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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사진@ctstv |
나는 이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중국 송나라와 조선시대 도학자들의「굶어죽는 것은 작은 것이고, 정조를 잃는 것은 큰 것이다.」라는 말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중세인가, 현대인가.
또 중세 십자군 전쟁 때 교회 지도자들의 「이 전쟁은 성전(聖戰)이고 죽으면 천국 간다.」고 하여 생명을 가볍게 보고 순교를 부추긴 말과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예수의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라는 말과 정면 배치되는 말인 것이다.
설사 백보를 양보해서 예배가 목숨보다 중하다고 인정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배는 꼭 교회에서만 드려야 하나. 예배는 선박이나 기내에서 집에서나 광야에서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교회나 기도원은 단지 그 많은 장소중이 하나일 뿐이다. 당신들은 무소불위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옛날 성경책이 귀해서 교회에 나가야만 성경책 구경을 하고 교회에 나가야만 설교를 들을 수 있었을 때는 이 말이 일부 타당했다. 그러나 통신 미디어가 발달하여 언제 어디서나 예배를 볼 수 있는 오늘날에는 이 말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볼 것이다.
이것은 진리를 특정 장소에 가두는 것이고, 2000년 동안 내려온 원죄론「나는 죄인이로소이다.」을 고백하게 하며 겁박하여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사람들을 교회에 묶어두는 전통적인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 개인 개인은 교회이고 성전이라 하지 않는가. 또 신앙이란 절대자와 나와의 대면이고 단독강화가 아니던가. 어떻게 교회에 나가고 대면 예배를 봐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성화(聖畵)를 밝고 십자가를 훼손하는 등의 배교행위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이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도 운명의 밤에 예수를 세 번 부인하지 않았던가. 신앙이나 예배가 생명보다 소중하다는 사고방식은 탈레반이나 카미카제의 사고방식과 닮은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교회를 영업장 취급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미 교회를 사고 판지는 오래되었고 아버지가 일군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시키는 것은 세상의 기업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그 영업장은 당신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산업현장이고. 가장 큰 은일(隱逸)은 시은(市隱)이라는 옛말을 당신만 모른단 말인가.
예배가 생명보다 중하다는 사고방식은 인간을 목적론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고.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사고방식이다. 사물은 그 존재가 아니라 그 쓰임에 따라 가치가 있지만 인간은 쓰임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배를 보지 않더라도.
대면 예배만이 예배라고 주장하는 당신은 실은 먹고니즘이나 정치적 성향 때문 아닌가. 특정한 이념, 특정한 장소, 특정한 의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아마 인생을 덜 살았거나 또는 대롱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일 것이다.
교회도 시대에 유연하지 못하면 시정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 말은 인생과 세상을 꿰뚫어 본 명언이자 세계관임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푸른한국닷컴, BLUEKOREADOT
김성춘 kimmae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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