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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민주당 영입설,여권"민주화와 산업화 세대 간 화해의 의미"평가
서원일 | 승인 2020.01.16 20:37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노재헌 변호사
노태우(87) 전 대통령 장남 노재헌(54) 변호사의 민주당 입당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원일 기자=푸른한국닷컴] 16일 시사저널은 민주당이 오는 4·15 총선을 염두에 두고 노 변호사를 영입해 전략공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복수의 여권 고위 관계자가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시사저널은 민주당 핵심 관계자의 말을 전하면서 전직 민주당 재선 의원이 중간에 다리를 놓아 노 변호사를 추천했고, 당에서 이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여권 입장에서는 노 변호사 영입을 통해 암울했던 과거 역사를 청산하고 민주화와 산업화 세대 간 화해를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재헌 변호사의 총선 출마 예상 지역으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연고지인 대구‧경북 지역이 가장 유력할 것으로 내다 보고있다.
 
또 다른 지역으로는 노재헌 변호사를 광주에 전략 공천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노재헌 변호사는 지난해 두 차례씩이나 광주를 찾아가 5‧18 묘소를 찾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죄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앞서 노재헌 변호사는 김대중컨벤션센터를 찾아 방명록에 “노재헌, 큰 뜻을 이어가겠습니다”는 글을 남겼다.
 
그러고는 같은 날 남구 오월어머니집에서 5·18 희생자 유가족과 면담하면서는 거듭 사죄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노재헌 변호사는 당시 자리에서 “병석에 계신 아버님을 대신해 왔다. 광주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당 안팎에선 노재헌 변호사 영입에 대한 판단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노재헌 변호사 영입) 소문이 돌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노재헌 변호사의 진정성이 어떻게 유권자에게 전달되느냐가 관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와병 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광주에 대한 전향적인 뜻이 담긴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럴 경우 노태우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노재헌 변호사가 대신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송갑석 의원은 “아직 5‧18 진상 규명이 명확하게 되지 않은 마당에 무리한 인재 영입(노재헌 변호사 영입)은 되레 광주 민심을 자극할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도 “당 일각에서 (노재헌 변호사)그런 제안이 있긴 했는데, 아이디어일 뿐 추진된 적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한중문화센터 원장을 맡고 있는 노재헌 변호사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 석사에 이어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재헌 변호사는 또 1991년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비서관으로 활동했고 민자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대구 동구을 지구당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6년 노재헌 변호사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때 정치인을 꿈꿨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뒀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아들 노재헌이) 차분히 실력을 쌓은 후 언젠가는 못다 한 꿈(정치인)을 실현하리라는 기대도 해 본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1988년 2월∼1993년 2월) 이룬 업적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박철희·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 학자 12명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을 재평가한 논문집 《노태우 시대의 재인식》(나남)이 대표적이다.
 
강 교수는 논문집에서 “20년 전 한·중 수교를 맺는 등 급변하는 국제정치적 전환기에 적극 대응한 노태우 대통령의 리더십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유약한 리더십’으로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노태우 시대는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했고, 대외적으로는 공산주의가 붕괴하는 등 탈냉전 국제질서로 재편되는 시기였다. 이때 한국은 옛 공산권을 비롯해 40여 개국과 수교했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강 교수는 “1990년 3당 합당이 현 정당 구도의 출발점이 됐고, 현재 한국이 처한 대외 질서도 노태우 정부 때 정비됐다”며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환기였던 노태우 시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도 언론 기고를 통해 “노태우의 6·29 선언은 6월 항쟁의 민주화 열망을 수용하는 동시에 유혈사태 없는 군부권위주의 종식 및 민주적 개방과 함께, 보수 집권 연장의 길을 열었다. 6·29는 한국 민주화 과정을 안정시킨 초석의 하나였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한편 노태우의 경제 정책은 자유화와 개방화의 확대였다. 그의 정권 하에서 경제는 연평균 8.5%라는 고속성장을 누렸고, 1988년의 서울 올림픽 개최는 발전한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88년 수출은 600억 달러를 돌파하였고 1986년 대한민국은 대외교역사상 최초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이래 그 폭이 매년 확대, 1989년 대한민국은 마침내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반전하였다. 그러나 수출은 1990년대 초 경기침체로 부진을 겪게 되었다.
 
노태우는 대통령 후보 시절, 작전 통제권 환수추진을 공약하였고, 그 결과로 평시 작전 통제권을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절에 환수했다.
 
1991년 11월 13일 노태우는 비핵화를 공식 선언했다. 이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각각 추진하려던 원자폭탄 개발 및 핵개발의 최종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한편 그의 핵포기 선언에 대해 김영삼은 이를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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