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람은 흐르지만 옛 사람은 흐르지 않고

[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위원] 나는 어렸을 적부터 옛 시, 옛 글. 옛 노래, 옛 향기를 좋아했다. 당연히 그것들을 낳은 옛 사람도 좋아했다. 지금도 고적지를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고 회고에 젖곤 한다. 감은사(感恩寺)에서는 마음 속 깊숙이 감은(感恩)했고, 건봉사에서는 다리 이름이 능파교(凌波橋)에 나는 걸음을 어여쁘게 걸었다.
 
옛 사람들은 산수(山水)에 빠지는 것, 계곡의 운무(雲霧)를 즐기는 것을 연하벽(煙霞癖)이라고 했는데, 나는 연하벽에 빠진 옛 사람에 또 빠지니 나의 취향은 무슨 벽(癖)이라 해야 하나. 내가 이렇게 옛 사람에 빠진 것은 오늘 사람에 없는 것이 옛 사람에게는 있고, 오늘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 옛 사람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 사람은 흐르지만 옛 사람은 흐르지 않고, 오늘 사람은 항성(恒性)이 없지만 옛 사람은 이미 항성을 획득했다. 오늘 사람은 내게 번번이 허점을 보이지만 옛 사람의 허점은 찾기 어렵고, 오늘 사람은 종종 속내가 드러나지만 옛 사람은 속내가 한결 같다. 오늘 사람은 얕은 냇물 같지만 옛 사람은 도도한 강물 같다.
 
오늘 사람은 돈·명성 등에 갇혀 살지만 옛 사람은 그것들에서 벗어났고, 오늘 사람은 물질은 실하나 정신이 허한데 반해 옛 사람은 물질은 허하나 정신은 실하다. 오늘 사람은 하늘 밖에 하늘이 있는 줄을 모르고 사나 옛 사람은 하늘 밖에 또 하나의 하늘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옛 사람은 보잘 것 업는 나를 그의 서제나 정원으로 초대하여 나를 극진히 환대하니 이는 마치 옛날 강호사람들이 이응이라는 사람의 집에 초대받고 그의 영접을 받으면 등용문(登龍門)처럼 여겼다는데 그 마음이 곧 내 마음인 것이다. 이러니 내가 옛 사람에게 빠지지 않을 수 없고. 옛 사람에게 빠지지 않으면 어디에 빠질 것인가.
 
또 나의 이러한 도락(道樂)에 든든한 후원자가 있으니 바도 맹자이다. 맹자는 「한 고을의 좋은 선비(善士)는 역시 한 고을의 좋은 선비와 벗하고, 한 나라의 좋은 선비는 역시 한 나라의 좋은 선비와 벗하며, 천하의 좋은 선비는 역시 천하의 좋은 선비와 벗한다. 그러나 그래도 성에 차지 않으면 옛 사람과 벗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알아보니 신산(辛酸)한 삶을 산 사람들은 다 나와 똑같은 심정이었고 심사였다. 이율곡이 「옛 곡조(古調) 아는 사람 없지만 나 홀로 즐기노라.」고 말 한데서 이미 맹자와 뜻을 같이 함을 알 수 있고. 노수신이 유배지 진도에서 「아. 아 첫 째 노래여, 나의 노래 애끓는데」라고 말한 것도 역시 이의 동조였던 것이다.
 
-이것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도 아니려니와 세상에서 사귈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오늘 사람 보다 옛 사람 중에 나와 같은 몽상가(夢想家)가 많다는 것이다. 내가 옛 사람에 빠진 것은 오늘 사람들이 용렬하다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오로지 내가 옛 것에 경도됨이 지나치고 너무 편벽되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