차 남한이 공산화되더라도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47년 2월 남한에 향후 3년간에 걸쳐 6억 달러의 경제원조를 투입하여 남한의 경제건설 및 행정체계 강화를 이룩한 다음 미군은 철수해야 남한의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진단했으면서도 그러한 사전조치들을 취하지 않은 채 주한미군만 재빨리 철수해갔다는 것은 미국이 적어도 당시에 남한이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은 50년 1월에 애치슨(Dean Acheson)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극동지역 전초방어선을 공표하면서 남한을 제외시킨 데서도 확인된다.

미국은 또 47년 여름까지는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저지해 왔다. 미국은 북한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단독정권이 수립된 후에도 남한지역에서 민족의 자율역량에 의해 단독정권을 수립하려는 움직임을 억압했다.

미국은 민족의 자율역량에 의한 남한지역 단독정권을 수립하려는 이승만과 김구를 정계에서 퇴출시키고 이승만과 김구에 대항할 수 있고 공산당에 대해 타협적인 입장을 취하는 중도파세력을 육성·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 좌우합작운동, 조미위원회, 과도입법의원 등이 모두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개된 것이다.

미 군정은 47년 4월에도 이상만의 정부수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그를 연금하기까지 했었다. 미국이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적극적인 태도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한반도 통일정부 수립에 우익진영을 전면 배제하려는 소련의 주장으로 인해 결렬상태에 빠진 47년 9월 이후이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미국이 남한을 식민지화·군사기지화 하려 했고 처음부터 남한에 분단정권을 수립하려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정반대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소련이 북한을 위성국화 하려 하고, 처음부터 북한에 분단정권을 수립하려 했다. 소련은 북한지역을 점령하자마자 북한공산주의자들에게 행정권을 넘겨주고 8·15해방 직전 소련군에 복무했던 김일성을 내세워 46년 2월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북한의 분단정권을 수립했다.

소련은 한반도 통일임시정부 수립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개최를 합의해 놓고 그 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북한에 단독정권을 수립했으며, 서울에서 미소공동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는 기간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앞장세워 토지개혁·산업국유화·교육개혁·주민사상개조운동 등 소위 ‘민주개혁’을 통해 북한지역을 사회주의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강력하게 전개했다.

이러한 소련의 행동은 한반도 통일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위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지역에 단독 공산정권을 수립하고 북한지역 주민이 생활방식과 남한지역 주민의 생활방식을 이질화시켰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볼 때, 한반도 분단의 원흉은 미국이 아니라 군사분계선인 38선을 통치분계선으로 변질시키고 북한을 위성국화 하려 하고 남한에 민족정부가 수립되기 훨씬 전에 북한에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북한주민들의 생활방식을 남한주민들의 생활방식과 양립할 수 없도록 이질화한 소련이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양동안, ‘대한민국 건국사’, 542쪽~547쪽, (서울: 현음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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