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김지하 시인이 지난 12월 14일 원주 평생교육정보원에 한 강연내용을 입수하여 김지하 시인의 동의하에 게재합니다.

▲ 김지하 시인.사진@온라인검색

[김지하, 시인]

원주에서 강연은 처음이다. 그것도 여자 문제로 강연하는 건 나의 강연역사에서도 처음이다.

여자가 세상을 바꿀수 있는가?
정치나 선거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건 아예 흥미 없다.

그러나 참으로 여자가 세상을 바꿀수 있다면 그때는 그것들도 흥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무슨 여자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가?

지금 내 앞에 있는 여러분, 수많은 보통여자들 이야기다. 그것도 ‘살림’ 이야기. 그런가?

정말 그렇다. 남자가 ‘살림’을 아는가? 모른다. 그러나 조금은 안다. 어떤 것을 아는 것인가? 그래 그 조금 아는 것만 조금 이야기하자.

돈. 경제.시장.

거기서 여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돈, 경제, 시장을 여자들 자신이 원하는 ‘살림’ 즉 ‘생명을 생명답게 살려내는 경제’로, 또 그런 시장으로, 거기에서 당연히 ‘돈과 마음이 서로 융합하는 따뜻하고 착한 경제’, 의미심장한 시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어려운가? 그러나 ‘조금’ 이라고 이미 말했다. ‘조금만’ 그쪽으로 한번 가보자.
무서운가? 그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세상은 이미 그리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다.

돈. 경제. 시장에서, 그렇다면 우선 여자는 무엇인가?

그 방면에서 세상이 다 알아주는 미국 경제학의 여자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미국 최고 경제학자로 노벨상 수상자인 ‘포올 크루그먼 ’의 ‘새로운 경제학 이야기’다.

‘여성은 현대경제학에서 소외돼 있다. 전혀 옳지 않다. 왜냐하면 현대경제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영역이 소비이고 소비판단이며 그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그 역할의 창조적 확장과 유기적 연관의 확보과정에서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생산적 기능은 또한 엄청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거의 원시적 상태에 가까운 경제학 가부장제 아래 묶여있는 셈이다’.

이것이 집안의 ‘살림’을 위한 여성의 ‘장보기’에 한정된 것일까? 그것만이 아니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 역할의 창조적 확장과 유기적 연관의 확보과정에서 여성이 얻을수 있는 생산적 기능은 또한 엄청난 것이다’라고 했다.

무엇이 그렇다는 말인가?

몇 년 전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슈퍼 버블’ 즉 대규모 금융거품사태가 터져서 세계경제가 몽땅 뒤흔들릴 때 이야기다.

막상 미국은 손을 못 쓰고 있는데 영국, 네델란드, 프랑스가 잽싸게 어떤 조치를 내렸다.

정부와 은행 등 금융과 저축관계의 실무진을 몽땅 수십명씩 남자에서 여자전문인력으로 바꿔버린 사건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나마 유럽이 미국과는 달리 조금은 덜 거품재난에 시달릴 수 있었다.

바로 ‘포올 크루그먼’이 지적한 바와 같은 여성들의 시장에서의 소비판단능력의 뛰어남을 정부와 사회조직이 공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과연 여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전혀 없는 것인가?

그래도 없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금 뉴욕의 월가와 유럽 등 온 세계 80여 개국 1500여 도시에서는 매일 매일 바로 몇 년전의 ‘슈퍼 버블’, 일확천금의 야망에 불타는 7만 여명 속성자본가들의 금융거품을 근본에서 없애라는 데모가 근 한달 이상 계속되고 있다.

모두들 이것을 빨갱이들 짓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경제학, 공산주의에 닳고 닳은 자본주의 경제학이 그저 평범한 ‘보수지향(대처리즘 따위)’이라는 태도 이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못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왜? 왜 그런가?
그 데모가 전적으로 좌파, 즉 빨갱이 데모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어려워진다.

‘월가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의 수많은 SNS들과 관련 공식신문보도 등 일체에 의하면 이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류역사상 전혀 새로운 부류의 인간들이고 주장들인 것이다.

‘Memmento mori','Totem Goyat','Enai Tolae'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그들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주장이요 사상이요 방향의 표시 등이다.

‘기억도 하기 싫다.’,‘죽은 나무통 귀신아 !’,‘지랄같은 달라 !’

이것이 좌파표현인가? 물론 행동의 감수성 계열은 좌파적이다. 그러나 그 표현과 그 주체도 역시 그런가? 좌파, 마르크시스트의 결정적 행동구호에 이런 종류의 미신적 표현은 아예 있을 수도 없다.

그러면 무엇인가? 모른다.
비슷하다면 다만 한가지 ‘붉은 악마’나 ‘촛불’ 뿐 이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쩌면 ‘촛불’과 ‘붉은 악마’가 이것들, 전세계적 반(反)월가시위 성격의 시조인 것 같다.

이 같은 미신적 표현들이 정치·경제의 현실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에 등장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아 기독교의 종말론이거나 동학 쪽의 “후천개벽(後天開闢)” 계열에서 뿐이다. 즉 “음개벽(陰開闢)”, 다시 말하면 여성을 중심으로 한 세계근본변혁, 여성성을 현대에 다시 세우는 역사변혁에서만 유일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는 어찌되는 것인가? 세계사 전체가 환귀본처(還歸本處) 하고 있다.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경제도 문화도, 그 주체도 다 똑같다.

그러니 세상도 예를 들면 아득한 고대의 ‘신시(神市)-호혜 · 교환 · 획기적 재분배’가 객관적 동일 패턴안에서 함께 현실화되는 시장, 이른바 참으로 ‘따뜻한 자본주의’나 '진짜로 착한 경제’ 또는 ‘자유로운 호혜 시장’이나 ‘비단깔린 장바닥’을 여기저기서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인 것이다. 왜? 바로 그 ‘참으로 따뜻한’, ‘진짜로 착한’, ‘자유로운' , 그리고 ‘비단’이 바로 다름아닌 여성성, 모성, 아기스러움이기 때문이다. 그 예를 몇가지 들어 보자.

월가의 금융폭발직후 프랑스의 몇 개 작은 도시의 예다. 프랑스의 한 여성 경제논평가 ‘조안나 안제리카’의 글이다.

“인류는 이제야 긴 긴 멀미나는 항해를 끝내고 참으로 옛 고향에 가까운 정든 포구에 도착했다. 그 작은 포구의 이름이 ‘따뜻한 시장’이다.

그 시장에는 일정한 가격이 없다. 사람에 따라서, 날씨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그 가격은 오르락 내리락한다.

가난한 이에겐 참으로 인정스럽다. 그러나 때로, 몰인정한 바가지도 등장한다. 특히 욕심사나운 아줌마들이 그렇다.

그렇지만 이렇게 낮은 곳도 높은 곳도 함께 있는 장터가 있는 이 포구가 사람들에겐 도리어 정다운 것이다. 이 포구의 이름을 잊을뻔 했다. 아시아인들은 이곳을 ‘신의 우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신의 우물’이 무엇일까?
어려울 것 없다. 아시아의 옛 시장 ‘신시(神市)’다. 신시는 지금도 우리의 재래시장 ‘오일장(五日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것이 유럽선진국 자본주의 시장의 한 풍경이다. 공산주의는 어떤가?
스탈린의 죽음이 보도된 직후 모스크바역 근처의 한 광장에는 웬 할머니들의 난데없는 새벽 벼룩시장이 섰다.

할머니들이 거기서 서로 껴안고 즐거워 춤을 췄다고 한다. 가난한 할머니들이다. 러시아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공동체시장 ‘미르’의 부활인것이다.

일본은 어떨까?
대지진 직전 도쿄의 우에노거리 400미터의 재래시장 ‘아메요코’가 난데 없이 3년을 계속해 대박이 터졌다.

100만, 200만, 250만 수준으로 대박이다. 장사꾼은 외친다.
‘아메요코이니까 마구로(참치) 7000엔 짜리 한 마리가 5000엔!’
백화점, 마트, 마르쪽으로 가던 40대 주부들이 마구 몰려드는, 그러나 질서정연한 난장이다.

한 주부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마구로 5000엔은 너무 싸다.’
‘그럼 어떻게 해요?’
‘당신은 뭐 먹고 살아? 더 올려!’

나는 몇 년전 중앙아시아 기행에서 ‘호혜·교환·획기적 재분배’의 옛 ‘신시’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보았다.

키르키스스탄 1,500미터 고지의 호수‘이쉬쿨’바로 옆에 열리는 1,000년 전통의 재래시장 ‘야르마르크트’다.

유럽, 중국, 일본, 남미에서까지 온갖 바자르 계꾼들이 모여들고 수많은 상품에 여러 가지 가격다양성, 그때마다 사정에 따라 바뀌는 협의가격, 그리고 서로 카드놀이를 하며 건강과 가족의 안부를 걱정하는, 마치 한 가족 같은 시장풍경이다.

사마르칸트의 ‘비비하눔 바자르’다. ‘비비하눔’이라는 옛 황후의 거룩한 궁전 바로 앞 마당에서 ‘야르마르크트’와 똑같은 바자르가 열린다. 어떻게 성스러운 궁전에서 속된 장바닥이 열릴수 있는 것일까?
사마르칸트 주립대학 부총장인 경제학자 ‘사하로브’ 박사는 말한다.
“ 이슬람 이전부터 모든 아시아에서는 가장 성스러운 것이 곧 사람들, 여자들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 필요한 것을 사정과 형편에 따라 가격을 그때 그때 결정하는 장바닥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장터, 바자르가 곧 ‘솟대’,제사지내는 곳이다. 그래서 사마르칸트의 옛 이름이 ‘춀폰아타(금성의 땅)’ 인 것이다.”

‘야르마르크트’의 옛이름도 ‘쵸폰아타’다. 우리 고구려 수도의 이름이 ‘졸본성(卒本成)’, 또는 ‘홀본성’인데 똑같은 말이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다. 그러나 그 ‘후에’시의 ‘동바’시장도 이와 거의 비슷한 구조였다. 다 알듯이 터키의 바자르도 똑같다.

이제 월가사태 이후 세계는 다시금 ‘따뜻한 자본주의’니 ‘착한 경제’니 ‘호혜시장’이니 옛 신시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작년과 올해초 왕성했던 이슬람의 ‘재스민혁명’의 근본과 결과는 다 같이 ‘쎄벨리온(별)’이라는 이름의 “별장(새벽별과 함께 열리는 옛 시장)”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50년 전부터 시작된 이슬람 여성과 아기들의 지하운동 <아크발라이 쇼크니아바(저 어둠위에 참 빛을!)>의 결과다.

무하마드 성인의 나이 많은 첫 번째 메카시대 부인의 별명이다. 어둠이란 여성이고 빛이란 해방이다.

자! 남성 가부장제의 요새인 이슬람에서까지 여성주도의 시장과 사상과 정치가 등장했다. 어찌 할것인가?

지금 우리나라도 각 지역에서 옛시장, ‘오일장’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내용은 아직 멀었다. 어찌할것인가?

‘오일장’이 곧 ‘월가를 점령하라’ 사태의 결론인지도 모른다. 아닌가? 문제는 그 내용에 있는 것이다. 오일장의 내용 ‘가격다양성과 협의가격(가난한 이에겐 싸게, 돈많은 이에겐 비싸게, 날씨,형편에 따라서 가격을 의논해 결정하는 등)’ 또는 ‘탈상품화를 통한 재상품화’ 다시 말하면 ‘호혜, 교환,획기적 재분배(카알 폴라니의 대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를 여자들이 어떻게 밀어붙이는가에 있다.

어떻게 할것인가?

그 핵심은 ‘획기적 재분배’다.

‘획기성’은 개인의 세세한 사정과 형편을 살펴 그에게 이롭도록 마음을 쓰는 노력이고 ‘재분배’는 코고 넓고 공평하게 평등한 이익을 골고루 보장하는 서로 모순된 것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여기엔 어떤 전통적인 원칙이 있어야한다. 유럽경제학은 ‘경제학은 끝났다’고 말한다. 온세계의 데모꾼들에게도 방법은 없다.

누구에게 있는가?
여러분 여자들에게 있다.

신시(神市)의 첫 시작은 1만 4천년전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麻姑城 )’에서 부터다
마고가 누구인가? 우리의 조상 할머니다. 여자다.

마고가 ‘천시원(天市垣)’ 이란 하늘에 ‘솟대’에 올라 귀기울여 보니 우주질서의 일정한 음률(音律)이 들려왔다. 그것이 신시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그 음률이 바로 ‘팔여사율(八呂四律)’이다. ‘팔여’는 여성성, 개체성, 우연성, 혼돈성, 세속성, 풍요성이고 그리고 중심성이며 ‘사율’은 남성성, 전체성, 필연성, 질서성, 포괄성, 엄정성이고 그리고 대칭성이다.

획기성과 재분배의 근거가 이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이 변혁의 시대, 이 개벽의 시절에 여자가 한번 세상을 바꿀수 없겠는가? 그런데 이런 여자는 어떤가? 이런 여자도 세상을 바꿀수 있겠는가?

시집 안간 여자, 남편이 무엇인지, 자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여자, 애정이 무엇인지, 모성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여자, 형제간에 싸움만 하는 여자, 시장에 나가본 적도 없는 여자, 살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여자, 원한으로 가득찬, 미움과 복수심으로 가득찬 여자, '모심'을 아예 모르는 여자, 그런 여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허허허허허. 없다.

이런 경우를 두고 '원효'스님은 '似然非然(비슷하지만 아니다)' 이라고 했다. 허허허허허.

김지하 시인은

*김지하 시인은 전남 목포(木浦) 출생. 본명은 영일(英一). 1966년 서울대학 문리대(文理大) 미학과 졸업. 1969년 〈시인(詩人)〉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하였다. 1970년 5월 〈사상계〉에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발표, 반공법(反共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공판을 받다가 보석(保釋)되었다. 1970년 시집 《황토(黃土)》를 발간했으며, 희곡 《동상 이순신(銅像李舜臣)》이 있다. 1960년대 말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 대한 그의 야유(揶揄)와 비판이 유발한 필화사건(筆禍事件)은 그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함께 문명(文名)을 가져다 주었고, 문제의 담시 《오적》은 정치적, 사회적 물의를 일단 제쳐놓는다면, 우리나라 고유의 「판소리」 형식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네이버 백과사전> 진보논객 진중권은 황석영 작가가 이명박 정부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했을 때 ,김지하 시인은 “작가라면 자기 마음대로 가도록 놔둬야 하며 작가는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그럴 자유는 있어야 한다”며 진중권은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서는 전혀 백치라면서 미학공부를 다시 하라” 고 신랄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김지하 시인은 2009년 10월 7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당시 독방에 있던 나보고 자꾸 반정부 성명서를 발표해 정부의 탄압을 유발하라는 거야. 내가 옥사하기를 바란 것이지. 7년 동안 독방에 처박힌 내가 왜 그들을 위해 순교를 해야 해? 내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그들은 아내를 납치해서 살해하려고까지 했어. 어떤 놈은 장모(소설가 박경리)가 내 석방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안 한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어."라고 공개했다. 당시 조선일보 박해현 문화부 차장은 칼럼에서 "거센 어조로 당시를 떠올릴 때 그의 짙은 눈썹이 묵은 분노를 표출했다"며 "'정치적 순교'를 거부했던 시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생명사상에 눈을 떴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썼던 것이고, 촛불 집회의 폭력시위대를 '까쇠'라고 욕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 '수백억 나랏돈 쓴 자칭 민주화 운동가들'을 향해 육두문자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라며 김 시인을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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