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제가 알고 지내던 선배 중 농사를 짓는 분이 있는데요 시간이 날 때 가끔씩 들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참도 얻어먹고 오고 그러는데요, 그 분의 과거 인생담을 듣노라면 마치 소설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 다닐 때 부터 남의 집 농사일을 도우며 그 부자의 도움으로 시내에 있는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아예 그 집 머슴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합니다.

10여년 넘게 머슴으로 살면서 받는 세경을 단 한푼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한평두평 땅을 사 모았고 그 주인이 세상을 떠나자 머슴살이를 끝내고는 자기 땅과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키워나가 몇해전에는 5,000여평이 넘는 땅을 소유한 지주가 됐는데요 요즘 그 곳이 도시개발이 되면서 땅값이 치솟아 아직은 농사를 짓지만 상당한 재산가가 되었지요.

그 선배의 농사 철학이랄까 하여간 그 나름데로의 철학이 있는데, 농산물 값이 떨어진다고 분노에 차서 트랙터로 갈아엎는 사람들을 보면 울분이 치솟는다고 합니다.

자기 자식이 좀 못났다고 죽여버리는 부모가 어디 있냐며 농사는 그렇게 짓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자식 기르듯이 기르는게 농사라고 합니다.

가격이 떨어져 인건비마저 안나올 지경이 되면 시내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냥 가져가라고 하면 몇일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깨끗하게 수확해간다고 합니다.

농사를 무슨 투기나 도박하듯이 한꺼번에 왕창 심어놓고 가격 떨어지면 정부 탓 남 탓이나 하며 분노로 가득차 갈아엎는 사람들은 농사꾼이 아니라 투기꾼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복을 빼앗아 간다고도 하더군요.

잘못은 자기들이 해놓고 왜 남탓 정부탓 하는거냐며 그런 투기꾼들에게는 동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나요.

이 만큼은 토마토를 심고 저 만큼은 오이를 심고 저기는 상추를 심고 여기는 배추를 심고, 아마 포트폴리오 자산관리 하듯이 농사도 그렇게 하면 위험을 줄일 수가 있는가 봅니다.

이 품목에서 가격이 떨어져도 저 품목에서 만회를 하면 되니 분노로 가득 찰 이유가 없겠지요? 그 선배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은 말은 아닐지라도 어느정도 수긍은 갑니다.

우유가격(원유가격) 떨어지면 우유를 땅에 쏟아붓고 소값 떨어지면 영문도 모르는 그 귀중한 자식 같은 소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시위를 하고 배추갑이 떨어지면 갈아엎어버리고 쌀값 보장하라며 아스팔트 위에 쏟아붓고 불을 지르고,...광기 어린 모습에 섬뜩함 마저 드는 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성실하고 힘들게 농사 지었는데 가격이 형편 없다면 그 허탈감과 경제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겠지요, 그러나 도박꾼이 도박하듯이 투기꾼이 투기하듯이 이판사판 왕창 심어놓고 모 아니면 도로 농사에 임하는 사람과는 분리하여 대하는 농업정책도 필요하리란 생각입니다.

남탓 하기 전에 자신의 과욕은 없었는가를 먼저 뒤돌아보는 지혜도 필요하겠지요.

농사는 자식 기르듯이 기르는 것이지 투기꾼이 투기하듯이 짓는게 아니라던 그 선배의 말이 오늘은 하루종일 귓가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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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21kc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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