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박탈감?
 
[안호원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교수 겸 박사] 대한민국 대부분의 국민들이 요즘 느끼는 감정이다. 어찌하다 대한민국이 ‘비상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문 대통령은 입버릇처럼 ‘공정’이란 말을 수십 번 되풀이하면서도 불공정한 세상, 비상식이 기승을 부리는 나라로 만들어 놓았다. 한 때는 ‘사람이 먼저’라더니, 그 말도 사라진지 오래다.
 
지난 18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내년 대선을 감안한다면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신년회견이라 할 수 있다. 추미애와 여권의 광적인 윤석열 죽이기를 비롯해, 코로나 재 확산 및 경기부양책, 백신, 부동산 정책, 북 전술 핵 등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쟁점이 많았지만, 그간 문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다.
 
‘공정(公正)’이 아닌 공정(空征)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가장 궁금해 하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 “지금은 사면 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대전제는 국민들 공감대가 형성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또 그 특유의 비법을 썼다. 집권 초부터 박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4년 가까이 옥살이(전직 대통령 중 최장수 수감 기록)를 했고 전 전직 대통령도 수감되어있는 등 전직 대통령 두 분이 한꺼번에 감옥에 갇히는 실로 근대 국가에서 그 전례를 찾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아무리 정치 보복이 아니라고 부인을 한들 이를 방치하는 건 국가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말했지만, 그 레토릭은 뻔한 논리일 뿐이다. 그러나 당사자 반성. 사과라는 ‘조건부 사면’은 ‘조건부 출마’ 만큼이나 궁색하기 짝이 없다. 사실 대통령 사면권은 군주의 은덕을 연상케 해 행정. 입법. 사법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 3권 분립에는 어긋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 사면권을 부여 한 것은 ‘국가 통합 차원에서 최고지도자가 무조건 조건 없이 포용하는 마음에서 용서를 해주는 것이며 차가운 법의 빈틈을 보듬자는 취지에서다. 그런데 무릎을 꿇어야 풀어준다? 그건 통합이 아니라 비굴한 모습의 굴복하란 얘기다.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론과 관련해 “선고가 끝나자마자 돌아서서 사면을 말할 권리는 없다.”고 못 박은 대목은 ‘통합의 해’(7일 신년 인사회)라거나 ‘포용의 해(11일 신년사)라고 했던 기류와는 확연히 대비된다. ‘공정(公正)’이 아닌 공정(空征)인가.
 
또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사실 잠잠하던 전직 대통령 사면 론에 불을 지핀 것은 올 초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대표가 총대를 메고 사면 론을 꺼냈다가 문파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고 심지어는 ‘탄핵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무소불위의 여권의 상전(上殿)행세를 하는 문파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 고유 권한을 청와대와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던졌을 리는 만무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침묵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부동산 문제를 두고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지지도 하락을 의식해서인가 강성에서 온건으로 노선 변화가 엿보였다.
 
그 정점에 있었던 게 ‘MB. 박근혜 사면’ 이었다. 짧게는 4월 재보선 선거, 길게는 문 대통령 임기 이후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야심찬 사면 카드를 던져버린 것은 전직 대통령도 아니고, 문대통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닌 바로 문파들이다. 문파들의 극렬함은 여권을 쥐락펴락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여권의 상전(上殿)행세를 한다. 지난 해 11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했다가 “정의당에서 온 쓰레기”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에 앞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설치 법안에 기권 표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당의 징계 처분을 받았던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이 문파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맹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추 장관에게 “정도껏 하세요 좀”이라고 했던 정성호 예결위원장까지 “역시나 이재명 끄나풀”로 낙인찍혔다. 심지어는 여야 합의 처리를 말한 국회의장을 ‘사쿠라(어용)’라며 ‘후원금 18원’을 받았고, 추경에 반대한 여성의원은 ‘X덩어리’로 내몰렸다. 정경심을 구속시킨 판사들을 탄핵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엔 문파가 ‘검찰 수사권폐지’ 연판장을 돌려 민주당 황운하. 김용민. 김남국. 장경태. 이수진 의원 등이 실제 서약서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순한 막말, 조리돌림을 넘어 국가 정책 기조에도 관여하겠다는 태세다. 이 같은 풍경이 문 대통령이나 여권에선 곤욕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인가. 문 정권을 창출하는 데 1등 공신들 아닌가. 더구나 지난 4년 ‘이니’를 향한 공세가 있을 때마다 물불가리지 않고, 악역을 자처하며 ‘이니’를 지킨 자들이 아닌가.
 
그런 문파가 슬슬 거대한 힘을 발휘하려고 한다. ‘조직은 만들어지는 순간, 그 조직 내부 논리로 굴러간다.’는 게 관료주의다. 문파도 초창기엔 문 대통령에 종속적인 관계로 있었을 것이다. 허지만 시간이 가면서 나름의 메커니즘을 구축한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이제 임기 1년의 문 대통령과 더 강한 권력을 원하는 문파의 이해관계는 꼭 일치 할 수 없다. 국민과의 약속을 단 한건만 지킨 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4월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에서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5대 중대 부패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두 전직 대통령이 문 대통령이 사면하지 않겠다고 한 부패 범죄에 해당된다. 사면이 물 건너갔지만, 만약 사면을 단행했다면, 공약 파기 논란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면에 반대하는 친문세력들의 목소리가 분출되는 것 또한 문 대통령으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추미애의 만행을 ‘민주주의 발전’으로 포장
 
그런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이 재보선 발생 책임이 있으면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한 당헌을 바꿔 오는 4월 서울. 부산 시장 보선에 후보를 내는 것과 관련, “헌법과 마찬가지로 당헌도 고정불변일 수 없다 당과 당원들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감쌌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힐 정도로 상식이하다. 당원들 투표참여 률도 30%에도 못 미쳤는데, 문제가 된 해당 조항은 문 대통령이 2015년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당내 혁신위원회를 구성, 새로 삽입한 조항이다.
 
집권이 목표인 정당의 내부규약 변경을 국가 통치의 기본 원리인 헌법에 빗대 가변성을 합리화한 것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정치권은 문 대통령의 미묘한 입장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이상 기후가 보인다.
 
주요 갈등 이슈와 관련, 과거 입장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먼저 추미애. 윤석열 갈등과 관련 “갈등이 생긴다 해도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1년간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든 추미애의 만행을 ‘민주주의 발전’으로 포장하기엔 극심한 분열과 피로감이 너무 커졌다.“윤 총장은 정치 할 생각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돌려서 한 부분도 의중을 가늠키 어려운 얘기로 들린다.
 
지금의 문대통령은 ‘벌거벗은 임금’ 과 똑같다.
 
문 대통령이 지난 해 12월 추미애가 정치중립 의무위반 등을 이유로 낸 윤 총장 징계 안을 재가 했던 것과는 너무 배치되어서다. 월성원전에 대한 감사와 관련, “감사원의 감사가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감사원이 정치적 목적으로 감사를 했어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검찰의 수사도 당시 감사원으로부터 수사기관으로 이첩된 데 따라서 수사가 이루어진 것이지, 그 이상으로 정치적 목적의 수사가 이루어졌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사원의 독립성, 또 검찰의 중립성을 위해서 감사원의 감사나 또 검찰의 수사에 대해서 ‘일체 개입하지 않는다.”는 그 원칙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했지만 신뢰 할 수 없다. 장장 123분간 진행된 회견에서 28개 질문 가운데 지역관련 이슈는 단 한건도 없었다. 또 청취율도 KBS만 2%대, 나머지 언론매체는 1%대 수준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이제 문 대통령은 지지층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라는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다. 이번 기자회견의 본질은 두 대통령을 풀어줄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문파에게 끌려갈 것인가. 문파를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지금의 문대통령은 ‘벌거벗은 임금’ 과 똑같다.
 
국민들의 눈에는 벌거벗은 모습인데, 측근들에게 속아 마치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서다. 익지 서에 이르기를 "나쁜 것이 그릇에 가득차면, 하늘은 반드시 천벌로 그를 죽일 것이니라(益智書云 惡鑵若滿 天必誅之)" 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