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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의 모순된 모든 의혹을 던져본다.
최성환 | 승인 2020.09.09 05:20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 15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남의 역사는 관심이 많으면서 자기 주변의 역사에는 무관심했나?

 [최성환 빅픽쳐 대표] 지난 9월3일 김원웅 광복회장은 중국에 전승절을 기념한다며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에게 축전을 보낸다. 이보다 더 이전인 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 때 반일과 반미를 강조했던 것을 놓고 보면 이러한 행보는 당연한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이력들과 발언들을 파면 팔수록 미국에서 셰일 가스가 솟아나듯 모순된 의혹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지난 9월 3일 김원웅 광복회장이 중국의 전승절을 기념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에게 보낸 축전 전문 출처 : 광복회 홈페이지
김원웅 광복회장이 무슨 일반 연예인이나 인터넷 방송 BJ처럼 단지 대중한테 이름만 유명한 사람이라면 이런 축전을 남기는 것에 굳이 과거 행적을 들먹이며 제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는 전직 국회의원이며 정부지원금을 받는 단체의 대표를 맡았으며 자신이 배운 역사를 강조하지 않는가?

우선 아무렇지 않은 듯한 중국 전승절에 중국 대사한테 축전을 보낸 것부터 살펴보자. 김원웅은 최근 광복절 발언 논란으로 알다시피 과거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신이었다. 그는 20년 전인 16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선전벽보 포스터에 한나라당 소속으로 독립운동가 무정의 장남으로 출생했다고 한다.

흔히 무정이라고 하면 본명이 김무정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해서 대장정에도 참여했다가 조선의용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사람을 떠올린다. 실제로 과거 근현대사 교과서에 조선의용군에 관련한 설명이 지도자도 무정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김원웅은 20년 전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친의 본명인 김근수를 쓰지 않고 굳이 동명이인 덕분에 오해를 살 수 있는 무정이라는 호를 선거벽보에 걸었다.

김원웅의 부친 김근수와 모친 전월선은 약산 김원봉의 조선의용대에 소속되었다가 김원봉의 부대가 임시정부에 합류하자 광복군에 소속이 된다. 그런 광복군의 자녀라는 것이 바탕이 되어 현재의 광복회장에 오른 김원웅은 자신이 태어났던 중국에 대해 단순히 고마움을 가지고 축전을 보낸 것일까?

그럼 중국에서 태어났고 광복군은 중국에서 활동했으니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소속 중국공산당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후원했는가? 그게 사실이 아니니까 이런 글을 썼다. 독립운동가 중에 폭탄테러로 일본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윤봉길에 대해 공부하면 뒷부분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윤봉길은 김구의 한인 애국단에 소속되어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거사를 벌였고 이걸 본 당시 중국 국민당 지도자이자 중화민국 총통을 맡았던 장제스가 감탄하여 광복군에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윤봉길 손녀 윤주경 씨가 지난 총선 때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1번을 받았을 당시 김원웅은 윤주경을 보고 윤봉길 정신에 맞느냐며 비판을 했다. 다른 독립운동가 그것도 자신의 아버지가 활동했다는 의열단과 비슷한 성향의 독립운동으로 더 유명했던 지사의 후손에게 강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이쯤되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윤주경이다. 왜 그녀는 김원웅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도 침묵했으며 광복절 발언 이후에도 침묵하고 있다. 또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인 배준영 대변인만 이에 반박을 했을 뿐이다. 김원웅은 윤주경에게 그 정당에 공천을 받은 것을 비난했지만 김원웅 본인은 생계를 핑계로 수 십 년 동안 자신이 비난하는 친일정당으로 일컫는 곳에 당료시절부터 있었지 않았는가?

그런 모순이 있음에도 직접 공격을 받았고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컨탠츠를 갖고 있는 윤주경은 본인이나 잘하시라는 식의 간단한 지적조차 못한다. 할아버지가 본인같이 가만히 참고 계셨으면 과연 손녀 본인이 국회의원을 할 수 있었을까?

중국대륙에서 내쫓은 세력에게 항일운동을 같이했다며 축전을

앞서 광복군 얘기로 돌아가서 김원웅은 광복군의 독립군 방식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정작 광복군을 지원했던 사람과 세력을 중국대륙에서 내쫓은 세력에게 항일운동을 같이했다며 축전을 보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김원웅은 자신의 부모의 독립운동을 언급하는 등 자기 스스로 역사의식이 투철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런 역사의식이 없는 것은 분명한 모순이다.

세상에 자기 부모 소속 회사에 후원해주고 도와준 사람을 고맙다고 하지 못할망정 그들을 내쫓은 그들의 원수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니 당최 이해가 되는 상황인가?

더욱이 김원웅은 그들이 쫓겨난 중화민국 즉, 대만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 국립 정치대학(현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면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모른다고 시치미 뗄 수 있을까? 그렇게 중국이 좋으면 태어난 곳이니 중국에 가서 학위를 취득해야 되는 것 아닐까?

어제 언론사 기사 중에 김원웅 부모의 광복군 활동 기록이 전무하다는 내용이 광복회 내부의 일부 대의원들이 의문 제기를 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김원웅의 아버지 김근수는 1931년 만주에 건너가서 1935년 의열단 비상연락원으로 가입했다고 한다.

필자는 김원웅 아버지가 의열단 소속이 가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시대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뉴욕 양키스라는 미국 메이저리그 최다 우승팀이 있는데 그저 양키스에 뛰었다고 다 똑같이 대우해야 되는 건가? 양키스가 우승을 못했던 80년대에 뛴 선수와 전성기였던 90년대 후반에 뛴 선수를 똑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의열단은 1919년도에 생겨서 20년대에 치열하게 활동하다가 1928년 중국 내전에 개입하여 조직이 와해되었다. 1928년 이미 김원봉은 의열단 9주년을 맞아 노선변경을 선언했다. 그 이후 의열단의 뚜렷한 활동내역이 나와있지 않다. 그런데 김원웅의 아버지는 1935년도에 의열단에 입단해 연락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어느 위치에서나 중요한 것이 없겠냐만은 활동 시기가 저조하던 시기였고 김원웅 본인은 다른 독립운동가의 정치적 선택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도 서슴없이 하지 않는가? 그럼 김원웅은 윤봉길 손녀만 비판하지 말고 5.16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다는 백범 김구의 아들 김신도 친일파 박정희와 어울린 자기 아버지 이름을 먹칠한 사람이라고 선전하고 다녀라. 그 일관성만큼은 존중해주겠다.

서울대를 졸업한 것은 깨끗한 것인가?

지난 광복절 때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를 친일파라고 비난하며 앞으로 애국가를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식이라면 김원웅 본인은 타이완에서 석사를 따기 전에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친일파라고 지칭한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했으니 애국가를 부르지 않겠다는 논리라면 본인이 서울대를 졸업한 것은 깨끗한 것인가?

서울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본인이 그렇게 증오하는 일제가 1924년도에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을 모체로 두지 않는가? 특히 본인이 전공한 정치학과도 지금 1926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정치학과에서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성제국대학을 폐교시킨 것은 본인이 우남 이승만 대통령을 들먹이며 싫어하는 미국에 의해 없어졌다. 이것도 생계를 위한 선택이라고 변명할 것인가?

그럼 본인의 생계는 중요하고 남의 생계는 존중해주지 못하는가? 정치를 그만두고 강원도에 살면서 본인이 증오하는 미국에서 만든 트위터라는 SNS에다가 자연은 지극히 생각하면서 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이해와 상생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게 본인 친구였던 노무현 정신에도 위배되지 않는가? 그러니 이미 사망한 안익태 공격하지 말고 경성제국대학의 후신인 서울대 폐교하라고 주장을 하라. ‘국민’학교도 일제의 잔재라고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것처럼 말이다. 우연하게도 필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이후 첫 입학세대였다.

이토록 반일에 모순이 있는 김원웅의 반미는 어떨까? 일단 미제인 트위터를 열심히 하셨던 김원웅은 항상 일관되었을까? 놀랍게도 12년 전에 흥미로운 사건을 보았다. 2008년도 당시 광우병 정국 때 김원웅은 이미 2008년도 4월 총선에서 패배하고 5월 말까지 마지막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 잔여 임기가 남아있었다.
 
2008년 5월 민주노동당에 의해 한미 FTA 비준안 상정이 무산된 김원웅 당시 통일외교통상위원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FTA 반대, 아버지는 이승만 정부에서 부역(?) 

김원웅은 이 당시 민주당에 소속되었고 민주당에서도 한미 FTA를 반대했었으며 바깥에서는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이 당시에 한미 FTA를 당내 반발을 무릎쓰고 밀어부친다. 잔여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상태라서 그냥 넘어가도 상관없는데 굳이 이랬다. 이런 사람이 왜 미국을 욕하고 미국과 친한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이승만을 비판하는데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 해방 3년에 정부가 수립된 직후 최용덕 국방부 차관의 특임행정보좌관 직책을 잠시 맡은 것뿐만 아니라 1958년에는 충청남도 도지사 직무대행 서리도 지냈다. 이런 일들이 이승만 정부에서 지냈던 민간도 아니고 관료였는데 김원웅의 논리라면 아버지가 이승만 정부에 부역했다는 논리 아닌가? 결국 부친을 욕 먹이는 짓이나 다름없다.

의열단하면 생각나는 대표적 영화 중 하나인 송강호, 공유 주연의 <밀정>에 보면 1923년도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부터 조선총독부 폭탄 반입 시도까지 나온다. 이 당시 공유가 맡은 김우진 역은 작중 리더 역할로 실제 독립운동가인 김시현을 모델로 하였다.

실제 김시현은 해방 이후 민주국민당에서 국회의원이 되지만 김원웅의 아버지 김근수처럼 관료는 되지 않았고 이승만 정부가 독재라며 암살 시도에 개입했다가 4.19 혁명 때까지 복역한다. 그의 삶을 존경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 사람은 이승만을 비판할 자격은 있다. 그러나 김원웅은 그럴 자격이 있는가 참으로 의문이 든다.

마지막으로 김원웅은 의열단을 언급하면서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의 서훈까지 추진했었다. 김원봉의 월북을 약산 본인의 선택이 아닌 친일파들이 내쫓아서 피동적으로 갔다고 김원봉을 옹호했다. 그러면 김원봉의 생애 전체를 옹호해야 되지 않을까?

왜 김원봉의 월북 이후에 대해서는 옹호하지 않는가? 김원봉은 분명 남침에도 관여했던 사람이지만 어쨌든 김일성에 의해 숙청된 사람이다. 그러나 김원웅은 월북하기 전 김원웅의 정적들은 친일파라고 매도하면서 왜 숙청한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비판도 하지 않는가?

그는 왜 똑같은 사람인데 38도 이남에서 벌어진 것에 대해서는 분노의 사자후를 내뿜으면서 38도 이북에서 같은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왜 벙어리가 되는가?

 김원웅 그는 과연 떳떳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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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gogodu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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