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춘 푸른한국닷컴 칼럼니스트]
맹자가「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 받는 사람」으로 구분한 것은 꼭 사람의 귀천이나 사람의 상하를 논한 것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구성원이나 소속원들의 질서를 염두에 둔 것으로서「질서는 아름답고 편한 것」이라는 현대적 의미의 원시적 착안이자 공동생산 공동방위 공동축제를 통하여 모두를 만족케 하는 교집합적 성격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다스리는 사람」이른바 치자(治者)들은「백성은 권력이라는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하고」「백성의 말은 쟁쟁 소리 내는 시냇물과 같고」「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것」을 잊어버리거나 외면한다.
완장은 질서를 통한 가치배분을 위한 것임에도 완장이 기준이 되고 표준이 되고 근원이 된다. 이래서「나라가 흥해도 백성은 고통, 나라가 망해도 백성은 또 고통」이라는 명구가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의 세계에서 절망할수록 관념의 세계에 빠져든다. 현실에서 질곡이 심할수록 숨 쉴 공간으로서의 관념이 필요할 뿐 아니라 미래의 대안세력의 발아지로서도 관념의 세계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6두품 출신 원효는 무애가(無碍歌)를 읊고, 당쟁으로 아우 수흥 수항이 죽자 김수증은 춘천 곡운(谷雲)으로 숨어들며, 백안시(白眼視) 완적의 완세(玩世.세상을 경멸함)가 나오는 것이다.
「다스리는 사람」이 왜 중요하냐 하면 (옛사람들 표현을 빌면), 「제갈공명과 주유가 죽자 촉나라와 오나라가 망했고」「간신 수조 역아 개방이 살아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중이 죽은 것이 문제이다.」라는 말이 그 힌트일 것이다.
출중하기는커녕 졸렬한 사람들이 「다스리는 사람」이 될 때 유탄은 수시로 날아들며 심지어 우리의 신세는 풍전등화와 같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역사에서 즐거이 나를 지배했으면 하는 그 관념적인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먼저 조선 세종 때의 기건(奇虔)이다. 그는 연안 군수 시절 진상품인 붕어를 백성들이 어렵게 잡는 것을 보고 3년 간 이를 입에 대지 않았으며, 제주목사 시절에는 똑같은 이유로 전복을 입에 대지 않았다.
문종 때의 정갑손(鄭甲孫)은 아들이 과거에 합격했으나 아직 아들이 공부가 덜 되었다며 합격자 명단에서 빼버렸다.
정승 성석린은 고불 맹사성의 집 가까이 살았는데 자신이 선배임에도 그의 집 앞을 지날 때면 항상 말에서 내렸으며, 황희는 세종의 내불당 궁전 설치에 유생들이 항의하자 비난하기는커녕 되레 그들의 용기에 기뻐했다.
홍언충(洪彦忠)은 갑자사화에 엮여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귀양을 갔으나 중종이 불러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자기를 무너뜨린 연산군을 위해 절개를 지킨 유일한 사람이었다.
공자가 이상으로 여긴 주공은 어진 선비가 찾아오면 밥을 먹다가도 입안에 든 밥을 토해내거나 머리를 감다가도 머리카락을 부여잡은 채 마당으로 뛰어나가 맞았다(吐哺握髮).
춘추시대 노나라의 공의휴(公儀休)라는 재상은 어느 때 자기 집 정원에 야채를 심었는데 한 번 뽑아먹고서는 그 맛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서둘러 채소밭을 깡그리 갈아엎었으며 또 어느 때는 자기 집에서 짠 베가 아주 훌륭한 것을 보고는 그 즉시 베 짜는 아낙을 내쫓고 베틀을 모조리 불태워 없앴다.(가난한 이웃의 채소와 베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배받고 포로 되는 것을 싫어하지만 기건 같은 사람이 지배하면 그것은 즐거운 지배이고, 공의휴 같은 사람의 포로가 되면 그것은 즐거운 포로가 되는 것이다.
백면서생이나 의식이 굳은 사람들의 지배나 포로는 아예 악몽을 꾼 것이나 다름없다. 기건 같은 사람들은 자랑할 것이 없는 세상에서 인류의 자랑이며 인류의 가능성으로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푸른한국닷컴, BLUKOREADOT
김성춘 kimmaeul@hanmail.net
<저작권자 © 푸른한국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선우은숙 친언니, 유영재 성추행 혐의로 고소
